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노동자는 말한다
대기업 노동자는 말한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04.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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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새끼’는 노동자 시키고 싶지 않다
 지난해 임단협이 여느 해와는 달리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것은 역시 ‘귀족 노동자’ 논쟁 때문이었다. 160일 이상 놀고도 연봉 6천만원을 받는다는 보도는 일반 국민들을 상대적 박탈감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비록 그같은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졌지만 한 번 굳어진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분명 한국 사회의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는 다른 노동자들에 비해 고임금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 나름의 고민과 갈등이 존재하고 있다.
통제 중심의 노사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투적 노조 운동의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이제 ‘민주노조’, ‘인간다운 노동’, ‘노동의 권리’ 등과 관련해 상당한 진전을 가져왔다.
또한 노사정위원회 개편, 지역-업종별 논의 및 협의회를 준비하는 지금,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노동자의 삶에 대한 고민이 공론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집단적 노사관계라 표현되는 법-제도의 진전과는 달리 현장의 문제는 여전히 나아지지 않은 채 오히려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작업장내 인간관계와 갈등의 현실은 어떤 것일까?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국내의 대표적 대기업 노동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2004년 한국 대기업 노동자의 인식을 보여 주고자 한다. 토론에 참석한 사람들은 전직대의원 1명, 현장조직 활동가 1명, 평조합원 3명이다. 솔직한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실명은 공개하지 않는다.
아쉬운 점은 ‘같으면서도 다른’ 고민을 하고 있는 현장 조반장들의 참석이 없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한 점은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향후 조반장들의 목소리를 듣는 기회를 다시 한 번 가지는 것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물량이 없으면 그만둬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슴 속에 묻고 ‘벌 수 있을 때 돈을 모으자’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고민이 임금에 집중되고 있는 현실을 가감없이 싣는다.



올해 임단협 안건 중 조합원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이 무엇인가?
C : 임금인상요구안이 12만원인데 실제로 얼마정도 받을 수 있을까하는 게 제일 관심이다.
B : 작년에는 일이 많았는데 올해는 적게 했다. 물건이 안 팔려서 일이 줄고 철야, 특근이 없으니까 기본적으로 100만원 정도 차이가 난다. 가계 생활이 안 된다.
A : 공헌기금이니, 교대제니 하는 것 보다 한달 월급이 피부에 다가온다. 지금 일이 없어서 애들 학원 중에서 하나는 끊어야 하는 상황이니까 임금부터 올리고 보자는 거다. 가계 수준을 안 내릴 수는 없지만 최대한 버텨보자는 생각이다. 애들한테 ‘아빠 돈 못 벌어서 안되겠으니 니 학원 하나 끊자’ 이런 말 하겠나? 그렇게는 못한다.
C : 주간 연속 2교대제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7시간 일하고 지금하고 똑 같이 돈 받아 가면 도둑놈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교대근무가 힘드니까 이 정도는 받는 게 당연한거 아니냐는 생각이다. 교대제를 안 할 수는 없고 그래도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생활을 위해 주간 2교대가 됐으면 한다. 밤에 집에서 자는 생활을 하고 싶다.
D : 모든 것이 돈하고 관련되어 있다. 지금 현장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도 결국은 돈 문제다.

 

 

주5일 근무제도 그렇지만 주간 연속 2교대제도 임금보전이 쟁점 아닌가?
C : 우리는 시급제다. 1시급, 2시급 있는데 통상임금이나 주간 근무는 1시급 적용받는다. 그런데 이게 시간당 3500원 안팎이다. 10시간 일해도 4만원이 안된다.
A : 야간 근무 안 들어가면 1시급 적용받는데 여기에 7시간 일하면 임금 보전이 안된다. 당연히 임금 보전되는 상태에서 주간 2교대제로 가야지. 주간 연속 2교대 하면서 임금 떨어지면 뭐하려고 하나. 조금 힘들어도 야간 해야지.
C : 시급제다 보니 생활의 계획을 잡을 수 없다. 연봉이 한해 한해 비슷해야 되는데 우리는 들쭉날쭉이다. 특근 많을 때는 돈 많이 받지만 저축하기 보다는 많이 쓰게 된다. 임금 체계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주간 연속 2교대제로 바뀌면서 월급제가 돼야 한다.

