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노정에 필요한 것, ‘대화의 희열’
지금 노정에 필요한 것, ‘대화의 희열’
  • 최은혜 기자
  • 승인 2019.0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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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경영평가 역시 신뢰의 문제
노정 간 신뢰회복이 급선무

커버스토리 ⑦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앞날

공공기관 경영평가, 문제를 극복하려면…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필요하다. 그렇지만 공공노동자가 볼 때 공공기관의 원래 목적인 공공성을 담아내긴 부족하다. 노정 간 대화 없이 만들어낸 기획재정부의 일방적인 평가지표 설정 때문이다.

그래서 만나봤다. 공공부문 노동조합을 이끌고 있는 박해철 공공노련 위원장,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황병관 공공연맹 위원장,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이상 가나다순)을. 이들에게 공공노동의 가치와 노정 간의 대화와 신뢰 문제에 대해 들어봤다. 아쉽게도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노동대책위원회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일정상의 이유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노정 간 대화의 또 다른 주체인 기획재정부의 입장을 들을 수 없어서 아쉬웠다. 이번 커버스토리 이후에라도, 기획재정부가 입장을 전해오면 반영할 계획이다.

지난 7월 26일 경사노위 6인 대표자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공공기관위원회 신설이 논의됐다. ⓒ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지난 7월 26일 경사노위 6인 대표자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공공기관위원회 신설이 논의됐다. ⓒ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변해야 한다. 1984년에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이 제정되면서 정부투자기관경영평가위원회가 구성됐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몇 차례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정부의 공공기관 길들이기’에 활용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대한 얘기는 필연적으로 노정 간 신뢰의 문제로 귀결된다. 노동계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대한 필요성에는 동감하지만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또 다르다고 지적한다. 결국은 신뢰가 관건이다. 지금 노정의 신뢰관계는 어느 수준일까?

대화는 “서로 마주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을 뜻한다. 대화의 기본은 신뢰다. 노동계와 정부의 대화는 잘 진행되고 있는 걸까? 대답은 ‘아니다’이다. 대화를 하려면 서로 마주 봐야 하는데 노정은 일방통행 중이다. 노정 사이의 대화가 혼잣말이 되지 않으려면 노정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돼야 할까?

공공기관 경영평가가 변하려면…

현재의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정책을 강제로 도입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더 큰 문제는 정권이 바뀌면 정책 기조가 바뀐다는 것이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은 “지금의 경영평가는 어떤 제도를 잘 도입하고 운영했다고 하면 점수 주는 방식”이라며 “제도가 필요한 기관은 어차피 해야 하는 것을 해서 점수를 받는 거고 불필요한 기관은 쓰지도 않으면서 제도를 도입해서 끌려가야 한다”고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방식을 지적했다.

오계택 소장은 이어 “(정책이 경영평가에 반영되니까) 공공부문에 가서 ‘정책 이렇게 됩니다’ 하고 이야기하면 첫 번째 질문이 ‘이거 몇 년 가는 정책이에요?’라는 것”이라며 “기관 입장에서는 이 정책이 5년, 10년, 20년 갈 정책이면 투자를 하겠지만 2~3년 후 폐기될 정책이면 열심히 안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의 기조가 극단적인 경우 정반대로 바뀌기도 하기 때문에 들였던 비용이 쓸모없어지는 현실을 지적했다.

하지만 배근호 동의대 금융보험학과 교수는 “정부 권장 정책이 일부 평가항목에 포함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기관의 특성에 맞춰 노사 협의를 통해 추진하는 것으로 제도 도입을 강제하는 목적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성시경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 평가연구팀장 역시 “국회에서 입법이 되면 밑에 ‘이 사항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반영해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도록 하겠다’는 첨언이 달린다”고 인정했지만 에너지 정책이나 장애인 고용, 여성의 유리천장 해소를 위한 정책 등 공익적인 가치 실현을 위해 정부의 정책이 평가지표에 반영된다고 강조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지표 설정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현재로서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지표가 재설정된다고 해도 지금의 현실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이다. 박해철 공공노련 위원장은 “공운법위에 지침이 있고 그 위에 기획재정부가 있다”고 말한다. 공공기관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운법)에 따라 운영된다. 공운법에 따르면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이하 공운위)를 통해 공공기관 운영의 제반사항을 심의·의결한다. 공운위의 위원장은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공운위원 역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추천하는 방식이다. 공운위는 기획재정부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공공기관 경영평가가 목적에 합당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노동계의 참여가 필요하다.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지표 설정에 대해 “구성원들이 하는 게 제일 모범적이고 수용성도 높아질 것”이라며 “각 기관의 고유한 목적과 운영에 대해 노사가 합의하면 피평가자도 문제점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역시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수용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다는 것이 성시경 팀장의 설명이다. 성시경 팀장은 “2017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경우, 실사단에 대학생을 참가시키기도 했다”며 과정에서의 투명성을 강조하려는 노력을 소개했고 “경영평가단에도 시민사회나 노동조합의 추천을 받아 임명된 사람이 포함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배근호 교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국내에서 행해지고 있는 수많은 평가와 비교할 때 객관적이고 공정하며 효과적인 평가로 볼 수 있다”고 대변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기획재정부가 변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공공기관 경영평가가 바뀌기 위해서는 정부가 바뀌어야 하고, 기획재정부가 바뀌어야 하고, 공운위가 바뀌어야 하고, 공운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만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주관하는 기획재정부로 대표되는 정부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은 “기획재정부가 일방적으로 좌우한다”며 “기관의 자율 경영과 책임 경영을 감시한다는 핑계로 공공기관을 자신의 휘하에 두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목적은 기관의 자율 경영과 책임 경영을 보장하는 것인데 이는 기관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노동조합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야 보장된다는 것이다. 이어 “기획재정부의 일방적 지침이 아니라 노동조합과 함께 논의하고 노정협의체, 노사정협의체를 구성해서 소통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7월 8일부터 10일까지 공공노련, 공공운수노조와 금융노조, 공공연맹이 순차적으로 기획재정부 앞에서 노정 협의를 요구하는 기획재정부 규탄 집회를 가졌다. ⓒ 공공연맹
지난 7월 8일부터 10일까지 공공노련, 공공운수노조와 금융노조, 공공연맹이 순차적으로 기획재정부 앞에서 노정 협의를 요구하는 기획재정부 규탄 집회를 가졌다. ⓒ 공공연맹

