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을 통한 공공성 강화가 곧 효율성 강화”
“‘협업’을 통한 공공성 강화가 곧 효율성 강화”
  • 임동우 기자
  • 승인 2019.08.29 09:20
  • 수정 2019.08.2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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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를 위한 평가는 이제 그만 …
노·사·정, 사회적 협의체로 소통의 장 열어야

커버스토리 ⑤ 인터뷰_허권 금융노조 위원장

공공기관 경영평가, 문제를 극복하려면…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필요하다. 그렇지만 공공노동자가 볼 때 공공기관의 원래 목적인 공공성을 담아내긴 부족하다. 노정 간 대화 없이 만들어낸 기획재정부의 일방적인 평가지표 설정 때문이다.

그래서 만나봤다. 공공부문 노동조합을 이끌고 있는 박해철 공공노련 위원장,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황병관 공공연맹 위원장,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이상 가나다순)을. 이들에게 공공노동의 가치와 노정 간의 대화와 신뢰 문제에 대해 들어봤다. 아쉽게도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노동대책위원회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일정상의 이유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노정 간 대화의 또 다른 주체인 기획재정부의 입장을 들을 수 없어서 아쉬웠다. 이번 커버스토리 이후에라도, 기획재정부가 입장을 전해오면 반영할 계획이다.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

“공격수에게 모든 성과를 준다면, 수비수는 누가 하겠습니까?”

지난 7월 9일, 허권 한국노총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 위원장은 기획재정부 앞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 대정부투쟁 선포대회에서 이렇게 외쳤다. 중구 다동 금융노조 투쟁 상황실에서 인터뷰를 기다리는 허권 위원장에게서 ‘임금피크제 폐기’와 ‘직무성과급제 도입 중단’을 외치던 그날의 모습이 겹쳤다. 허권 위원장을 통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대한 전반적인 입장과 공공부문 정책에 대한 노동계 내부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Q. 공공기관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운법)에 따라 매년 경영평가를 시행해야 한다. 공공기관의 ‘공공성’과 ‘효율성’ 향상이라는 목적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들로 구성됐다고 보는가? 지금의 경영평가가 필요한가?

지표의 구성은 정부 이념에 따라 빈번하게 변경됐다. 특히 공공성보다는 효율성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공공성과 평가라는 개념은 양립하기 어렵다. 공공기관은 시장논리의 효율성을 얘기하면 안 된다. 공공기관은 공공성 강화의 목적 아래 효율성을 함께 강화해 나갈 수 있다. ‘소방관에게 효율성은 무엇인가’를 예로 들어보자. 효율의 측면에서 본다면 적은 인력으로 큰불을 꺼야 한다. 하지만 소방 업무는 국민의 생명 보호를 우선시한다. 정부의 공공영역은 성과와 효율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의 실패 영역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표를 잊어선 안 된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운법) 제1장 제1조에 보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과 자율 경영 및 책임 경영 체제의 확립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하여 경영을 합리화하고 운영의 투명성을 제고함으로써 공공기관의 대국민 서비스 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평가를 통해 기관이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영평가는 필요하다. 다만 공운법에 의거한 경영평가의 취지는 각 기관의 자율 경영 체제의 확립을 위한 것이지 정부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Q. 일각에서는 경영평가에 공공기관별 특수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반영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반영해야 할까? 특수성을 반영할 때, 한편으로 공공기관 간 형평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공공기관의 특수성은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국어 전공자와 수학 전공자의 점수를 비교하여 평가할 수 있을까? 정부에서는 비슷한 기관을 항목화하여 평가한다고 하지만, 사실 비슷한 기관은 많지 않다. 평가를 해야 한다면, 기관별 특성을 반영해야 하고, 특히 노동조합의 의견을 들어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형평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은 옳지 않다. 형평성의 문제는 기관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단일한 점수화를 통해 기관별 줄 세우기를 할 때 성립하는 것이다. 기관별 특수성을 반영해 절대평가로 하면 문제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Q. 최근 2018년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가 발표됐다. 이번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를 어떻게 생각하나? 공공노동자는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볼 수 있는데, 공공기관 경영평가가 공공기관 노동자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들이 있나?

기획재정부에서 정한 기준으로, 평가위원들에 따라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딱히 말할 것은 없지만, 목적과 취지에 맞게끔 결정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시험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시험이 공정했나, 시험문제는 적절했나’ 같은 다방면적인 문제들을 다시 고려해봐야 한다.

공공기관 평가는 그 결과가 공공기관 노동자의 급여뿐 아니라, 국민에게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조직의 영속성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각 기관이 평가에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고,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한 경영평가의 면모를 기획재정부가 교묘히 이용해서는 안 된다. 절대평가제, 패스-논패스제, 우수기관 차기 평가 면제 등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

Q.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대해 타당성, 신뢰성 등을 지적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근본적인 목적과 세부 내용에 대한 개편이 필요하다고 보이는데,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개편돼야 할까?

