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두드리고, 더 다가가라
더 두드리고, 더 다가가라
  • 강은영 기자
  • 승인 2019.08.07 10:34
  • 수정 2019.08.07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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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⑨ 노동계와 국회의 관계 방향은?
금배지를 달게 될 미래 노동자들에게

노동계가 국회에 진출하는 이유

2016년 봄. 20대 총선이 있었다. 20대 총선에서 우리가 주목할만한 점은 노동계 출신 인사가 역대 최다 규모로 국회에 입성했다는 것이다. 노동계 출신 인사들은 매번 총선 때마다 국회 입성을 위한 문을 두드린다. 이유가 뭘까?

<참여와혁신>은 노동계가 국회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에 대해 들어보고자 했다. 그래서 양대 노총의 각 산별대표자와 노동계 출신의 20대 국회의원을 찾아 질문을 던졌다. 기꺼이 취재에 응해준 노동계 인사와 국회의원에 감사를 전하며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이 왜 필요한가요?”

국회를 처음 열었던 1948년부터 71년이 지난 20대 국회까지 다양한 이해관계 중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에 진출한 여러 노동활동가들이 있었다. 특히, 이번 20대 총선 결과가 발표된 후 가장 많은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을 배출했다는 기사가 쏟아지기도 했다.

20대 국회가 시작한 다음 해에는 ‘노동존중 사회’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동계의 기대는 한층 더 높아졌다. 하지만, 20대 국회가 불과 1년도 남지 않은 지금의 노동계와 국회 관계는 처음 기대가 그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20대 국회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금배지를 달게 될 노동계 인사들은 노동계와 국회의 바람직한 관계 형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한국만이 가진 기형적 구조,
표심 사로잡기에 눈치

노동계가 가진 현안을 해결하는 데에는 정부뿐만 아니라 국회의 힘도 필요하다. 노중기 한신대 사회학과교수는 “노동조합이 합법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직접 눈으로 본 것이 직접 정치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계기였다”고 분석한다. 노 교수는 특히 “IMF 때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기업별 노조로서의 한계를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의 힘이 필요함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당시 김대중 정부는 민주노총의 합법화를 위한 정책변화를 이끌어냈다. 민주노총을 인정해달라는 노동자들의 거센 요구로 만들어낸 성과였다. 노동계의 지지로, 정당의 지원으로 국회에 입성하게 된 이들에 대한 노동계의 평가는 박했다. 20대 국회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기 때문이었을까. 실망감은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양대 노총 모두가 반대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합의한 주체는 환경노동위원회(이하 환노위)이다. 더군다나 당시 환노위에 소속된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들이 전체 16명의 위원들 중 6명이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들은 보통 비례대표를 통해 국회에 처음으로 진출하게 되는데, 초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선을 노리기 위해서는 소속 당의 논리를 크게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다음 총선을 염두에 두고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비례대표 의원이기 때문에 당내 입지도 적고 목소리를 내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우리 사회는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회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금까지 경험해 왔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그들도 노동 현안에 있어서 국회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 이주희 교수는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정치 진영에 큰 노동정당이 존재하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반면, 지역갈등과 인물 및 계파를 중심으로 운영돼왔던 한국의 상황에서는 노동자들이 대표성을 가지고 국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큰 규모의 진보정당을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노동당은 1900년 노동자의 정치 진출을 위해 창당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노동당은 제3의 길을 표방하며 영국의 경제 성장을 도운 토니 블레어를 총리로 배출한 바 있으며 영국 내 서민원에서 240여 석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총선에서는 부진했지만, 영국 사회 내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노동정당임을 표방하는 정당의 규모부터 외국의 대표적인 노동정당에 비해 작고, 국회 의석도 300석 중 10석도 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내 입지를 다지고 다음 선거를 노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가 힘든 게 현실이다.

1년도 안 남은 20대 국회,
아름다운 마무리 할 수 있을까

2016년 4월부터 시작된 20대 국회의 임기는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이번 국회는 노동계 주요 현안을 두고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동물 국회’, ‘식물 국회’라는 오명을 남기기도 했다. 과정은 시끄러웠지만, 그 끝은 아름다울 수 있을까.