 

 

임금문제를 제외하고 현장에서 가장 관심을 갖는 건?
C : 고용안정이다. 임금보다 더 중요하다. 정년까지 고용안정 된다면야 뭐가 문제겠나.
B : 입사할 때는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전에 정리해고 바람이 불면서 평생직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까딱하다가는 바로 짤리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고용안정이 되면 우리도 직장 생활 편하다.
A : 고용안정협약은 있지만 그건 종이쪼가리다.
B : 언제 짤릴지 모르는데 애사심 같은 게 어디 있겠나.
A : 정리해고 이후 회사 분위기가 완전히 조졌다. 당시에는 내가 집에서 기르던 똥개 수준밖에 안되는구나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 후에 회사에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각자 마음속 바닥에 (불신이) 다 깔려 있다.

 

 

지난해 대기업 노동자들의 고임금 문제가 이슈가 됐었다.
C : 우리가 평균 근속년수 13.8년에 나이는 41살인데 기본급 120만원 받는다. 공무원들이나 은행원들 같은 사람들 중에 13년, 14년차에 임금 이 정도 받는 데는 없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10년차 안팎인데 4천에서 더 받으면 4천5백 정도였다. 6천은 최상위급이다. 근속년수 20년이 넘어야 하고 1년에 360일 정도 일해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당시 언론에서 고졸이 6천 받는다고 썼는데 고졸은 6천 받으면 안 되나?
D : 실제로 우리가 6천만원 받는 노동자라고 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하고 많이 다르다. 10년 넘게 단순조립하는 힘든 과정에서 그 만큼 일을 했다. 우리가 받는 임금은 개인적으로는  적다고 생각한다. 150%는 더 받아야 노동력을 판 대가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C : 그런 부분에서 언론에 대해 실망을 많이 했다.
A : 우리는 보통 철야라는 것이 토요일 오전 5시에 나가서 일요일 아침 8시까지 일을 한다. 그렇게 일해서 4천 받는데 왜 그런 부분은 이야기 안하고 꼭 돈만 말하나.
C : 작년에 일부에서 180일 놀고도 6천 받을 수 있다고 할 때 마음 같아서는 쫓아가서 확 패 쥑이고 싶더라.

 

왜 돈으로 모든 관심이 집중되는가?
C : 앞에서도 말했지만 고용안정에 대한 믿음이 없는데 당연하지 않나. 정리해고 때 나간 사람들 회사에서 경기 좋아지면 리콜하겠다고 했는데 아직도 리콜 안 된 사람들이 많다. 조합원들은 (일이) 있을 때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A : 또 올해는 일이 많이 줄었다. 처음에는 적금 빼고 나중에는 보험까지 깨고 있다.
C : 이쪽이 다른 지역에 비해 학원 등에 들어가는 돈이 많다. 옆집도 다 하니까, 수준을 맞춰가기 위해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철야 특근을 안 할 수도 없고, 작년의 경우 일년 내내 일주일에 평균 64시간을 일했다.
A :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누구나 그렇지만 지 새끼는 노동자 안 시키려고 노력한다. 내 먹을 거 안 먹고 입을 거 안 입고 공부시킨다. 요즘 웬만한 옷은 한 벌에 10만원 하는데 그거 한 벌 안 입으면 애들 학원 2개 보낼 수 있다.
B : (일감이 줄어서) 작년하고 임금차이가 너무 난다.

 

