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청소노동자, 폭염 속 계단 밑 1평 휴게실에서 숨졌다
서울대 청소노동자, 폭염 속 계단 밑 1평 휴게실에서 숨졌다
  • 정다솜 기자
  • 승인 2019.08.14 23:31
  • 수정 2019.08.14 2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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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일반노조 "열악한 노동환경이 불러온 명백한 인재"
공학관 청소노동자 3명이 사용하도록 서울대학교가 제공한 휴게실 ⓒ 서울일반노동조합
공학관 청소노동자 3명이 사용하도록 서울대학교가 제공한 휴게실 ⓒ 서울일반노동조합

서울대학교 제2공학관에서 근무하던 60대 청소노동자가 휴게공간에서 숨졌다. 

폭염경보가 발령된 지난 9일 고인은 오전 작업을 마친 뒤 휴게실에서 동료와 잠시 눈을 붙이던 중 변을 당했다. 잠든 동료 옆에서 숨진 고인은 낮 12시 30분경 다른 동료에 의해 발견됐다.  

고인이 속한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연맹 서울일반노동조합(이하 서울일반노조)은 이 죽음에 대해 학교 내 청소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방치한 서울대학교에도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일반노조는 "고인 사망 전날부터 폭염경보가 발령되어 있었다"며 "67세인 고인이 심장질환자였음을 고려할 때 폭염을 피할 에어컨뿐 아니라 창문조차 없는 비좁은 휴게실 등 열악한 노동환경이 사망에 치명적 요소로 작용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고인이 사망하기 이전 일주일간 폭염은 지속됐다. 폭염주의보와 경보가 번갈아 발령됐고 최고 기온은 36.8℃까지 올랐다. 

내리쬐는 더위를 고인이 숨을 거둔 휴게공간에서는 피할 수 없었다. 두 명이 누워도 서로 몸이 닿는 3.52㎡(1.06평) 비좁은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환기도 안 됐다. 건물 계단 아래와 강의실 사이 가건물 형태로 만들어진 휴게실에는 창문이 없고 바로 앞에 강의실이 있어 문을 열어놓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청소노동자들은 학교 측에 에어컨 설치를 꾸준히 요구해왔다. 최분조 서울일반노조 서울대분회장은 "휴게공간이 마련된 10년 전쯤부터 청소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은 서울대에 에어컨 설치를 요구해왔다"며 "학교 측은 에어컨을 설치할 공간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계속 거절해왔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학생들도 학교 측에 책임을 물었다. 서울대 학생 모임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이하 비서공)'은 14일 성명을 내 "가만히 서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던 공간을 고령의 노동자들은 '휴게실'이라고 부르며 이용하고 있었다"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지원을 받고, 가장 큰 규모의 재원을 운용하며, 최첨단 시설을 갖춘 대학에서 그런 죽음이 발생했다는 것은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비서공은 "학교 측은 이 사망이 단지 고인의 '지병'에 의한 것이었다며 선을 그으려 하고 있다"며 "67세의 고령 노동자를 고용하면서도 비인간적 환경에 그를 방치한 부분에 대한 책임 인정이나 사과 없이 언론에 고인의 죽음을 지병에 의한 죽음이라고만 말하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찰에 따르면 고인의 사인은 병사로 기재됐다. 

서울일반노조는 "우선 열악한 휴게실을 전수조사하고 대책을 세울 것을 학교에 요청했다"며 "학교는 노동조합과 유족에게 충분하고 성실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계단 아래와 강의실 사이 가건물 형태의 휴게실 ⓒ 서울일반노동조합
계단 아래와 강의실 사이 가건물 형태의 휴게실 ⓒ 서울일반노동조합
휴게실 입구 ⓒ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휴게실 입구 ⓒ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겨울 냉기를 막기 위해 천장 틈새를 막은 모습 ⓒ 서울일반노동조합
겨울철 냉기를 막기 위해 천장 틈새를 막은 모습 ⓒ 서울일반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