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 국회의원, “정치가 ‘그들만의 리그’에 그치지 않도록”
김영주 국회의원, “정치가 ‘그들만의 리그’에 그치지 않도록”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9.08.07 10:33
  • 수정 2019.08.07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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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② 노동계 출신 의원 연쇄 인터뷰 -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금융노동자에서 생활정치인으로

노동계가 국회에 진출하는 이유

2016년 봄. 20대 총선이 있었다. 20대 총선에서 우리가 주목할만한 점은 노동계 출신 인사가 역대 최다 규모로 국회에 입성했다는 것이다. 노동계 출신 인사들은 매번 총선 때마다 국회 입성을 위한 문을 두드린다. 이유가 뭘까?

<참여와혁신>은 노동계가 국회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에 대해 들어보고자 했다. 그래서 양대 노총의 각 산별대표자와 노동계 출신의 20대 국회의원을 찾아 질문을 던졌다. 기꺼이 취재에 응해준 노동계 인사와 국회의원에 감사를 전하며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이 왜 필요한가요?”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서울신탁은행 입사 후 노동운동에 뛰어든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당시 당연시 여겨졌던 행원 내 남녀 차별을 목도한 후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은 현기증’을 느꼈기에 노동운동을 통해 이를 바꿔보자는 의욕이 그를 노동운동으로 이끌었다.

이후 여성 최초로 금융노련 상임부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17대 국회의원 당선을 시작으로 19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19대 국회에서는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낸 인물로 노동계에 친숙하며, 20대 국회에서도 여전히 의정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정치”라며 ‘생활정치’라는 말을 좋아한다는 김 의원은 우리 삶에서 빠질 수 없는 노동이라는 가치와 정치 행보를 같이 해왔다. 정치가 ‘여의도 정치’, ‘그들만의 리그’에 그치지 않도록 민생정치에 힘을 쏟는다는 것이 그의 정치 철학이다.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실

노동운동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여성조합원 노동교육에서 알게 된 ‘차별’이 가장 큰 전환점이었다. 5년 차 이상 된 여행원의 월급이 갓 입사한 남자 행원보다도 적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었다. 또한, ‘여행원’이라는 명칭이 단순히 ‘행원 중에 여성’을 뜻하는 게 아니라 그것 자체로 하나의 직급이라는 것, 일반 행원 아래에 있는 직급이 여행원이라는 사실도 충격이었다.

당시에는 여행원이 ‘여’자를 떼고 일반 행원이 되기 위해서는 전환고시라는 시험을 통과했어야 했고, 그 전환고시를 통과해야만 남자 행원들과 동등하게 승진고시를 볼 수 있었다. 이런 문제점들을 처음 알게 됐을 때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은 현기증을 느꼈고, 많은 사람들에게 차별의 문제점을 알리고 바뀔 수 있도록 행동해야겠다고 다짐했다.

1995년에는 여성 최초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금융노련) 상임부위원장으로 당선됐다.

당시 금융노련 규정에는 ‘각 은행의 노조위원장 출신이 아닌 사람은 금융노련의 임원이 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었다. 이 조항으로 인해 금융노련 40년 역사에 여성 임원은 한 명도 없었다. 다시 말하면 그때까지 노조 위원장 가운데 여성이 한 명도 없었던 거다. 당시 이남순 금융노련 위원장이 이 조항을 개정하면서 여성 부위원장이 탄생할 수 있는 문이 열렸다. 이후 이남순 위원장의 재선을 도우며 선거에 참여했는데, 재선에 나선 현직 노조 위원장을 돕겠다는 간부는 세 명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옳은 일을 할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끝까지 노력해 재선에 성공했고, 그 결과로 금융노련 최초의 여성 상임부위원장이 되었다.

199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했다. 노조에서 활동하다가 정계로 진출하게 됐을 때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

제안이 왔을 때 남녀고용평등법 제정을 위해 국회를 드나들던 때가 떠올랐다. 의원 얼굴 보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고, 보좌관을 만나는 것조차 어려웠던 기억이 났다. 실질적인 변화는 입법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정치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만약 정치에 몸담게 되면 노동조합의 고충처리나 관련 법 제정에 보다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를 오랫동안 준비해 온 것은 아니었지만 노동조합 활동과 은행에서 실물경제를 다뤘던 전문성을 살리면서 의정활동을 펼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있어 정치권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19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위원장을 역임했다. 환노위 위원장을 지낼 때 통과됐던 노동 관련 법안은 어떤 것이 있었나?

19대 환노위 위원장 시절, 박근혜 정부가 노동개혁이라고 주장했던 ‘기간제법’과 ‘파견법’은 비정규직만 양산하는 노동개악이었다. 기간제법은 기간제 노동자의 계약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겠다는 내용인데, 계약직과 비정규직을 늘리겠다는 것 아닌가.

또한 파견법도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닌 대기업을 위한 법이며, 불법파견의 대부분이 대기업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당시 위원장으로서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을 저지하고 청년 일자리 창출 관련 근본대책으로 노동시간 단축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주장해왔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고용노동부는 너무도 익숙한 곳이었지만 막상 일을 해보니 노동존중 사회와 일자리 정부를 지향하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임무는 결코 쉽지 않았다. 노동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산적해 있는 현안들을 하나하나씩 해결해 나갔는데, 가장 먼저 주력한 현안은 환노위 위원장 시절부터 강조해왔던 노동시간 단축이었다.

특히, 주 52시간 시행으로 OECD 최고 수준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휴식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 또한, 생활정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만큼 장관으로서도 현장 중심 국민 중심 행정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해 8월 고용노동부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1년이 흘렀다. 지난 장관 시절을 되돌아 봤을 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다면?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하루하루 전력을 다했지만, 어떤 일이든 아쉬움은 늘 남는 것 같다. 고용노동부를 떠나면서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직원들에게 몇 가지 당부한 것이 있다.

먼저 공정하고 대등한 노사관계 형성과 특수고용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취약계층 노동자 보호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 특히,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계속해서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며,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 신뢰를 쌓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모든 구성원이 힘을 보태야 한다. 마지막으로 고용노동부의 정책들이 현장에서 실제 작동될 수 있도록 현장의 목소리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지금은 다시 국회로 돌아와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 위원으로서 문화예술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애쓰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 때에도 예술인 임금체불 불공정거래에 대해 지적하고, 이후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 보호의 내용을 담은 예술인복지법과 예술인권리보장법 개정안을 발의해 지난 7월 문체위에서 서면계약을 의무화 한 예술인복지법이 통과되는 성과도 있었다.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서울 영등포구갑 지역구 국회의원
現 제20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
前 제6대 고용노동부 장관
前 제19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前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 상임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