현장 내 갈등과 불신도 큰 문제라는 지적인데 어디서 비롯되는가?
D : 조합원간에 ‘갈라치기’를 한다. 예를 들어 한 쪽이 고용안정 갖고 싸울 때 다른 쪽에서는 구사대로 나타났다. 밖에 나가서 회사 정상화 위한 결의대회 열지 않았나.
C : 조반장들과의 갈등도 있다. 직책유지하고 승진하고 하려면 임단협 시기에 조원들하고 소주 한잔 하면서 회사 대변하다보니 갈등이 생긴다.
B : 조반장하고는 친해질 수가 없다. 보기 싫지만 맘속에만 담아두다가 교섭시기에 폭발한다.
A : 형님, 동생하고 싶은데 인관관계에서 멀어지게 된다. 돈벌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예전같은 점이 없다. 그런 점이 참 힘들다.
D : 겉으로는 부부감수성 교육이니 구성원들을 가족처럼 생각한다느니 하면서 열심히 일하라고 하지만 결국 이렇지 않나. 혁신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해야 한다. 회사가 공정하고 정당하게 분배했으면 노조가 싸움해도 사람들이 싫증낼 텐데 그렇게 안 되니까 사람들이 노조를 통해 요구하는 거 아닌가.
B : 경제 단체장들이 입만 열면 경제 어렵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경제가 좋을 때가 언제냐. 이윤이 남으면 시장에 재투자 하는 게 아니라 지배력 확대할 수 있는 주식 투자나 문어발식 기업 지배력 높이려는 것에 신경 쓰지 않나. 그 돈 빼서 풀면 조합원들과 상호 신뢰가 생길 것이다.
A : 경제 좋다고 할 때도 있다. 가을에 회사 설명할 때, 증자할 때는 좋다고 한다.
D : 언론을 이용한다. 해마다 그렇다. ‘장마철에 웬 파업인가’, ‘가뭄에 파업 안 된다’ 지금 같으면 ‘경제 어렵고 실업자 많은데 웬 파업이냐’는 식으로 나온다.

 

건강 문제는 어떤가? 단순반복 작업을 대처하는 방안이 있나?
B : 다 고장난 사람들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봐라 어디 한군데 안 아픈 사람 없다.
A : 우리 과장님 일년 의료비로 천만원 들어가더라. 23년쯤 됐는데 고물 다됐다. 나는 그 전에 돈벌어서 빨리 나가야겠다. 사람 병신되면 어떻게 하나.
B : 속병하고 관절부위가 다 안 좋다. 삐딱한 자세로 10여년 일하니까 안 아플 수 없다.
D : 작업장이 협소해서 생긴 문제다. 내가 빨리 일 해주고 나와야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다. 사람들 손이 비뚤어져 있다. 직접 해 봐야 어려움을 안다.
B : 반별로 로테이션을 한다. 원래는 같은 자리에서 한 달씩 했는데 너무 지겨우니까 2주에 한번, 회사 모르게 2시간씩 돌아가면서 하고 있다.
E : 사업부 별로 로테이션 작업을 한다. 고정작업 하는 곳도 있는데 3~4년 전까지는 불량률이 높다고 로테이션 못하게 했다. 요즘은 품질이 좋아지니까 회사에서도 말 안한다. 조합원 입장에서는 한 작업 계속하니까 아프고, 그래서 골병 안 드는 방법 찾은 것이 반내 로테이션이다.

 

노조 내부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로 계파갈등을 꼽는데 계파에 대한 조합원들의 생각은?
A : 국회도 보면 여러 당이 있듯, 현장의 제조직이라는 게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노조가 정하는 길에 대해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등 말이 많은 게 사실이다.
B : 한 14개 정도 된다. 현장 조직이 너무 많다. 대의원 뽑을 때 후보가 7~8명이 될 때도 있더라. 그중에서 절반 정도는 없어도 될 듯 하다.
D : 제조직 난립도 문제지만 집행권을 갖기 위한 이합집산이 문제인 것 같다. 실질적으로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조직이 많으면 좋지만 자기 조직 살리기, 조직 이익을 위해 조합원을 이용하는 것은 없어져야 한다. 서로 우리가 옳다고, 분열과 헐뜯기로 조합원들의 신뢰가 많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버리지 않고 무엇인가 다시 한다는 것은 무리이다.
E : 제조직들이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는데 제조직간 생색내기, 잘잘못 따지기 등으로 안 좋은 모습도 있다.

 

작년부터 주5일 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변화는?
E : 그건 우리한테 물어보지 말고 사무실 사람들(사무직)에게 물어봐야 될 거 같은데.
C : 현장직들은 주5일 근무 없다. 주야 맞교대에 일하고 잠자기 바쁘다. 여가생활보다는 일하기 위해 보약 먹어야 하는 실정이다.
D : 동호회도 많이 생겼지만 모든 우선순위는 일에 있다. 계획 잡았다가도 일이 생기면 모두 취소한다.
A : 애들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도, 시간도 부족해서 항상 구박받는 수준이다.


특별취재팀 위성수·박경화·박수진·성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