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결정적 시기는 ‘10대’ 노후의 결정적 시기는 ‘50대’
성장의 결정적 시기는 ‘10대’ 노후의 결정적 시기는 ‘50대’
  • 손광모 기자
  • 승인 2019.08.08 08:44
  • 수정 2019.08.08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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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마지막 30년을 준비하는 사람들 ③

결정적 시기라는 개념이 있다. 예컨대 만 5세 이전에 습득하지 못하면 후천적 노력을 통해 절대음감을 습득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삶의 마지막 30년을 준비하는데도 그러한 결정적 시기가 있다. 바로 ‘50대’이다. 한국사회에서 50대는 양극화된 노동시장 구조의 문제점이 극화되는 시기이도 하다. 누군가는 안정된 사보험과 부동산 등으로 ‘노동에서 해방’되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한평생 모은 퇴직금으로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노동시장으로 진출’해야 한다. 50대를 어떻게 살릴 것이냐는 질문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는 가장 현실적인 질문이다.

박경하 노인인력개발원 연구센터장
박경하 노인인력개발원 연구센터장

우리는 몇 살까지 일해야 할까?

학술적으로 정년은 ‘비가역적으로 노동시장에서 빠져나왔을 때’라고 간주한다. 정년퇴직을 하고도 계속 일할 필요성이 있어 어떤 형태로든 노동시장에 남는 경우는 학술적인 의미에서 정년이 아니다. 회사가 아닌 ‘노동시장’에서 퇴직하는 순간이 정년이며 노후의 시작이다. 학술적으로 노후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학술적인 개념은 현재 한국사회의 변화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20대 중반 입사-평생직장-60대 정년퇴직-노후라는 보편적인 생애주기가 깨졌기 때문이다. 사회적 시선도 달라졌다. 현재 법적 정년은 만 60세이지만, 사람들은 60대를 ‘노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2017년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노인을 70세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84%에 이른다.

법과 제도도 사회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노인을 지원하는 제도나 서비스마다 법 기준이 제 각각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수령 개시연령은 현재 만 62세이며, 2033년까지 수급 개시연령은 만 65세으로 확장된다. 고령자 고용 촉진법에서는 노인대신 ‘고령자’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때 고령자는 만 55세 이상을 말한다. 인구지표 중 하나인 생산 가능 인구의 범위는 15세 이상 64세 미만이다. 만 65세 이상을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나이’로 판단하는 것이다.

박경하 노인인력개발원 연구센터장은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만 65세라는 기준은 1950년대 유엔이 권고한 기준입니다. 당시 기대 수명이 66세였는데 현재는 83세이죠. 지금 현실과 제도가 불협화음을 낼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지적했다.

변화하는 노동시장 구조.
노인노동의 필요성? 강제성?

정부의 노인 정책은 두 갈래로 나뉜다. 먼저 보건복지부의 역할이다. 복지의 사각지대를 제도적으로 메우는 역할을 한다. 나머지 하나는 고용노동부의 역할이다. 고용부 정책의 목표는 최대한 노동시장에 노인이 남아 있도록 하는 것이다. 복지의 부담을 더는 동시에 노인 개인으로서도 삶의 만족도를 보장한다.

그러나 문제는 고용형태의 근본적인 변화에 달려있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점점 더 사라지고, 특수고용노동과 플랫폼 노동 등 고용형태가 파편화되고 있다. 공적연금체계와 사회보장체계에서 벗어나는 직종들이 계속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통계에 따르면 생애 주된 일자리의 근속기간은 평균 14년 9개월이다. 또한 이 기간은 계속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사람들이 평생토록 한 가지 직업에만 종사하지 않는 것이다. 퇴직 연령도 평균 만 49세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최종 퇴직 연령은 남성의 경우 만 71세, 여성의 경우 만 69.8세로 파악되고 있다.

50세부터 70세까지 혹은 최소한 법적인 지원이 시작되는 만 65세까지. 이 20년의 간극에서 한국의 50대는 ‘대만 카스테라’부터 치킨집 등 자영업과 불안정 직종에 종사한다. 박 센터장은 “퇴직 이후 노동시장의 재진입이 매우 어렵다”고 지적한다. 50대부터 70대까지 한국사회의 개개인은 제도적 공백 상황에서 ‘각자도생’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제도적 공백을 메워라

‘노인’이라는 말을 쉽게 쓰지만 연구자에게 ‘몇 살이 과연 노인인지’ 판단하는 문제는 치열한 논쟁지점이다. 노인의 나이 기준이 중요한 이유는 이를 기점으로 제도적 설계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 정책은 만 65세를 분기점으로 제도를 설계하려고 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 노인문제는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고, 노동시장의 구조까지 영향 받는 ‘중층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먼저 당장의 급한 불을 먼저 끄려고 한다. 노인 빈곤의 문제다. 통상적으로 제1차 베이비붐 세대(55년~63년 출생)의 바로 윗세대가 겪고 있는 상황이다.

박 센터장은 “노인일자리 사업이 공적영역에 한정되고 제대로 된 일자리가 아니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하지만 공적연금 제도나 사회보장이 미비한 상태에서 당장의 생계가 어려운 분들에게 필요한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지적했다. 명칭은 노인‘일자리’ 사업이지만 사실상 공공부조 성격이 강하다.

이에 반해 곧 노동시장에서 은퇴를 앞둔 제1차 베이비붐 세대는 국민연금을 ‘제대로’ 수급하는 첫 세대이다. 민주화를 경험했고 IMF 등 각종 역경을 버텨온 주축이다. 다른 세대보다 소비력도 있는 편이다. 그러나 동시에 계층별 편차가 심한 세대이기도 하다.

박 센터장은 “베이비부머 세대 코호트(동류집단)들이 공유하는 경험은 대단히 특징적입니다. 공적 연금을 받는 첫 세대로 소비력도 갖추고 있어요.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닙니다. 그래서 기초연금제도 등으로 보완이 필요합니다. 장기적으로 노인일자리 사업과 기초연금과의 비율 조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너무 이른 정년과 너무 늦은 노후, 사이의 50대

당신은 언제까지 일을 하고 싶은가 혹은 우리는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하는가. 노인이 몇 살부터인지 묻는 질문은 ‘언제까지 일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정부의 정책방향인 ‘만 65세 정년’이 과연 적절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먼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노인의 나이를 정한다면 그에 맞는 복지정책을 준비함으로써 시급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본질적 문제는 노동시장 구조다. 너무 이른 ‘정년’과 너무 늦은 ‘노후’ 사이에서 신(新)중년인 ‘50대’가 방황하고 있다. 은퇴가 강요되고, 재입사는 거부되는 이들에게 남은 미래는 오직 ‘빈곤’뿐인 걸까.

40년 후의 미래에는 만 65세 이상 인구가 약 40%를 차지할 것이다. 평균 수명은 99세까지 연장된다고 한다. 일해야 하는 기간이 길어져만 가는 지금, 노령노동에 대해 우리는 열린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노령노동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