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제화공, 수제화 위기에 맞서 생기를 불어넣다
20대 제화공, 수제화 위기에 맞서 생기를 불어넣다
  • 정다솜 기자
  • 승인 2019.0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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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0대 제화공 김기현 아톤슈즈 대표

성수동은 수제화를 위한 공동공간이다. 수제화를 빠르게 만들고 공급하는 하청업체를 중심으로 관련 부자재 업종이 가까이 뭉쳐 있다. 도심 제조업 밀집 지역이다. 도심 제조업 지역은 지역경제 활성화뿐 아니라 도시재생 측면에서도 중요하지만 수제화 산업 환경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제화공의 맥이 끊기고 있다. 낙후된 작업환경과 열악한 노동조건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수동에는 수제화를 만드는 20대 제화공이 있다. 왜 어렵다는 성수동에 온 건지, 왜 구두 만드는 일을 선택했는지, 또 어려운 점은 없는지 궁금했다. 어려서부터 레고, 과학상자 조립 등 손으로 하는 일이 가장 재밌었다는 김기현(29) ‘아톤슈즈’ 대표를 그래서 만나봤다.

우연히 마주친 투박한 구두 한 켤레

4년 전 겨울, 충청남도 공주에서 1년 넘게 피자가게를 운영하던 김기현 대표는 유럽여행이 가고 싶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가게를 정리하고 무작정 배낭을 멨다. 한 달간 유럽여행의 시작이었다. 일주일을 머물렀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첫날, 길을 걷다 어느 빈티지숍에서 특별한 구두를 발견했다. 다듬어지지 않은 가죽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검은 구두였다. 가까이서 보니 구두 옆 라인은 무너진 줄 알았다. 울퉁불퉁하고 투박했다. 누군가의 ‘손’이 닿았다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 점이 그냥 좋았다. 사이즈를 요청해 바로 신어봤다. 더 근사했다. 가격을 물었더니 50만 원이 넘었다. 빈티지숍이 아니었다. 이탈리아 가죽 브랜드 엠프레사(EMPRESA)였다.

“가격을 듣고 당황해서 황급히 매장에서 빠져나왔는데 종일 그 구두만 생각났어요. 떠나는 날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 구두를 구경하러 갔어요.”

한국에 와서도 손으로 만든 그 구두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일단 수제화를 배울 수 있는 서울 성수동으로 가야겠단 판단이 섰다. “맨날 쪼그리고 앉아서 고생하는 일”이라며 반대하던 아버지는 “빈털터리가 되도 가야겠다”는 김 대표의 설득에 500만 원을 건네며 서울행을 허락했다. 7월 여름이었다.

주독야경으로 배운 수제화

“낮에는 아카데미를 다니고 밤에는 한식주점, 이자카야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수제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를 구입해야 했고 왕복 지하철 비용도 만만치 않았거든요.”

아버지에게 받은 종잣돈은 서울에 와 보증금을 내니 없었다. 김 대표는 낮에는 한국제화아카데미에서 제화를 배우고 밤에는 아르바이트하며 지냈다. 주독야경(晝讀夜耕)이었다. 당시 아카데미 대표였던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정기만 제화지부장에게 저부를 배웠다. 저부는 발 모양 틀인 골(라스트)에 갑피를 씌우고 창을 붙여 마무리하는 작업이다. 갑피는 재단사가 자른 가죽을 구두모양으로 꿰매는 일이다. 그래서 제화공은 갑피공과 저부공으로 나뉜다.

다음해에는 성동지역경제혁신센터에서 수제화 심화 과정을 밟았다. 서울시 명장 2호인 정영수 선생님께 갑피를 배웠다. 아카데미 과정을 마친 뒤 제화공장에서 1년간 갑피사로 견습생활을 시작했다.

제화공이 처한 비상식적 노동환경

“빨리, 많이 만들지 못하면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해요. 그래서 초반에 포기하고 떠나는 동기들이 많았습니다.”

김 대표는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했지만 한 달 임금은 30~50만 원 정도 받았다. 제화공의 임금은 월급제가 아닌 신발 개수에 따라 임금이 책정되는 개수임금제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숙련공에 비해 일손이 느려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신발 개수가 적었고 공임비도 낮아 최저임금을 받기 어려웠다.

근로조건도 열악했다. 제화공은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개인사업자인 ‘소사장’이라서다. 소사장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현행 고용보호법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 자와 일부 자영업자에게만 적용된다.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로 공임의 3.3%를 세금으로 내야 하고 4대보험 혜택도 없다. 개인사업자라서 연·월차 사용도 보장이 안 된다. 퇴직금도 없다.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긴 하다. 지난해 4월 구두브랜드 탠디 하청업체 제화공들의 파업 이후 이들의 처우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최근 법원이 제화공들의 노동자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하청업체가 퇴직금 지급을 회피하거나 폐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제화공들이 하청업체를 상대로 소송과 파업까지 가야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현실이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큰 제화장인들도 “내 자식이라면 뜯어말리겠다”는 노동조건이다. 김 대표가 취업이 아닌 창업을 선택한 일은 자연스러웠다.

