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동안 변한 게 없다
5년 동안 변한 게 없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08.08.0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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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변주곡 … 핵심은 못 건드려
문제 생길 때마다 미봉책으로 덮기 급급

화물연대의 2008년 파업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분명 전과 다른 것이었다. 그런데 화물연대의 주장은 2007년 3월 <참여와혁신>이 화물운송사업을 취재했을 때와 별반 다른 게 없다. 1년 전뿐만 아니라 2003년 파업 당시와 비교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물류대란 직전까지 갔던 화물연대의 파업은 파업 1주일 만에 정부와의 합의를 통해 철회됐다. 하지만 화물연대와 정부가 합의한 내용은 또다시 미봉책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운송료를 인상하기로 했지만 외부적인 환경에 따라서는 화물운송 비용이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다. 그때마다 운송료를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화물연대가 이번 파업에서 가장 큰 요구사항 중 하나로 내걸었던 표준요율제 도입에 대해서는 총리실 산하에 ‘화물운임관리위원회’를 구성해 올해 하반기 연구용역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를 토대로 내년 시범운영을 거쳐 법제화하기로 합의했다.

또 정부가 고유가 대책으로 발표했던 유가보조금 지급 외에 고속도로 통행료 심야할인을 확대 시행하기로 했다. 아울러 화물자동차를 LNG 차량으로 개조하면 대당 2천만 원까지 지원하기로 했으며 화물차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감차 시 보상을 추진하기로 했다.

몇 년째 반복되고 있는 다단계 및 지입제 등 전근대적인 물류운송체계에 대해서는 개선하자고만 이야기 됐을 뿐 구체적인 방침까지 합의되지는 않았다. 다만 현재 국토해양부 산하에 별도의 TFT를 구성해 정부와 사업주, 화물연대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매년 반복되는 요구

이번 화물연대 파업은 겉으로 보기에는 급등하는 유가에 따라 화물운송 비용은 늘어난 반면 운송료는 제자리에 묶여 있다는 점이 원인인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차주들이 받는 운송료 중에서 유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55~60%에 이른다”는 게 전국화물자동차운송주선사업연합회 한영태 전무이사의 설명이다. 한 전무는 “여기에 차량 할부금과 수리비 및 소모품 비용, 통행료, 식비 등을 제하고 나면 오히려 적자”라고 덧붙인다.

이 때문에 이번 파업은 ‘생계형 파업’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1주일여의 진통 끝에 운송료 협상이 타결됐을 때 문제는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운송료만 올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화물운송시장의 복잡한 구조가 배경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화물운송시장은 독특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화물운송을 발주하는 화주, 이를 수주해 운송을 하는 운송회사, 실제 화물차를 소유하고 운송하는 화물차주, 이들 사이를 중계하는 주선사업자 등이 이해당사자로 얽혀 있다.

이들 사이의 얽히고설킨 관계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만들어냈고 실제로 화주로부터 화물차주에 이르기까지 정확하게 어떤 단계를 거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더구나 화주가 운임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각 단계별로 수수료가 얼마나 공제되는지도 알지 못한다.

화물연대가 파업에 들어가면서 운송료 인상, 직접비용 인하와 함께 표준요율제, 다단계 및 지입제 개선 등을 주장한 이유다.

이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7년 취재를 했을 때에도 이 문제가 핵심이었고, 좀 더 거슬러 올라가 2003년 화물연대 파업 당시에도 이 문제가 핵심이었다. 화물연대 박상현 법규부장은 “심한 경우 자기 차 한 대도 없으면서 알선만 해서 차 1대당 3만 원씩 하루에 200대를 챙기는 업자도 있다. 앉아서 600만 원 번다”며 상황이 심각함을 설명한다.

차주들은 실제 운송은 물론 각종 비용까지 부담하면서 생계비도 벌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이들과는 대비된다. 때문에 화물연대는 이번 파업 당시 ‘주선료 상한제’를 주장하기도 했다.

화물운송 시장이 안정되지 않는 핵심적인 이유는 다단계나 지입제 같은 전근대적인 제도에 있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50년이 넘게 고착된 제도인데 하루아침에 없앨 수 없다”(전국화물자동차운송주선사업연합회 한영태 전무이사)는 입장에서부터 “당장 개선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긴 싸움을 준비해야 하는 사안”(화물연대 박상현 법규부장)이라는 입장까지 각 주체별로 입장이 다르다.

문제는 각 주체들이 서로 다른 입장 차이로 갑론을박하고 있는 동안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래 전부터 요구된 문제이지만 해답은 언제나 미봉책에 그치고 말았다. 문제가 불거지는 그 순간만 넘기면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되돌아가곤 했다. 지금 당장 문제를 덮을 수만 있으면 나중은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화물연대는 2003년 파업 때도 그랬던 것처럼 올해도 유야무야 넘어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변죽만 울리다

핵심적인 문제는 지입제와 다단계 하도급 구조 등 구조적인 문제이지만 화물운송업계가 당면한 어려움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올해는 유가 급등으로 인한 비용 상승이 화물연대 파업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그리고 화물연대가 정부와 합의한 내용도 유가 등 직접비용에 대한 보전이 핵심이다. 구조적인 문제는 시한을 정하기는 했지만 다시 유예됐다.

한 전무는 “가장 큰 문제는 지입제다. 나머지는 부차적으로 따르는 문제일 뿐이다. 지입제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현실적으로 다단계는 순기능도 가지고 있다. 수직적 구조의 다단계가 아닌 수평적 구조의 다단계는 귀로공차를 줄이고 급한 화물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한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95% 이상의 화물이 3단계 이하의 단계를 거쳐 운송된다”며 다단계는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 전무는 또 “지입차주는 현재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지입제가 법에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뒤, “이런 지입제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뺀 채 표준요율제나 주선료 상한제를 주장한 것은 변죽만 울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박 부장은 “지입제를 법제화하는 것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법으로 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97%가 넘는 화물차량이 지입제로 운영되는데 이를 법으로 규정하게 되면 지입제를 없애는 것은 영영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

박 부장은 “그동안 정부가 할 수 있는 노력은 했다고 본다. 물론 ‘시장질서’ 범주 안에서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변한 것이 없다. 기존 법을 건드리지 않고 시장에만 맡겼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시장에만 내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