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같은 공공노동, 대한민국의 오늘 만들었다”
“공기 같은 공공노동, 대한민국의 오늘 만들었다”
  • 최은혜 기자
  • 승인 2019.08.29 09:21
  • 수정 2019.08.29 09: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공기관의 자율 경영과 책임 경영, 현 상태로는 불가능
경영평가 권한 이관 필요

커버스토리 ③ 인터뷰_박해철 공공노련 위원장

공공기관 경영평가, 문제를 극복하려면…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필요하다. 그렇지만 공공노동자가 볼 때 공공기관의 원래 목적인 공공성을 담아내긴 부족하다. 노정 간 대화 없이 만들어낸 기획재정부의 일방적인 평가지표 설정 때문이다.

그래서 만나봤다. 공공부문 노동조합을 이끌고 있는 박해철 공공노련 위원장,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황병관 공공연맹 위원장,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이상 가나다순)을. 이들에게 공공노동의 가치와 노정 간의 대화와 신뢰 문제에 대해 들어봤다. 아쉽게도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노동대책위원회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일정상의 이유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노정 간 대화의 또 다른 주체인 기획재정부의 입장을 들을 수 없어서 아쉬웠다. 이번 커버스토리 이후에라도, 기획재정부가 입장을 전해오면 반영할 계획이다.

지난 2016년, 기획재정부 앞에서 노숙농성을 주도했던 사람이 있다. 바로 박해철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이하 공공노련) 위원장이다. 68일간의 노숙농성을 통해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을 저지한 박해철 위원장은 지난 6월 말과 7월, 다시 기획재정부 앞에 섰다.

“법 위에 시행령과 규칙, 그 위에 기획재정부의 지침, 가장 위에는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있다”는 박해철 위원장은 기획재정부가 짜놓은 틀대로 공공기관을 운영하다 보니 창의성과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박해철 공공노련 위원장
박해철 공공노련 위원장

Q. 공공기관은 매년 경영평가를 받는다. 공공성과 효율성을 균형 있게 다루고 있는가, 혹은 지침으로 획일적인 평가를 하는 것이 옳은가 등 우려가 매번 나온다. 지금의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필요한 것인가?

공공기관의 주인은 국민이다. 그런 국민들에 공공기관이 적절하게 경영을 잘 하고 있는가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경영평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경영평가는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봤을 때 일정 부분 필요하다고 본다.

이전 정부에서는 공공기관 경영평가가 공공성이 아니라 효율성에 치우쳐 있었다. 공공기관의 태생적인 목적은 국민들에게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효율성, 금전적 가치로 따지다 보니 비용 절감이 필요하고, 비용 절감이 외주화와 민영화를 초래하면서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발생했다. 이번 정권에서는 그런 부분을 개선해 나가려고 하는 의도가 몇 군데서 보이고 있다.

공공기관끼리 인력 운영이나 경영관리 등의 분야는 대부분의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태생적 목적에 따른 기관의 차이가 경영평가에 반영돼야 한다. 우리 회원 조직의 예를 들면, 마사회는 경마산업을 육성시켜나가는 부분, LH는 국토와 국민 임대주택을 통해 국민에 다가서는 등 각 기관별로 고유한 목적이 있다. 사실상 동일한 목적이 없다. 기관에 태생적으로 주어진 목표와 역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획일적인 기준과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맞지 않다.

물론 공통된 분야는 동일한 잣대로 볼 필요가 있지만 그 외에는 기관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해, 자율 경영과 책임 경영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Q. 기획재정부의 획일적인 방식이 아니라 각 기관의 책임과 자율이 반영될 수 있는 유연한 구조의 경영평가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공공기관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운법)에 따라 운영되는데 이 공운법에서는 각 기관의 자율 경영과 책임 경영을 얘기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공공기관의 자율 경영과 책임 경영이 불가능하다. 공공기관은 예산, 정원, 기능, 업무와 더불어 적법하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해 기획재정부로부터 통제를 받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관의 자율 경영과 책임 경영은 포장지에 불과하다. 현실에서는 운신의 폭이 전혀 없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할 때 100점 만점에 여러 배점이 있다. 그래서 공운법의 목적에 맞게끔 경영평가를 운영하기 위해 그 중 일정 점수를 공란으로 두고 각 기관의 설립 목적에 따라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라고 하는 것이 어떤가 생각해봤다. 획일적인 통제 방식보다는 기관에서 잘 할 수 있는 방식을 반영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싶다.

