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출신이라고 노동자 대변하는 건 아니더라
노동계 출신이라고 노동자 대변하는 건 아니더라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9.08.07 10:34
  • 수정 2019.08.08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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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⑧ 양대노총 산별 대표자들이 말하는 노동 정치
출신보다 지향하는 가치가 더 중요

노동계가 국회에 진출하는 이유

2016년 봄. 20대 총선이 있었다. 20대 총선에서 우리가 주목할만한 점은 노동계 출신 인사가 역대 최다 규모로 국회에 입성했다는 것이다. 노동계 출신 인사들은 매번 총선 때마다 국회 입성을 위한 문을 두드린다. 이유가 뭘까?

<참여와혁신>은 노동계가 국회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에 대해 들어보고자 했다. 그래서 양대 노총의 각 산별대표자와 노동계 출신의 20대 국회의원을 찾아 질문을 던졌다. 기꺼이 취재에 응해준 노동계 인사와 국회의원에 감사를 전하며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이 왜 필요한가요?”

양대 노총 산별노조 대표자 10명에게 물었다.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들은 좀 다르던가? 대답은 흥미로웠다. 마치 한 사람처럼 대부분이 “노동계 출신이라고 노동자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은 필요할까? 모두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의 평가만으로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들에 대해 단정하거나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들어보자. 노동계에선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산별 노동조합 대표자들의 국회에 대한 당부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 ≠ 노동자 국회의원

노동에 대한 높은 이해와 전문성. 산별대표자들이 꼽은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이 필요한 이유는 간단하고 명료했다. 적어도 노동계 출신이라면 노동 분야에서 전문가가 아니겠느냐는 것. 산별 대표자들에게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들은 소위 노동계에서 말하는 ‘현장의 답’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답을 안다고 해서 답을 맞히는 것은 아니었다. 산별 대표자들은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과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이하 노동자 국회의원)을 다르게 인식하고 있었는데, 이는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들의 출신이 그의 정치적 지향까지는 담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동계 출신이라고 해서 꼭 노동계 이익만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란 뜻이다. 그러라는 법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그렇지 않은 사례가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반대로 노동계 출신이 아니어도 노동 현안에 관심이 높고 문제 해결에 앞장선다면 그 사람이 노동자 국회의원으로 이해됐다. 시민단체 출신인 이정미 정의당 국회의원이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됐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 줄기차게 한국노총과 정책간담회를 하지만 그 간담회는 무엇을 하는 자리인지 모르겠다. 노동계 출신이라도 국회의원이 되면 정치인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오영봉 한국노총 섬유유통노련 위원장)

“노동자 출신이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노동자 출신이면서 어느 지향점을 가지고 어느 정당을 들어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노동을 잘 아는 사람들이 보수적인 여당이나 야당에 들어갔을 때는 오히려 노동자의 권리를 깎는 데 쓰이더라.” (최준식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들이라도 재선을 위해 전부 ‘우클릭’한다. 그러면서 ‘같은 노동계니까 밀어주겠지’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어떤 국회의원도 믿음이 안 간다.” (이양진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위원장)

“다들 초선이다 보니 4년 동안 노동계 현안에만 집중하기 어렵다.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들이 재선, 삼선으로 더욱 중요한 위치에 서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텐데, 비례대표 한 번으로 끝나버리니 아쉬움이 크다.” (이동호 한국노총 우정노조 위원장)

노동계 입장에서는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들의 출신과 지향의 불일치는 ‘배신’이면서도 ‘한계’였다. 산별 대표자들은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들이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 “다음 총선에서 지역구 공천을 받기 위해 당리당략을 그대로 쫓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국회의원 개인이 당론을 뛰어넘기 쉽지 않다”, “표를 위해선 인기에 영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한계를 인정했다. 그렇지만 중론은 “실력과 의지만 있다면 방법은 어떻게든 찾는다”는 것이었다. 전문가의 견해도 이와 비슷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동계 출신 대부분이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기 때문에 당론을 벗어나기 쉽지 않고, 당내 입지가 작다. 자유한국당 내에서도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은 다수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주희 교수는 “당을 달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이라면 적어도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모임을 만들어서 노동계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대책을 논의하고 각자의 당으로 돌아가 당원들과 당의 리더들을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들에게 더욱 더 적극적인 이익 대변을 주문했다.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들은 기본적으로 정치가 아니라 입법기관 내에서 투쟁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강규혁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위원장)