노정은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노정 간의 대화 수준에 대해 조양석 공공노련 정책실장은 “기획재정부는 노동조합을 대화의 파트너로 여기지 않는다”며 “정책을 수립하거나 실행할 때 협의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가장 귀찮은 민원인 수준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정 간 실무협상을 논하기 전에 기획재정부는 아직도 노동조합을 가장 귀찮은 민원인 정도로만 치부하고 있기 때문에 실무협상의 걸림돌을 논할 필요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창규 금융노조 전략기획본부 부위원장은 “기획재정부가 대화에 잘 응하지 않고 시간만 보낸다”며 “(노동조합을) 왜 만나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허권 위원장도 “기획재정부가 소통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고 쓴소리를 남겼다. 공공부문의 다른 노동조합에서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기획재정부가 노동조합을 만나기 싫은데 청와대 때문에 마지못해 끌려 나온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노정 간의 대화 테이블은 필요하고 발전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현재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위원장 문성현, 이하 경사노위)에서는 공공기관위원회 발족을 추진하고 있다.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양대노총 공대위) 관계자가 <참여와혁신>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경사노위 제4차 대표자회의에서 공공기관위원회를 경사노위 산하 업종별 위원회로 설치할 것을 심의·의결했다. 지난해 11월부터 3차례 진행됐던 준비간사회의를 통해 위원회 구성과 의제에 대한 노정 간 협의를 진행했으나 이견 발생으로 발족 논의가 중단됐다. 올해 4월 ‘경사노위-노동계 간담회’를 통해 재추진이 합의됐으나 노정협의가 적극적으로 진행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양대 노총 공대위의 한 관계자는 “진척이 잘 안 된다”고 했고, 다른 관계자 역시 “우리의 요구를 쭉 읊으면 ‘검토하겠습니다’ 하고 끝인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7월, 경사노위의 요청으로 기획재정부와 노동계가 대화의 물꼬를 텄다. 7월 25일에는 공공기관위원회 발족을 위한 경사노위와 기획재정부, 노동계의 비공식 간담회가 있었고 지난 8월 14일에는 제6차 준비간사회의를 통해 정부의 의제를 노동계에 전달하기도 했다.

문제는 노정 간 신뢰 부족

대화는 신뢰가 기반이 됐을 때 가능하다. 신뢰가 없는 대화는 혼잣말에 불과하다. 그러나 노정 간의 신뢰는 매우 부족하다. 정윤희 공공연맹 정책실장은 “(기획재정부로 대표되는) 정부와 노동조합 간의 신뢰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는 정부를 못 믿고 정부도 우리를 못 믿는다”며 “신뢰를 어떻게 쌓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노정 간의 신뢰 부족을 지적하는 것은 노동계뿐만이 아니다. 오계택 소장 역시 노정 간의 대화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신뢰 문제를 지적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점수를 받기 위해 필요하지도 않은 제도를 도입해 끌려가는 것이 바로 신뢰 부족에서 오는 사회적 비용이라는 것이다.

성시경 팀장은 “과거 서로 간의 경험이 신뢰를 높이는 쪽으로 온 건 아니다”며 “서로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지난 정부의 성과연봉제 추진 등의 과정에서 봤을 때 제도가 아무리 합리적이어도 노동자 입장에서는 신뢰를 형성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과거에 얽매이기보다는 새롭게 얘기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로 믿지 못한다면 공공기관 경영평가 제도를 만들어나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노동계 일부 관계자는 “신뢰를 형성하기 위한 준비가 돼 있다”며 기획재정부가 공공부문에서 군림할 것이 아니라 노동계를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중요한 건 지금까지 기획재정부의 생각이 노동계에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부터 논의됐던 공공기관위원회의 정부 측 의제는 약 10개월이 지난 8월 14일에야 노동계에 전달됐다.

여전히 노정 간의 대화는 한 쪽은 방어만, 한 쪽은 반대만 하고 있다. 서로 마주하고 있지만 얘기를 주고받는 것이 아닌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합의를 남기기 위한 노정 주체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노정 간 신뢰 회복을 위한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전향적인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