평가를 위한 평가, 줄 세우기식 평가, 정책 홍보를 위한 평가, 보여주기식 평가, 평가위원의 주관적 평가 등은 지양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 기관, 학자, 국민 등으로 구성된 평가제도 변경을 위한 TF를 구성해 심도 있고 허심탄회한 고민을 해나가야 한다. 또한 공공기관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내부 관계자인 노사 간 협의에 대한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

Q.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사회적 가치가 비계량적 평가이기 때문에 평가 기준을 만들기 어려운 지점이 있는 것 같다. 경영평가에 사회적 가치 평가가 들어가야 한다고 보나? 평가의 기준과 항목은 누가,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공공기관 자체가 이미 사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공공기관은 국민들을 위한 기관인 만큼 기관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노동조합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의논했을 때 훨씬 좋은 방향으로 개선될 것이다. 기재부의 일방적 지침이 아니라 노동조합과 함께 노정협의체, 노사정협의체를 구성해서 소통하면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경영평가 제도의 속을 들여다보고 부정적인 부분을 과감히 잘라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해당기관의 입장을 적극 반영하고 국민과 정부, 학자가 참여하는 형태가 돼야 한다. 기재부의 줄 세우기식 평가가 존재하는 한, 어떠한 기준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임금 관련 문제를 노사 협의가 아닌 정부의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는 헌법 제33조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위반이다. 서로가 존중할 수 있도록 소통의 장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 노동계의 입장이다.

Q. 일자리 창출이 중요해지면서 공공기관들이 채용을 갑자기 늘리는 등 단기적 경영평가 성과에만 매몰되는 등의 갈등에 직면했다. 경영평가를 잘 받기 위해 단기적인 조치에만 집중하는 부작용을 어떻게 보는가?

단기 업적주의는 큰 문제다. 기업, 금융기관 등 거대한 기관들이 중장기 계획을 통해 이루어야 할 과제들이 경영평가 점수를 올리기 위해 변질되고 있다. 이 문제는 특히 사업 분야 계량평가 때문에 초래됐다고 본다. 기관이 하고 싶은 사업, 해야 할 사업을 평가 과제로 선정해야 하는데, 평가위원들은 난이도라는 이유를 들어 기관을 불신하고 마음대로 지표와 목표를 설정해버린다. 이건 비단 평가위원의 잘못이 아닐 수 있다. 줄 세우기식 평가의 큰 틀이 해체돼야 한다.

Q. 평가자인 기재부와 피평가자인 공공기관이 경영평가의 필요성과 결과 등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상호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는 어떻게 확보해야 할까? 또한 신뢰를 기반으로 공동 결정을 이루려면 노·사·정이 각각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상호 신뢰는 소통에서 시작된다. 지금은 장관 면담, 차관 면담, 국회를 통하는 일시적인 대화, 민원 해결식 사안 처리가 지속되고 있다. 노정관계든 노사정 관계든 정기적인 협의체가 많아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지 공식적 협의체를 통해 수많은 얘기가 오가야만 신뢰가 쌓이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느리지만 함께 가는 것이다. 노사정이 합심하여 서로의 입장을 들어보고, 느리더라도 가치 내재적인 결론에 충실하게 다가가야 한다.

Q. 공공기관의 공공성과 효율성은 어떻게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보는가?

‘협업’이 최우선이다. 효율은 공공성의 핵심가치를 지킬 수 있는 방식으로 고려돼야 한다. 주객이 전도되어선 안 된다. 공공성 내에 효율성이 내포되어 있다. 공공성 강화가 효율성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핵심가치를 바라봐야 한다.

Q. 노동계에서는 기획재정부의 일방적인 대화를 비판하고 있다. 노정 간의 대화가 어떤 방식과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나?

이전부터 기재부는 소통의 태도를 보이고 있지 않다. 경영평가 도입으로 기재부의 손에 칼자루가 쥐어지지 않았나. 기재부가 공공기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좌우하고 있다. 자율 경영, 책임 경영을 감시한다는 핑계로 공공기관을 휘하에 두려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소통의 장을 열기 위해, 노사정 모두가 협력하여 사회적 협의체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관리되어야 한다.

Q. 공공노동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어떤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나?

공공성은 개인이 수행하는 개별적 직무가치가 아니라 협업을 통한 직무가치의 합으로만 담보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시대적 역할을 하는 공공성이 무너지면 공공서비스의 생명이 무너지는 것이고, 이는 정책 실패로 이어질 것이며 결국 피해는 국민들의 몫이 된다. 공공노동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즉각적으로 보이는 효율성이 아니라 ‘협업’을 통해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