Q. 이번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어떻게 봤나?

노동조합에서는 경영평가 결과에 대해 단 한 마디도 얘기하지 않는다. 경영평가 결과에 연연하면 노동조합의 자주적이고 독자적, 민주적, 주체적인 사고가 경영평가에 굴복하게 되고 예속된다. 그러면 노동조합의 자주적인 활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경영평가 결과가 나와도 그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각 기관에서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를 잘 받기 위해 비공식적인 TF가 만들어진다. 최소 3개월에서 최대 6개월 동안 이 비공식적인 TF, 그러니까 경영평가 대응팀이 꾸려져 활동한다. 모든 조직이 여기에 집중한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를 잘 받는 게 중요해지다 보니 기관의 많은 구성원들의 시간과 열정이 경영평가 대응에 묶이게 된다. 많은 인적, 물적 재원이 투입되고 경영평가를 잘 받기 위한 용역을 준다는 소문도 들릴 정도다. 공공기관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게, 거기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벌어지는 것에 대한 염려가 크다.

Q.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사회적 가치 배점이 늘어났다.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사회적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좋을까?

그간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에는 사회적 가치라는 게 없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사회적 가치 부분이 20~22점으로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사회적 가치는 당연히 포함돼야 한다. 공공기관은 이 사회에서 누구보다도 더 사회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봉사하며 국민들의 요구를 선도해 받아들이는 기관이다.

이번에 사회적 가치에 포함된 일자리, 균등한 기회와 사회통합, 안전 등 몇 개 항목은 노동계에서 그동안 요구해왔던 것이다. 특히 기획재정부는 기획, 통제부처이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공공기관의 주인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안전은 논외였다. 공공부문의 안전은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지표에 넣어야 한다고 요구했는데 공교롭게 작년 12월에 고(故)김용균 님 사고가 생기면서 기획재정부에서 생색내기로 활용하게 됐다.

사회적 가치를 좀 더 잘 제도화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급하게 평가지표에 사회적 가치를 넣었지만, 구체적인 사회적 가치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부족했다. 사회적 가치 부분은 앞으로 공공기관이 추구해야 할지표 중 하나다. 이러한 사회적 가치에 대한 것이 일회성으로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Q.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공정성과 신뢰가 중요한데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이것을 확보하면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뭐라고 생각하나?

공공노동자로 근무한 지 오래됐는데, 현행 시스템 하에서는 절대 방법이 없다. 공운법에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 공운위에 대한 내용이 있다. 이 공운위를 통해서 공공기관의 지정부터 모든 것이 이뤄진다. 공운위의 위원들이 기획재정부 장관의 임명을 받아 구성되다 보니 기획재정부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개선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경영평가의 주체를 기획재정부가 아니라 국무총리실이나 대통령 직속으로 돌리는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공운위를 통해 예산과 인력, 기능 등 공공부문의 사용자로 군림하고 있는데, 평가까지 쥐고 있어 공공기관의 운신의 폭이 없다. 기획재정부와 무관한 곳에서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실시하면 기획재정부가 모든 것을 통제할 방법이 없어지는 것이다.

또, 공운위 위원의 구성을 다양한 계층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가 공익위원 1/3, 사용자 측 1/3, 노동계 측 1/3로 구성되는 것처럼 공운위 역시 사용자인 정부 측 1/3,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국민을 대변할 수 있는 시민사회단체 등 공익위원 1/3, 노동계 1/3로 구성해서 공공기관의 많은 부분을 여기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Q. 노정 간의 대화는 어떤 방식으로 이어져야 할까?

경사노위에 공공기관위원회가 만들어진다. 노정협의의 기본적인 틀이 필요한데 경사노위 공공기관위원회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공공기관위원회에서 처음부터 어렵고 무거운 주제보다는 신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벼운 의제를 먼저 다루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 공공기관위원회를 통해 신뢰가 담보되는 상황에서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공공기관위원회가 우여곡절을 겪는 것은 이 노정협의체가 필요한 이유를 기획재정부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사용자이기에 시키면 된다는 인식을 바꾸는 것이 녹록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노동계가 무조건 불만만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의 요구안 하나하나가 충분히 사회적 의제로 논의될 수 있는 기구이기 때문에 기획재정부가 노동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Q. 공공노동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

지난 정권에서 공공기관이 욕을 많이 먹었다. 부채가 많기 때문이었는데 공공기관의 많은 부채는 국민에게 혜택으로 돌아간다.

공공기관의 수익이 많이 나는 것은 국민을 상대로 수익사업을 했다는 의미다. 공공기관의 많은 부채가 구성원의 고임금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공공노동자들의 땀방울과 공공기관의 부채로 국민은 복지를 누리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모든 선도적인 역할의 주역은 공공분야다. 공공부문은 돈이 되는지 안 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국민이 누려야 할 필수 공공재를 준비하고 민간 영역으로 확대시켜나갔다. 그래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은 잘 모르겠지만 산업 정책 등에서 공공을 빼놓고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없을 것이다. 많은 분야에서 인식하지 못한 채 당연하게 누린 것이다. 그런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 공공노동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