노동과 관련된 현안만을 두고 봤을 때 여전히 20대 국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적해 있다. 대표적인 게 노동계의 염원 중 하나였던 ILO 기본협약 비준이다. 2019년은 ILO 설립 100주년을 맞는 해이다. 한국이 ILO에 가입한 지 20년이 넘게 흘렀음에도 ILO 회원국이 수행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의무사항이라고 명시하고 있는 기본협약 8개 중 4개가 비준되지 못하고 있다. ‘노동존중 사회’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는 비준되지 못한 ILO 기본협약을 ‘선 비준 후 입법’하겠다고 밝힌 바 있지만, 국회에서는 ‘선 입법 후 비준’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맞서며 여전히 ILO 기본협약 문제는 안개 속에 빠져 있다. 이주희 교수는 “ILO 기본협약 비준은 문재인 정부의 공약사항이었던 만큼 이번 국회에서 명백히 해야 될 일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탄력근로제) 문제이다. 지난 1월, 노사정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는 불참하고 있었고, 계층별 노동자위원이었던 여성, 청년, 비정규직 등이 본위원회 의결에 참여하지 않아 최종 의결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최대 1년까지 기간을 늘리자던 일부 야당의 의견을 6개월로 하자는 데에는 의견을 모았다. 마지막 공이 국회로 넘어가자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에 추가 확대에 대한 가능성이 제기됐다. 경사노위에서 합의를 만들어낸 한국노총도 ‘근로기준법 개악’이라면서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국회에만 들어가면 ‘함흥차사’가 되는 노동계 문제들에 대해 20대 국회가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는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들의 역할이 필요한 때이다. 실망 속에서도 노동계는 이들에 대한 기대를 놓을 수 없다. 국회의원 대다수가 엘리트 출신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온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노동현장’에서 같이 머리띠를 둘렀던 이들을 찾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양대 노총 산별대표자들은 ‘국회와의 정례적인 소통’을 국회에 가장 바라는 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노동계를 대표해 국회에 입성한 만큼 노동계와 지속적인 자리를 만들고 현안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매번 문을 두드려 국회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문제가 해결되는 상황을 점검할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문을 열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일부 국회의원도 노동계와 정기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에 같은 의견을 냈다. 다만, 이런 논의의 장을 환노위에서 주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회 내에 18개의 상임위원회가 존재하기 때문에 노동 현안에만 집중하기에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자도 국민이다

국회에 대한 노동계의 기대가 높았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도 노동문제를 해결하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2000년 노동자를 대표하겠다는 구호를 내걸고 창당한 민주노동당이 2004년 17대 총선에서 10석을 확보해 원내 3당 자리를 확보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와 함께 노동자의 목소리가 국회 안에서 반영될 가능성이 더 커지면서 노동자들의 기대는 커졌다. 하지만, 17대 국회에서 노동계의 바람과는 달리 비정규직의 사용사유는 제한하지 않고 기간만 2년으로 제한하는 비정규직법을 통과시키면서 노동계의 기대는 한 순간에 무너졌고, 실망은 분노로 바뀌면서 둘 사이의 관계는 어긋나게 됐다.

국회와 노동계가 또 다시 갈등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이주희 교수는 “자신들이 표를 던지고 기대했던 집단이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하면 당연히 실망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며 “이미 갈등 상황을 경험한 바 있기에 국회와 노동계에서 서로 조심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관계의 개선을 위해서는 노동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오는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출을 위한 총선이 예정돼 있다. 이번에도 노동계를 대표할 여러 인사들이 나올 것이다. 앞으로 금배지를 달게 될 이들은 국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그들이 진정으로 노동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의정활동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노중기 교수는 “20대 국회만 봐도 노동자를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은 손에 꼽는다”며 “한국의 전체 노동자 수는 2,500만 명이 넘는데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의 숫자가 10%도 되지 않는 현실이 우선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먼저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국회의원 수가 대폭 증가해야 노동문제에 대해 균형 잡힌 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주희 교수는 “노동계를 대표하는 이들이 여러 당파에 흩어져 있어 노동에 대한 의견을 한 목소리로 내기 어려운 현실”이라며 “노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가진 이들이 정당에 상관없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 보라”고 제안했다.

노동과 국회의 바람직한 관계 설정을 위해서는 국회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노동계 역시 방향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주희 교수는 “국회의원들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표”라며 “노동계도 국회에 적극적으로 대화를 열기 위한 시도를 해야 하고,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들을 연구하기 위한 체계적인 기구 등을 구성해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회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역할을 한다. 5,000만 명에 이르는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기에는 300명이라는 숫자가 굉장히 적게 느껴질 수도 있다. 더구나 노동자 수는 국민의 3분의 1을 차지하지만 노동자를 대표하는 국회의원 수는 그 비율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인 국회이지만, 실제 국민들의 신뢰는 높지 않다. 국민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국회가 노동자와 국민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낮은 자세로 그들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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