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평등하지 않다
기후위기는 평등하지 않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19.08.08 08:43
  • 수정 2019.08.08 08: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녹색연합 기고] 황인철 녹색연합 정책팀장 hic7478@greenkorea.org

 

필자는 지난 여름, 피난을 가야 했다. 두 달 가까이 계속된 폭염을 버티기 위해서, 에어컨이 없는 사무실과 집을 떠나 시원한 곳을 찾아 전전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잠 못 이루던 작년 여름을 기억할 것이다. 2018년 8월 전국 기상관측소 95곳 중 57곳에서 역대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4526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고, 그중 48명이 목숨을 잃었다. 올해도 벌써부터 해외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심상치 않다. 유럽은 6월부터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며 인명피해를 낳고 있다. ‘불지옥’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북극권에 위치한 알래스카도 평년의 2배가 넘는 섭씨 30도를 넘어서고 있다. 에어컨, 선풍기의 재고가 바닥이 나는가 하면, 열사병에 걸린 바다표범 60여 마리가 떼죽음을 당했다.

영국 언론사 가디언은 ‘기후변화’대신 ‘기후위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중립적인 단어표현으로는 현실의 심각성을 드러낼 수 없다는 이유였다. 말 그대로 지구는 위기 상황이다. 세계적인 폭염은 재난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인간이 뿜어낸 온실가스에 있다. 국제사회는 심각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2015년 파리협약에 합의했다. 산업화 이전보다 기온상승을 2도 훨씬 아래로 억제하자는 내용이다. 하지만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유엔환경기구는 최근 파리협약에 따라 각국이 약속한 의무를 다 지켜도 지구 온도가 3도 이상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더군다나 세계 2위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은 파리협약을 탈퇴했다. 한국은 어떤가. 유럽의 민간기구가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90%를 차지하는 57개국을 대상으로 한 평가에서, 한국은 기후변화대응지수 55위를 기록했다. 꼴찌에서 3번째다. 더군다나 현재 한국정부는 온실가스의 가장 큰 주범인 석탄발전소 7기를 새롭게 추진하고 있다. 아직 세계는 위기를 위기로, 재난을 재난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기후위기는 평등하지 않다. 소위 선진국들이 산업발전을 통해 배출시킨 온실가스의 피해는 가난한 나라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폭염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재난으로 닥친다. 폭염으로 쓰러지는 이들은 시원한 에어컨이 달린 사무실과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이들이 아니다. 땡볕에서 일하는 농민과 폭염에도 일을 멈출 수 없는 노동자, 바람도 통하지 않는 쪽방촌의 어르신들이다. 작년부터 한국은 폭염을 법적인 재난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현재의 법과 제도는 폭염이 와도 일을 멈출 권한을 노동자에게 주지 않고, 이들을 보호할 의무도 기업에 지우지 않고 있다. 노동계 일각에선 오히려 후퇴했다고 말한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폭염 대비 노동자 건강보호 대책’ 가이드라인은 무더위 시간대에 옥외 작업 중지를 권고하는 기준이 지난해 35℃에서 38℃로 그 기준이 3℃로 올랐다.* 2018년만큼 강한 폭염이 닥친다고 했을 때 고용노동부가 건설 현장에서 오후 2~5시 작업을 중지하도록 권고할 수 있는 날은 지난해 기준으로 22일, 올해 기준으로 4일밖에 안 된다.
* 한겨레21 1270호 「38℃까진 멈추지 말고 일하라」

가이드라인은 강제성이 없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토목건축 현장 노동자 230명을 설문조사해 2018년 7월24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무더위 시간대 작업이 중단된 적이 없다”는 응답자가 85.5%였다. 사용주에게 이를 강제하는 법은 국회에 멈춰있는 상태이다.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이나 국회에 발의된 산안법 개정안은 건설노동자 외에 폭염에 취약한 다른 노동자들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건설 현장뿐 아니라 집배원, 택배노동자, 주차요원, 거리 환경미화원, 옥외나 외곽 담당 미화노동자, 퀵서비스 노동자, 검침원, 공항 활주로 지상 조업이나 항만 노동자, 인터넷·에어컨 설치기사와 같은 서비스업종 옥외 작업자들, 농어업 작업자, 조리, 비행기 청소 등 옥내 고온 환경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대책도 필요하다.

기후위기는 사회적 불평등을 가중시킨다. 기후는 변하고 있지만, 이 사회는 아직 변하고 있지 않다. 유엔인권이사회의 필립 앨스턴 ‘극빈과 인권’ 특별조사관은 “세계가 기후 아파르트헤이트(차별)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한다. 기후위기를 대응하는 길은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과 함께 간다. 위기와 재난 앞에 취약한 이들을 먼저 생각할 때, 정의가 가능하다. 올해 7~8월, 녹색연합은 폭염 시민모니터링을 통해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폭염의 실상을 기록하고 대안을 찾아갈 예정이다.

제목 : 가톨릭신문 제3154호 20면 「기후위기는 평등하지 않다」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