김기현 아톤슈즈 대표
김기현 아톤슈즈 대표

'1인 창업'했지만 제화공과 협업 필수

지난해 2월 김 대표는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수제화 브랜드를 준비했다. 아트 온(Art on), 예술을 켠다는 뜻의 수제화 브랜드 ‘아톤슈즈’였다. 7개월 뒤인 9월부터 온라인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모든 일을 혼자 해냈다.

“작업실에 출근하자마자 하루종일 구두만 만들었어요. 오전에 갑피를 만들고 오후에 골을 싼 뒤에 저녁에 창을 붙이고 퇴근했는데 하루에 1~2족 만드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제화는 혼자 하기 어려운 일이다. 혼자 속도를 아무리 내도 접착제를 말리는 시간 등 절대적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래서 단계별로 일을 나누면 효율이 뛴다. 제화가 철저한 분업이 이뤄지는 이유다. 신발 판매량이 조금씩 늘어 일이 많아지면서 김 대표 혼자서 감당이 안 됐다.

해결책은 수제화아카데미에서 인연을 맺었던 선생님이 운영하는 제화공장과 협업이었다. 김 대표가 디자인하고 수제화 샘플을 직접 만들면 제화공장에서 일하는 숙련 수제공들이 생산을 맡아줬다.

이제 김 대표의 일과는 달라졌다. 아침에 제화공장에 들러 그날 발송해야 하는 신발을 픽업하는 일이 먼저다. 작업실에서는 택배를 포장해 발송한다. 남는 시간은 디자인과 샘플 제작에만 몰두하고 있다. 지금은 성수동 제화 숙련공 없이는 김 대표 혼자 브랜드를 운영하기 어려운 구조다.

제화공의 맥이 끊기고 있는 성수동

“성수동에 계속 있으면서 공장 문 닫았다는 소리가 자주 들려요. 6개월 전에는 공장 50군데가 문을 닫아서 부동산에 나와 있었어요. 3개월 전에는 120군데, 요즘엔 160군데가 나와 있다고 들었어요.”

수제화는 숙련공의 손기술에 의존한다. 구두를 제작하는 과정 중에 기계를 사용하더라도 보조적으로 활용할 뿐이다. 젊은 인력이 유입되지 않으면 제화공의 맥은 끊긴다. 우려가 아닌 현실이다. 코오롱FnC의 구두브랜드 슈콤마보니의 하청업체에서 근무하는 40년 경력의 최경진 코오롱FnC 분회장에 따르면 제화지부에 소속된 조합원 700여 명 중 청년은 두 명뿐이다. 경력 30년 이하의 제화공도 드물다. 제화지부에서 청년 제화공 외에 가장 경력이 짧은 제화공은 34년 일한 52세 박완규 부지부장이다. 약 30년 전부터 제화공의 맥이 끊기고 있는 셈이다. 이는 27년 전인 1992년 한중수교로 값싼 중국산 제화가 밀려들고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제화업체들이 직접 고용했던 제화공을 외주로 돌리기 시작했던 수제화 산업의 변곡점과 맥을 같이 한다.

'공동의 목표'로 뭉친 성수동 청년 제화공들

“그래도 수제화의 미래는 희망적이라고 생각해요. 구두를 직접 만들고 판매하는 입장에서 미래가 어둡다면 계속 제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더 잘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건 말이 안 되죠.”

김 대표는 희망을 먼저 본다.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신발의 완성품을 만들 수 있는 젊은 제화공에게 기회가 꼭 올 거라고 믿는다. 시간이 날 때마다 다른 제화 브랜드와 수제화 장인들의 신발을 찾아 어떤 제법으로 만들었는지 살펴보며 더 나은 수제화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한다.

“수제화를 하고 있는 사람들과 의논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 해요. 혼자 생각하면 모르는 것도 같이 머리를 모으고 생각하면 해결되는 게 참 많아요.”

젊은 제화인들과도 자주 머리를 맞댄다. 최근 이들은 협동조합도 하나 만들었다. 조합명은 커먼 코즈(a common cause), 공동의 목적이다. 목적은 정보 공유다. 젊은 제화인들이 뭉쳐 서로 아는 것을 나누고 궁극적으로는 수제화 ‘공동 공장’을 설립해 오랫동안 질 좋은 수제화를 만들고 싶다는 공동의 목적이 모인 것이다.

가을이 오기 전에 유튜브 계정도 만들 계획이다. 청년 제화인들은 같은 일을 하지만 주특기가 다르다. 갑피, 저부, 슈케어, 디자인, 커스텀 등 각자의 전문성을 살려 매력 넘치는 수제화의 세계를 안내하고 싶다.

“저는 집에 있는 신발들을 분해해서 새로운 조합으로 합쳐보는 커스텀 영상을 찍어보고 싶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수제화의 매력을 알고 ‘성수동 수제화’의 이미지도 더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작업실에서 유튜브 영상을 찍을 스튜디오 공간을 만들고 있던 김 대표의 눈은 반짝였다. 쇠하는 성수동 수제화 공동공간에서 흥하겠다는 공동의 목표로 뭉친 청년 제화인들이 새로 써 내려가는 이야기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