[정다솜의 다솜] 나와 타인을 죽이는 감정, 모멸감
[정다솜의 다솜] 나와 타인을 죽이는 감정, 모멸감
  • 정다솜 기자
  • 승인 2019.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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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사랑의 옛말. 자꾸 떠오르고 생각나는 사랑 같은 글을 쓰겠습니다.
정다솜 기자dsjeong@laborplus.co.kr
정다솜 기자dsjeong@laborplus.co.kr

미국의 사진작가 모리스 카피에로는 뚱뚱하다. 그는 자신의 몸을 향한 사회의 폭력적 시선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번화가에 카메라를 세워둔 카피에로는 일상적 행동을 했다. 벤치에 앉거나 통화를 하고 가방을 뒤적였다. 그의 동작을 바라보는 행인들의 시선은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시선은 노골적이었다. 그들은 카피에로의 몸을 쏘아보듯 훑었다. 미간을 찡그렸다. 뒤에서 몰래 조롱하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모멸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런 환경에 사는 뚱뚱한 사람은 자신의 몸을 견디기 어렵다. 깊고 끈질긴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하지 않기는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내면화의 결과는 거식, 폭식 등 자신을 향한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작가 웹사이트

대학시절 가만히 들여다보곤 했던 카피에로의 사진이 떠오른 이유는 뒤늦게 본 영화 '기생충' 때문이었다. 모멸감이 촉발한 폭력의 방향은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로 향할 수 있다는 걸 영화는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지금부터 스포일러가 있다.

곰팡이 핀 반지하에 사는 전원 백수가족 기택(송강호)네는 언덕 위 저택에 사는 박 사장(이선균 )네에 전원 취업한다. 두 가족이 섞여 지내면서 '가난한 곰팡내'는 빈부격차를 드러내는 장치이자 영화를 파국으로 이끄는 요소가 된다. 

"김 기사 그 양반, 선을 넘을 듯 말 듯 하면서 절대 넘지 않아. 근데 냄새가 선을 넘지." 

반지하 특유의 냄새가 몸에 밴 운전기사 기택에 대해 박 사장이 아내 연교(조여정)에게 한 말이다. 이후 기택은 자신에게 자꾸 냄새가 난다고 하는 부부의 뒷말을 엿듣게 된다. "지하철 타는 사람들한테 나는 냄새 있잖아." 

'지하철 타는 사람들 특유의 냄새'를 혐오하는 박 사장의 선을 넘는 뒷담화에 기택이 느끼는 모멸감은 점점 차올랐다. 

차오른 모멸감은 박 사장네 막내아들의 생일잔치가 벌어지는 날 폭발한다. 그 전날 장대비가 쏟아져 기택네 반지하 집은 물에 잠겼다. 수재민이 되어 체육관에서 하룻밤을 보낸 기택네는 주말 아침부터 생일잔치 준비를 위해 박 사장네 집으로 불려갔다. 

그곳에서 박 사장은 삶의 기반이 무너진 기택에게 아들을 기쁘게 할 인디언 연기를 태연한 표정으로 요구한다. 더는 감정노동을 수행할 수 없었던 기택의 표정이 굳자 박 사장은 모멸에 찬 눈으로 말한다. "어차피 주말수당 받고 일하시는 거 그냥 일의 연장이라고 생각하세요." 

이어 기택네와 다투던 중 아내를 잃은 근세(박명훈)가 생일파티에 난입한다. 근세는 기택의 아들 기우(최우식)를 수석으로 내려치고 딸 기정(박소담)을 칼로 찌른다. 박 사장은 놀라서 쓰러진 자기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려고 근세의 몸에 깔린 자동차 키를 찾는다. 지하 벙커에 살던 근세에게 다가간 박 사장은 쾨쾨한 지하 냄새에 코를 쥐어 잡는다. 얼굴을 찌푸린다. 기택의 모멸감은 이 지점에서 터졌다. 기택은 박 사장을 칼로 찔러 살해한다. 

영화에서 알 수 있듯 모멸감이라는 감정은 점화된 순간 자신뿐 아니라 타인을 죽일 수 있는 힘을 지녔다. 김찬호 교수는 책 <모멸감>에서 모멸은 "인간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내준다 해도 반드시 지키려는 그 무엇, 사람이 존립할 수 있는 원초적인 토대를 짓밟는다"며 "그런 처지에 몰리면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밑바닥에 떨어졌다고 느끼면서 자신 또는 남을 죽이고 싶은 충동마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뿐 아니다. 제도나 문화가 모멸을 줄 때도 많다. 특히 일터에서 모멸감을 느끼는 요소는 넘친다.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차별받고 학벌이 별로라고 무시당한다. 회식 자리에서 '웃고 떠든다고 하는 말'에 희롱당한다. 해고는 어느 날 이메일이나 문자로 간단하게 통보받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자주 마주하는 이러한 모멸의 풍경은 각자가 느끼는 모멸을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둘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자신과 타인을 헤칠 수 있는 모멸감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모멸감을 줄이려면 가치의 다원화가 핵심이다. 인간과 삶을 바라보는 시야를 여러 차원으로 틔워야 한다. 그럼으로써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평범함과 비범함을 나누는 기준 자체를 상대화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인간이라면 모두가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바탕과 존엄함에 눈을 떠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저마다 지니고 있는 다양한 잠재력이 개발되고 꽃피울 수 있는 기회가 열려야 한다."  <모멸감> 305~306쪽

김찬호 교수는 세 가지 접근법을 제안한다. 구조적, 문화적, 개인적 차원에서다. 사회구조적으로는 '더 많은' 사람의 행복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수립하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문화적 차원에서는 인간의 귀천을 나누는 기준을 없애기 위한 '가치의 다원화'가 퍼져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스스로의 품위를 지키려는 '내면의 힘'을 키워야 한다. 간단하게 줄여 적었지만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각자가 쌓아놓은 모멸감이 넘실대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