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범식 노후희망유니온 위원장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인터뷰] 배범식 노후희망유니온 위원장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19.08.08 08:44
  • 수정 2019.08.08 08: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인노동자의 조직화된 힘 역설
고령세대를 대변하는 정치적 세력은 없어

[리포트] 마지막 30년을 준비하는 사람들 ②

대한민국은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가장 단적인 증거가 고령층의 정치적 이해를 아무도 대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노인의 정치참여라고 하면 ‘태극기부대’가 떠오르지만, 정작 태극기부대가 노인의 현실을 대변했는지는 의문스럽다. 정치적으로 노인이 천덕꾸러기로 낙인찍힐 때, 현실의 노인은 빈곤과 고독으로 죽어갔다. 배범식 노후희망유니온 위원장은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정치적 주체성’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의 책상 위에 있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그와 무척 가깝게 느껴졌다.

배범식 노후희망유니온 위원장
배범식 노후희망유니온 위원장

누가 태극기부대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

한국에서 만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통계에 따라 다르지만 약 40~60%에 육박한다. 학계에서는 통상적으로 48%라고 합의돼 있다. 노인의 절반은 가난에 허덕이는 것이다. 자살률은 더 높다.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1년에 58.6명의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배범식 위원장은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자가 대체적으로 불우한 삶을 사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짚었다. 가장 큰 원인은 국가의 부재였다. 어린 시절 해방 말기와 6.25전쟁을 직간접적으로 접한 세대들은 노동억압적인 독재정권 아래에서 처음으로 일을 하게 됐다. 이들은 30년 간 한국의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견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노후에 대해서는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은 것이 없다. 국민연금은 87년에나 뒤늦게 제정되었고 복지후생 제도는 여태까지 빈약한 수준이다.

배 위원장은 한국의 경제구조가 정상적으로 노동자가 저축해서 부를 축적하고 재산을 형성할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개인이 저축으로 돈을 모을 수가 없고 부동산이나 주식 등 다른 수단을 통해서야 종자돈을 마련할 수 있었던 시대적 흐름을 짚었다. ‘경제적 한탕주의’의 흐름에서 성공한 소수의 사람들은 여생을 편안하게 지내는 데 반해 실패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또한, 바로 윗세대와는 다르게 산업화를 통한 핵가족화로 가족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다. 부모 봉양과 자식 뒷바라지를 평생의 과업으로 살았지만 정작 그들이 노후로 기대했던 가족은 해체되었다. 배 위원장은 압도적인 노인의 자살률을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주체적 선택’이라고 본다.

“노인 분들이 고생스럽게 살기보다는 품위 있게 죽겠다. 그렇게 자살하는 거예요”

그렇기에 배 위원장은 태극기부대를 그저 욕하기에는 어렵다고 보았다. 반공 이데올로기와 더불어 그들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구조, ‘물적 토대’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노인을 대변한다고 하는가

베이비부머의 첫 세대격인 배범식 위원장은 한국의 ‘1세대 민주노동조합원’이다. 1995년 11월 11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설립될 때, 기아, 쌍용, 대우자동차등 전국 32개의 자동차완성 및 부품, 판매정비 업체들을 모아 전국자동차산업노동조합연맹을 조직했다. 배 위원장은 전국자동차산업노동조합 위원장과 민주노총 부위원장을 겸했다. 배 위원장은 ‘조직화된 노동자’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배 위원장은 옛날에 함께 운동한 동지조차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보수화되는 걸 목격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노조하던 사람들도 60세 넘어서 정년퇴임해서 경로당에 나가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도 동화돼요. 민주노총 조합원으로서 같이 파업에 참여하는 사람도, 그런 사람은 달라야 될 건데 똑같아진다는 거죠”

‘노인의 조직화 문제’로 눈길을 돌리게 된 계기다. 배 위원장은 현재 노인의 열악한 처지가 국가적 방기의 결과라고도 보지만, 동시에 노인의 정치적 목소리가 전무했다는 점 또한 크게 작용했다고 꼬집었다.

“노인들을 가장 대표하는 조직세력은 대한노인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전두환 정권을 거치면서 대한노인회가 권력의 시녀로 작용했죠. 노인들에 대해서 진심 어린 활동을 안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노인문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했어야 했는데, 여태껏 그런 세력이 없었던 거죠.”

노인만이 노인을 구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노인은 기묘한 형상을 가졌다. 먼저, 비 오는 날 폐지를 주우며 힘들게 살아가는 형상이 있다. 시혜와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노인이 그려진다. 시혜 받는 자로서의 노인의 모습은 미디어에서 감정적인 소재로 소비되면서, 또한 정부가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소일거리’를 시키고, 얼마간의 용돈을 주면서 재확인된다.

대척점에는 태극기부대가 있다. 태극기부대는 정말 열심히 정치에 참여한다. 열정적으로 시위도 하고 유튜브 생방송까지 진행한다. 그러나 이들의 능동적 활동은 대한민국을 발목 잡는 형상으로 그려진다. 태극기부대는 선거에서 보수 세력의 실제적인 힘이 돼준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감사합니다’ 한 마디로 값을 치르고, 노인은 공적 장소에서 호명되었다는 뿌듯함만 가슴에 남는다.

한국 사회 노인의 기묘한 이미지에는 극단적인 수동적인 형상과 극단적이고 능동적인 형상이 결합돼 있다. 하지만 여기에 노인의 ‘주체성’은 없다. 배범식 위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가 실업 사업 비슷하게 하는 거 있잖아요. 물론 100% 부정적으로 보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앞으로 수명이 더 늘어나면 60세에 은퇴한다고 해도 40년 간 살아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지금 정부가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미봉책에 불과한 것이죠. 노인들 용돈 좀 주고 표나 얻으려는 것 밖에 안돼요. 형식적일뿐더러 실질적으로 사회의 생산에 기여하는 건 별로 없습니다.”

정부는 ‘노인’과 ‘노동’이라는 다소 어색하지만 정확한 조합 대신, ‘노인일자리’라는 말을 정책의 이름으로 택했다. 배 위원장의 지적처럼 정부가 노인의 노동을 그저 형식적으로만 바라보는 증거가 아닐까? 배범식 위원장은 마지막으로 한국사회의 노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는 ‘조직된 노동자’의 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조직된 노동자는 자각하게 돼있지요. 매주 목요일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강의를 열고 있는데, 심지어 70살 넘은 노인들이 30명가량 와요. 그렇게 한다는 것은 조직된 노동자는 깨우친다는 거예요. 20년 후면 60세 이상 노인인구가 40%가 되거든요. 유권자 절반 이상이 노인이라는 거예요. 노인들의 정치적 각성이 없으면, 한국사회의 미래는 어두워요.”

메시아는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노인만이 만들 수 있다. 노인을 구원하는 건 바로 노인들이다. 반드시 노인이 될 수밖에 없는 우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