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성동조선해양, 이대로 청산절차 밟나
벼랑 끝 성동조선해양, 이대로 청산절차 밟나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9.08.08 08:44
  • 수정 2019.08.08 08:44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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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마지막 조선소… 그 앞날은?

[리포트] 갈림길에 놓인 성동조선해양

회생계획안 인가 기한까지 2개월가량 남겨둔 성동조선해양이 또다시 회생과 청산의 갈림길 앞에 놓였다. 지난해부터 세 차례 매각을 시도했으나 모두 불발되면서 업계에서는 청산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세 차례 매각 불발, 수의계약 성사될까

성동조선해양은 지난해 4월부터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창원지방법원 파산부가 결정한 회생계획안 인가 기한은 오는 10월 18일로, 성동조선해양은 지금까지 세 차례 매각을 시도했으나 주인을 찾지 못한 상황이다. 남은 2개월 동안 인수자를 찾지 못하면 이번에야 말로 청산으로 이어질 거라는 업계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10월 진행된 1차 매각은 인수의향서를 제출하는 곳이 없어 불발됐다. 1차 매각 실패 원인을 1·2·3야드를 묶어 통매각으로 진행한 것 때문이라고 보고 2차 매각부터는 분할매각을 추진했다. 2차 매각에는 재무적 투자자를 포함한 복수 업체 세 곳이 인수의향서를 제출했으나, 법원은 세 업체 모두 인수자금 조달방안에 대한 증빙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지 못했다. 3차 매각 역시 복수의 업체가 인수의향을 밝혔지만, 2차 매각과 마찬가지 이유로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지 못해 매각 실패로 돌아갔다.

법원에서는 인수자금 조달방안을 증빙하기 위해 성동조선해양 예상 인수가격 3,000억 원 중 10%에 해당하는 300억 원만 보유하고 있어도 본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일반적으로 회생절차를 진행 중인 기업의 인수를 위해서는 매각 가격의 50%를 증빙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기준을 대폭 완화한 조치였다. 그만큼 법원에서는 성동조선해양 주인 찾아주기에 적극적이었으나, 매각에 참여한 업체들은 완화한 기준조차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매각을 재추진할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판단한 법원은 인수의향을 밝힌 업체들이 인수자금 조달방안을 보완해 입찰제안서를 다시 제출한다면 재검토하는 등 수의계약(별도의 입찰과정 없이 특정 인수희망자와 협상을 통해 매각을 진행하는 방식)도 고려해보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앞서 세 차례나 매각에 실패했기 때문에 수의계약 성사 가능성이 희박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외 기업으로의 매각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으나, 조선산업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하더라도 투자자들이 수천억 원을 성동조선해양에 투자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편, 회생계획안 인가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연장하기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성동조선해양 3야드는 HDC현대산업개발이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사업부지로 활용하기 위해 성동조선해양과 부지 매매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성동조선해양 관계자는 “성동조선해양 3야드 별도 매각으로 회생계획안을 제출하고, 나머지 1·2야드에 대한 매각은 따로 가져가 절차적으로 인가 기한을 2개월 정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기한을 연장하더라도 올해 연말까지 성동조선해양 운영자금이 버텨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성동조선해양 관계자는 “회사 운영자금이 소진되면 자동 파산”이라며 “회사에서 안벽 임대나 공장 임대를 통해 들여오고 있는 수익으로 운영자금을 유지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성동조선해양의 경쟁력

한국 중형조선소들은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과 함께 2000년대 중후반 한국 조선산업 전성기의 한 축을 담당했다. 벌크선부터 MR급 및 LR1급 탱커, 중형 PC선과 컨테이너선 등의 선종에서 강점을 보였으며, 중국 조선소보다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었다.

그중에서도 성동조선해양은 통영지역 최대 중형조선소로, 한때 수주잔량 기준 세계 10위권을 기록할 정도의 명성과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다. 수심이 깊고 강수 및 태풍의 영향이 적은 통영 안정만, 조선 기자재 등 관련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남해안 조선벨트에 위치하고 있어 최적의 입지를 자랑하기도 했다. 총면적 49만 2,555평(사외부지 및 유휴부지 7만 평 제외) 규모 야드에서 연간 35척 건조가 가능하며, 핵심 야드인 2야드의 경우 2012년 완공된 국내 최신 설비를 가지고 있다.