자본 권력 쪽으로 기울어진 국회
중심은 누가 맞추나

노동자 국회의원이 다수가 못 되는 상황에서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들마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니 국회는, 법안들은 자꾸 자본 권력 쪽으로 기울어졌다. 특히 이번 20대 국회에선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한 최저임금법 개정을 빼놓을 수 없다. 노동계로선 ‘노동존중 사회’를 표방하는 정권에서조차 국회가 자꾸 자본 권력 쪽으로 뒷걸음질 치니 실망감이 컸다.

“노동법은 그 자체로 낡고, 반노동적이기 때문에 개정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집권당은 노동법 개정을 개정 자체로 보지 못하고 사용자와의 거래로 이해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잔디를 다시 깔고 있는 꼴이다. 최근 일련의 노동법 개악으로 현장에서는 차라리 국회가 아무것도 안 했으면 좋겠다는 한탄이 나온다. 그만큼 여야 가릴 것 없이 노동에 대한 관점이 구시대적이란 뜻이다.” (김호규 민주노총 금속노조 위원장)

“국회의원들이 노동자들에게 떡고물 주듯이 입법을 해놓고는 자본의 이익을 위해 법을 비틀어버린다. 주 52시간 법 개정 했으면 주 52시간을 적용하면 되는데 탄력근로제로 근무시간을 늘려 버리고, 최저임금도 산입범위를 만들어서 오히려 삭감시켰다.” (장옥기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위원장)

“이번 20대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 중 노동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법안은 최저임금법 개악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최저임금 산입 임금을 통상임금으로 간주하는 한국노총과의 합의를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이대규 한국노총 연합노련 위원장)

최저임금법 개정은 산별 대표자 절반 이상이 지목한 ‘20대 국회에서 노동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법안’이기도 했다. 이는 법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의 범위가 워낙 폭넓기도 하고, 노동자권리의 악화가 가시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저임금에 식비와 교통비 등 수당이 추가돼야 겨우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정규직, 공무직 노동자들은 기존에 별도로 받던 수당이 최저임금에 산입되면서 임금 인상액이 미미한 수준이다. 2020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2.9% 인상된 8,590원으로 결정됐고, 최저임금 산입범위는 5년에 걸쳐 2024년까지 확대된다. 내년에 최저임금이 240원 오른다는 것은 사실상 임금 삭감과 마찬가지다.” (황병관 한국노총 공공연맹 위원장)

법이라는 결과도 결과지만, 노동계가 국회의원들과의 소통에서 느끼는 갈증도 컸다. 소통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진짜 소통’을 바랐다. 노동에 대한 시혜적인 관점에서 단절적으로 이뤄지는 형식적 소통이 아니라 노동을 존중하는 관점에서 지속적인 논의로 구체적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실질적인 소통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입법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목소리를 반영하기가 어렵다. 국회의원들이 노동조합과 충분한 소통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거 때 노동조합과 정책협약을 체결해 놓고도 당선 이후엔 현실적인 여건 등을 이유로 지키지 않는다. 노동조합을 민원인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당·정·청 등 주요 인사들과 간담회나 국회 토론회 등을 수시로 하지만 일회적이다. 국회와 정책협의체를 구성해서 정기적으로 정책협약을 맺은 내용이 어떻게 이행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지속해서 노동 현안에 관해 토론하고 해결을 논의할 수 있는 소통 채널이 필요하다.” (허권 한국노총 금융노조 위원장)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들이 노동자 입장 대변에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지 않다. 노동자를 대변하는 창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활동 방안을 꾸준히 모색해야 한다.” (이대규 한국노총 연합노련 위원장)

