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순의 얼글] 왜 처벌이 심해야 당연한 것을 할까?
[박완순의 얼글] 왜 처벌이 심해야 당연한 것을 할까?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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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순의 얼글] 얼굴이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사람의 얼굴을 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교과서는 우리가 각자의 자발성에 기초한 노력으로 양심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쳐왔다. 교과서 말고도 성현들도 그랬고, 자라오면서 만난 어른들은 그런 말을 줄곧 했다. 그런데 우리는 교과서도, 성현도, 어른들도 죄다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뒷받침할 만한 현상을 자주 목격한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있다. 우리가 자주 하는 말이고, 심지어 자발적으로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라는 말을 한 어른들도 하는 말이다. “제대로 혼나봐야 정신 차리지”, “처벌이 약해서 그래”

세상살이가 다 이렇게 냉탕과 온탕을 수시로 넘나들 듯 온도 차가 큰 가치들 사이의 핑퐁이니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하기에 당연한 것들이 지켜지려면 아주 강한 처벌과 규제가 필요한, 뭔가 몽둥이가 있어야 말을 듣는다는 공식이 성립하는 사회는 안타까움이 가득하지 않을까?

이런 물음이 들었던 것은 최근 몇 가지 보고 들은 일들 때문이다. 첫 번째는 청년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으로 재조명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두 번째는 노조의 가입범위는 노조가 정한다는 고용노동부의 해석에도 처벌 규정이 없으니(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하지 못하니) 그냥 어기겠다는 현대엔지니어링, 세 번째는 건설노동자 퇴직공제부금 적립을 고의적으로 누락시켜도 벌금이 약해 벌금을 내고 만다는 사례.

보고 들은 세 가지 일의 공통점은 당연한 일임에도 처벌이 없거나 약하면 쉽게 넘길 수 있음이다.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는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인데 강력한 처벌 없이는 지켜지기 어렵다는 것이고, 노조의 권한에 대한 행정기관의 해석이 옳아도 강력한 처벌 없이는 어길 수 있다는 뜻밖의 포부고, 불안정한 삶을 사는 건설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안전 장치를 위한 규정을 위반해도 처벌 수위가 약하면 뭐 한 대 맞고 말지 식의 깡이고.

이런 사례들을 보며 의문 속에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교과서와 성현들과 어른들의 말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고, 내가 보고 들은 최근의 사례는 ‘사람이 아닌 것’이기 때문에 교과서와 성현들과 어른들의 말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발성에 기초한 양심을 발휘하길 바랐던 나는 안타까움을 표할 필요가 없다. 기업은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일말의 자발적 양심을 기대한 낭만을 강요했던 나의 어리석음이다. 그런데 계속 남는 찝찝함은 무엇 때문일까. 기업을 이루고 있는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봐버린 것, 인간적 경영이라는 단어를 들어버린 것. 이 두 가지가 목구멍에 생선 잔가시로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