키코(KIKO)사태 재조명

이처럼 한때 열 손가락 안에 꼽히던 성동조선해양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주절벽 등으로 위기를 겪고 법정관리에 들어갔으며, 현재 청산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성동조선해양의 위기 원인을 조선산업 불황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수출입은행 등 성동조선해양 채권단은 지난해 성동조선해양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전까지 성동조선해양에 수조 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더 이상의 금융지원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채권단은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고, 채권단은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했음에도 성동조선해양을 살리지 못했다는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성동조선해양 노조(금속노조 경남지부 성동조선해양지회)에서는 “성동조선해양의 법정관리를 수출입은행(채권단)의 관리 능력에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라고 지적한다. 노조는 “금융기관이 RG(Refund Guarantee, 선수금환급보증)발급 조건으로 키코(KIKO·Knock In-Knock Out) 가입을 강요했고, 그 결과 회사가 심각한 자금 유동성에 빠졌다”고 말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중형조선소들은 금융기관으로부터 RG발급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선박수주를 위해 RG발급이 시급했던 중형조선소들은 은행과 키코를 체결했는데, 이로 인해 ‘키코 사태’가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키코 사태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환율이 치솟자 파생금융상품 키코에 대거 가입했던 수출 기업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고 도산한 사건을 말한다. 노조는 “당시 어떤 이유에서든 키코를 팔았던 은행들이 지원을 포기함으로써 성동조선해양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됐는데 이에 대해 금융기관들이 일말의 책임의식은 느끼고 있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노조는 “성동조선해양은 2007년 매출 5,699억 원, 영업이익 254억 원, 2008년 매출 1조 9억 원, 영업이익 1,662억 원이 나면서 수주량을 급격히 늘리며 확장하던 중이었다”며 “이런 회사에 2009년 결산 시 1.4조 원 규모의 파생상품 평가손실이 재무제표에 반영됨에 따라 대규모 손실 및 자본잠식 초래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결국 1조 원대에 손실이 생기면서 회복불능으로 치달았으며, 회사는 2010년 자율협약에 들어갔고, 꾸준히 적자를 내다가 워크아웃 졸업에 실패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17. 자본잠식

(1) 당사는 외화선수금 입금, 외화차입금 상환시에 발생할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회피를 목적으로 우리은행 외 7개 은행과 파생상품계약을 체결하였으나, 주석16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동 파생상품의 예측하지 못한 환율의 급격한 변동에 의해 거액의 파생상품평가손실이 발생함에 따라 당기말 현재 부채총액이 자산총액보다 773,002백만 원(전기말 567,286백만 원) 많습니다.

(2) 상기의 상황에 따른 구체적인 회사의 재무상황 및 영업환경 개선을 위한 대처방안으로 계열사 매각, 구조개혁안의 수립 및 실행과 신조수주량 증가 등 다양한 경영개선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성동조선해양 2009년 기준 재무제표

통영의 마지막 조선소

성동조선해양이 이대로 청산되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앞서 국내 조선산업 1차 구조조정 시기로 볼 수 있는 2009년부터 부도, 법정관리, 폐업 등으로 수많은 중소형조선소가 퇴출됐다. 성동조선해양이 위치한 통영의 대표 중소형조선소였던 삼호조선, 21세기조선, 신아에스비는 2012년, 2013년, 2015년 차례로 파산선고를 받았다. 사실상 성동조선해양이 통영의 마지막 조선소인 셈이다.

성동조선해양의 경우, 정상가동 시 최대 직접고용 1만 명, 간접고용 2만 명으로 총 3만 명의 고용이 가능하다. 특히 통영과 통영 옆에 위치한 고성의 경우 지역 내 기업이 적고 지역경제 규모가 작아 성동조선해양 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황이다.

지난해 8월에는 김경수 경남도지사, 강기성 성동조선해양지회 지회장, 조송호, 하화정 성동조선해양 공동 관리인 등 노사정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성동조선해양의 고용안정과 경영 안정화를 위한 상생협약을 맺었다. 협약서에는 인적 구조조정 없는 무급 휴직 시행 및 고용보장에 대한 노사합의와 경남도가 노동자 생계지원 대책 및 회사 경영정상화를 위해 행정적 지원을 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1년이 넘는 주인 찾기에도 성과가 없자 무급 휴직 상태에서 회사의 정상화만 기다리고 있는 노동자들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강 지회장은 “노동자들이 이제 무슨 길이 있을까 불안해하고 있다”며 “현재 상황에서는 성동조선해양 인수에 선뜻 달려드는 인수자가 없으니 수출입은행과 경남도가 RG발급과 행정적 지원 등의 유인책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11일에는 ‘경남 조선산업 발전을 위한 민관협의회 발족식’이 열렸다. 경남지역의 경우 조선산업 위기가 지역의 위기로 이어지기 때문에 대책 강구를 위해 이해당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협의회는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위원장으로 도내 조선산업 밀집 지역인 창원·거제·통영·고성 시장·군수, 중대형 조선소인 삼성중공업, STX조선해양, 성동조선해양 대표이사, 시민단체 및 노동계 대표, 조선업계 전문가 등 위원 20명으로 구성됐다.

협의회는 앞으로 분기마다 회의를 열어 노·사·정이 함께 경남 조선산업 발전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논의하고, 정책 제안과 제도 개선, 대중소형 조선소와 기자재업체의 상생협력 방안 등을 모색할 계획이다. 협의회는 효율적인 운영과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 본회의 산하에 실행위원회를 두고, 실무적인 논의를 먼저 시작한다.

실행위원회에서 다룰 의제는 ▲경남 중대형 조선소 활성화 대책 논의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및 상생협력방안 논의 ▲경남 조선해양산업 중장기 육성계획 심의 ▲조선해양산업 발전협의회 건의사항 도출 등이다. 강 지회장은 “이제 막 발족을 거친 단계이기 때문에 어떤 안건이 가장 먼저 올라갈지는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며 “노조에서는 지방 공기업화 방안까지 열어놓고 요구를 할 것”이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