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우의 부감쇼트] 우리들의 일그러진 ‘피핑 톰’
[임동우의 부감쇼트] 우리들의 일그러진 ‘피핑 톰’
  • 임동우 기자
  • 승인 2019.08.30 11:15
  • 수정 2019.08.30 15: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른 말로 버즈 아이 뷰 쇼트(bird’s eye view shot).
보통에서 벗어난 시각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싶습니다.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하인리히 뵐이 쓴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원시적 본능을 자극하고 흥미 위주의 보도를 하는 ‘옐로 저널리즘’에 대해 말한다. 뵐은 “사람이 살 만한 나라에서 사람이 살 만한 언어를 찾는 일”을 작가로서 해결해야할 중요한 과제로 보았고, 이 작품이 소설이기보다 이야기이길 강조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소통될 수 있는 콘텍스트이길 바랐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언론 <차이퉁>은 범죄의 전말을 범죄자와 매력적인 카타리나의 스캔들로 소개하면서, 소박하지만 자부심 있는 개인으로서 살아온 카타리나를 언론의 조작된 진실 속으로 밀어 넣는다. 넝마가 된 일상을 살던 카타리나는 결국 자신을 대중의 관음 한가운데로 몰아버린 기자를 총으로 쏴 죽이기로 결심한다.

뵐의 이야기는 언론이 대중의 원시적 본능을 자극하기 위해 조작된 이슈를 생산해내는 과정과 조작된 진실이 어떻게 개인을 파괴하는지 보여주고, 이후 넝마가 되어버린 개인의 삶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질 것인지 대해 묻는다. 1974년에 쓰인 이 이야기는 최근 수만 건씩 쏟아진 기사들을 떠올리게 한다.

최근 어느 종편에서는 자신의 집에 주차중인 장관 후보자의 차량이 ‘주차중’이라며 뉴스속보로 카메라에 담았다. 여론몰이에만 집중하는 언론, 이슈의 본질에 접근하려 하지 않는 언론, 이러한 언론이 향하는 펜촉의 방향은 누군가에게 정신적 폐허를 안겨다주기도 한다.

언젠가 ‘자식을 살해한 부모보다 불륜을 저지른 유명인이 더욱 질타 받는 현실이 외려 반대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문장을 스치듯 읽으면서, 무수히 쏟아지는 뉴스를 접하는 우리가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고 흥분과 흥미로 이를 단정하고 있진 않은지 생각했다.

‘피핑 톰(Peeping Tom)’. 11세기 영국에서 유래된 이 말은 ‘호색가’, ‘엿보기 좋아하는 사람’ 등을 뜻한다. 주민들의 세금을 낮추기 위해 영주의 부인 고다이버가 벌거벗고 성내를 돌 때, 유일하게 알몸을 훔쳐본 자가 톰이다. 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나 결국 장님이 되고 말았다.

글쓰기도 읽기도 모두 ‘본질’로 되돌아와 ‘부끄러움’과 ‘반성’이 되어야 한다.

문장은 칼날과 같아서 마구잡이로 다루다 보면 자신의 눈을 찌를지도 모를 일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