다만, 이를 위해선 노동계에서도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고 공감을 끌어낼 ‘실력’이 필요해 보인다. 노동자의 삶이 노동조합과 국회 입법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한 그 안에서의 노동조합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목소리를 법·제도에 ‘잘’ 녹여내는 대표적인 노동조합으로는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이 있다. 건설산업연맹의 1년 사업은 ‘법과 제도(국회)를 바꾸고, 행정조치(정부)로 세부 사항을 보완하고, 그것을 현장(임단협)에 안착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제도 개선 투쟁의 비중이 크다. “법·제도가 사측과의 교섭에 영향을 크게 미치기 때문”에 “다른 가맹 조직들이 대정부와 노정 교섭을 하지 않을 때도 (건설산업연맹은) 끝까지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건설산업연맹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정책실의 ‘설명과 설득’의 전략은 치밀하고, 꼼꼼하다.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은 연초가 되면 연맹의 입법 요구사안을 ‘입법’과 ‘행정조치’ 사안으로 분류·정리한 뒤 국회의원들에게 브리핑을 한다. 법안이 없다면 의원입법 형식으로 발의하고, 법안이 있다면 상임위에서 통과할 수 있도록 의견서를 만든 뒤 상임위를 ‘돈다.’ “국회가 열릴 때마다 중앙은 중앙대로, 지역은 지역대로 한다.” 또 “입법을 위해선 관계 부처의 입장이 중요하기 때문에 노정교섭을 수시로 하면서 부처의 입장을 바꿔낸다. 동시에 상임위의 비쟁점 우선순위 법안으로 올려 논의가 될 수 있도록 부처의 우선입법으로 정리하게 한다.” 이러한 노조의 내공은 지난 2017년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민간부문 건설 TF(Task Force)가 꾸려지자 빛을 발했다. 다른 TF가 논의 의제를 정하는 데만 4~5개월이 걸리는 동안, 건설 TF는 첫 논의 3개월 만인 그해 12월 12일 일자리위원회·관계부처 합동으로 ‘건설산업 일자리 개선 대책’을 내놨다. 당시 건설산업연맹은 일자리위원회가 열리기 전부터 주요 10가지 의제를 만들어서 먼저 제안하고, 관계부처인 국토부와 노동부 등과 별도의 정례협의로 세부사항들을 구체화했다. 일자리 개선 대책에는 공공공사 발주자 임금 직접 지급제 의무화 등 건설산업연맹이 일자리위원회에 제안한 주요 의제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송주현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장은 “건설산업연맹은 건설산업연맹의 제도적 요구가 정책에 올곧이 반영될 수 있도록 ‘작업한다.’ 그것이 건설산업연맹과 노동계의 실력”이라면서 “업계는 늘 돈과 제도의 문제를 가져오는데 그것을 노동계가 모르면 떼쓰는 집단이 된다. 노동계가 업계를 누를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갖춰야 노동계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노동계의 ‘더 큰 연대’와 선거구제 개편으로 ‘노동자 국민을 닮은 국회’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은 “시민 다수가 노동자와 그 가족이다. 그런데도 국회 구성을 보면 법률가, 교수 같은 전문직, 부유한 남성 등으로 유권자의 의사를 대변하거나 반영하는 구성이 아니다. 금속노조가 오래전부터 비례대표제 정치개혁을 주장하고 있는 이유”라고 했다.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국민들이 자신이기도 한 노동자의 권리보다는 일반 엘리트들의 권리를 쫓아가는 것은 기이한 현상”이라며 “그만큼 아직 노동계의 힘이 크지 않기 때문이 국회가 그렇게 구성된다고 본다. 미조직 노동자가 더 많은 만큼 노동계가 미조직 노동자들의 이익을 담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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