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혜의 온기] 결국은 다양성의 부재
[최은혜의 온기] 결국은 다양성의 부재
  • 최은혜 기자
  • 승인 2019.08.26 11:26
  • 수정 2019.08.26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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溫記 따뜻한 글. 언제나 따뜻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최은혜기자 ehchoi@laborplus.co.kr
최은혜기자 ehchoi@laborplus.co.kr

요즘 언론을 뜨겁게 달구는 건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논란이다. 후보자 본인이 만들어낸 논란이라기보다는 가족이 만들어낸 논란이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중 우리, 청년들을 눈물짓게 하는 논란은 조국 후보자 딸에 대한 논란들이다. 고등학교 2학년생의 논문 제1저자 등재와 2번의 유급에도 수령한 장학금 등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로 대학가는 촛불을 꺼내 들었다.

물론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이 조국 후보자만의 일은 아니다. 우리는 이전에도 정치인 자녀들의 입시비리, 취업비리를 경험해왔다. 그때마다 청년들은 분노했고 중장년층은 시린 가슴을 매만져야 했다. 그럼에도 이번에 유독 더 강한 분노가 나타나는 이유는 조국 후보자가 그간 보여준 언행 때문이리라.

이번 논란을 두고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이삼십대는 상실감과 분노를, 사오십대는 상대적 박탈감을, 육칠십대는 진보진영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고 있다"며 “조국 후보자의 딸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허탈함은 법적 잣대 이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SNS를 통해 “살펴볼수록 조 후보자가 아닌 입시제도와 교육, 직업 귀천 사회 현실의 문제”라며 “교육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 해결책을 제시하고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우리가 그간 경험해 온 정치인 자녀들의 입시비리 문제의 본질은 ‘대학 만능주의’가 아닐까.

기자가 고등학생이던 시기, 대학입시 전형으로 ‘입학사정관제’가 급부상했다. 언론에서 ‘대도시의 학원가에서는 학부모가 전화해 “우리 아이 이름 좀 현수막에서 내려주세요”라는 부탁이 만연하다’는 내용의 기사가 쏟아졌다. 대학 합격자 발표 기간이면 시내의 학원에 나부끼던 ‘우리 학원 출신 ○○○학생 △△대학 □□과 입학’이라는 내용의 현수막은 입학사정관제의 부상으로 흔적을 찾기 어려워졌다. 자기주도 학습이 입학사정관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소문에 너도 나도 사교육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내신 성적을 끌어올렸다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했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의 내용과는 달리 사교육은 여전히 많은 학생들에 큰 도움이 됐다.

우리 사회는 대학 만능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했다. 기자 역시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아버지로부터 ‘좋은 대학에 입학해야만 한다’는 당부를 들어왔고 또 좋은 대학 하나만 보고 고등학교 시절을 살아냈다.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얘기는 “대학만 가면 다 할 수 있으니까 지금은 공부만 해”였다. 대학까지 졸업한 지금 생각했을 때는 우습지만 당시에는 그게 천명인 줄 알기도 했다.

대학 만능주의가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이유는 다양성이 부재한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학생 때는 공부가 유일한 가치이고 대학에 가서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유일한 가치인 사회. 물론 먹고사는 건 너무나 팍팍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지 않고서도 잘 먹고 잘 사는 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칼럼을 작성하고 있는 기자 역시 가장 두려운 건 ‘만약 이 직업을 잃는다면 뭘 먹고살아야 하지’니까. 그럼에도 후회하는 건 ‘좀 더 어릴 때 다양한 경험을 해봤다면’이다.

다양한 경험, 다양한 생각을 일찍 접해봤다면 기자의 삶도 조금은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다양성의 부재가 다시 우리를 옥죄고 경주마 같은 삶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 누군가 기자에게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가도 공부에 얽매여서 살 것 같냐?’고 묻는다면 선뜻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한 이유를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는 다양성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변명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