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르포]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 철거만 남은 노량진 수산시장의 마지막 잔상
[포토르포]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 철거만 남은 노량진 수산시장의 마지막 잔상
  • 손광모 기자
  • 승인 2019.08.30 17:05
  • 수정 2019.08.31 14: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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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아보자는 욕망은 잘못된 것이었을까?
우리는 과연 이들과 얼마나 다를까?
폐허가 된 노량진 구 시장의 모습.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2015년 10월 노량진 수산시장 앞에 수산시장이 하나 더 생겼다. 하나는 구시장, 다른 하나는 신시장이라고 불린다.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이하 수협)는 2016년 3월 16일까지 구시장의 상인들에게 신시장으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구시장 상인들은 거부했다. ‘높은 임대료’, ‘좁아진 시설’ 등 상인들은 기존 합의에 벗어난 지점들을 이야기했다. 처음의 그 거부가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졌을 거라고 그때 누가 감히 예상을 했을까.

수협은 구시장 상인들에게 50여 차례 설득을 하고, 8차례의 입주기회를 지난 3년간 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협상은 타결되지 않았다. 왜일까. 수산시장 주변에서 오랫동안 노점을 운영하는 상인은 단순명료하면서, 또 무심하게 그 이유를 말했다. “보증금 주면 다 나갈 사람들이야. 이제 다시 못 들어가지. 3년을 애먹였는데 누가 다시 받아주겠어. 나 같아도 안 그래.”

2017년 4월 노량진 구시장에 대한 명도철거가 예고됐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0여 차례의 명도집행 끝에 구시장은 폐허가 됐다. 전기와 물도 끊긴 지 오래다. 활어처럼 펄떡거리던 시장의 활기는 옛이야기일 뿐이다.

노량진의 비극은 현재 한국을 살아가는 모든 소시민들이 처하게 될 구질구질한 비극이기도 하다. 돈에 대한 욕망이 곧 삶의 대한 욕망으로 풀이되는 이때, 우리는 노량진의 비극을 담담히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잘 살아보자는 욕망은 잘못된 것이었을까? 우리는 이들과 과연 얼마나 다를까?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법보다 주먹이고, 법보다 밥이야”

지난 8월 15일, 대한민국이 광명을 찾은 날 노량진 구시장은 여전히 깜깜했다. 그 암흑 속에도 아직 시장을 지키는 상인은 남아있었다. 30년 동안 노량진 수산시장에 도매업을 해왔다던 상인은 주변인으로서 냉정과 따스함을 동시에 느껴지는 말을 했다. “구시장, 신시장 상인들이 서로 자기 발등을 찍은 거야. 구시장은 이제 완전히 끝났지. 이제 오고 싶어도 못 와. 그동안 안 낸 임대료 낼 돈이 없어서 못 오는 사람도 있고, 강성인 사람도 있지. 그래도 기사 쓰려면 저기 구시장 분들 위주로 잘 써줘. 안타깝잖아. 안쓰럽고.”

남아있는 구시장의 상인들도 법적으로는 이미 끝난 상황이란 걸 알고 있었다. 법의 판단에서 패배한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의’를 찾고 있었다. “법으로는 그들을 이길 수 없는 걸 알아요. 그런데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그들도 법을 지킨 게 없는 거예요. 법원이든, 경찰이든 수협이든 다 한 통속이죠. 법보다 주먹이에요. 하지만 법보다는 밥이에요. 우리는 살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여기 있는 겁니다.”

텅 빈 노량진 구시장에는 상인들이 끌어다 놓은 전깃불만이 환하게 불을 밝혔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보상한다고 하면 절대로 가만있지 않을 걸요?”

신시장의 상인들은 구시장의 상인들에 대해 말을 쉽게 떼지 못했다. 바쁜 생계 속에서도 마음 속 언저리 어딘가 무거운 짐을 안고 있는 듯했다. 신시장의 한 상인은 기자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약자가 당한거지. 안쓰러워. 내가 만약에 위치를 바꿔서 저기 있었다 해도 그럴 거야. 처음부터 설계가 잘 됐다면 이런 일은 없었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안타까움이 고릿한 수산물의 냄새와 섞여 신시장의 공기를 메웠다.

노량진 신시장에 걸려있는 현수막. 구시장에 ‘불법’딱지가 찍혀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하지만 ‘일용할 양식’을 두고 싸운다면 ‘안쓰러움’이라는 감정은 사치일까. 수협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미 들어오신 분들도 참고 있는 거예요. 지금이야 그 사람들이 쫓겨 날 처지니 안타깝게 바라보시겠지만, 그분들한테 보상금을 드리겠다고 하면 어떻게 나오겠습니까? 절대로 가만있지 않을 분들이에요.

지금 저희들이 ‘그분들한테 절대로 보상은 없고 퇴거밖에 없다’ 이렇게 이야기를 드리니까 그렇게 나오는 이야기죠. 보상을 고려해보겠다 얘기 나오면 절대로 가만있지 않으실 거예요. 그럼요 당연한 거죠. 자기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시겠죠.”

수협 사무실이 있는 신시장 5층에서 바라본 구시장의 전경.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모든 단단한 것들은 공기 속으로 녹는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모든 단단한 것들은 공기 속으로 녹는다’(All that is solid things melt into Air)라고 말한 바 있다.

어디서부터 노량진의 비극이 시작되었을까. 이 질문은 야속하게도 노량진 구시장이 철거되기 전까지만 제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잊는다.

구시장의 상인들은 수협과 국가의 비정한 폭력을 말한다. “아주머니들 힘이 없다. 용역 직원들 100kg 넘어가는데 밀치고 들어오면 할 수 있는 건 욕밖에 없다. 그래서 살짝 건드리면 때렸다고, 쳤다고. 그렇게 욕을 한다. 맞기도 했다.” 수협 직원들은 이렇게 말한다. “같은 기간 동안 저희 직원도 정말 어떻게 보면 평범한 회사직원들이 겪을 수 없는 일을 3년 간 겪었어요. 매번 나가서 욕 듣고…. 직원들 보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같은 것도 있을 거예요.”

상처와 씁쓸함밖에 남지 않은 이곳 노량진에서 우리는 좀 더 현명할 수 없었을까. 노량진 구시장이 철거된다면, 이곳에서 있었던 상처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공기 속으로 녹아 없어질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기억하고 복기할 의무가 있다. 다시금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신시장 쪽에서 바라본 구시장의 전경.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테이블 위에는 빈 소주병과 아직 마르지 않은 물자국이 있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노량진 구시장 상인들은 명도집행이 간판싸움이었다고 말했다. 간판을 지키면 명도집행이 되지 않는 것이고, 빼앗기면 명도집행이 된 것이었다. 구시장의 곳곳의 철조망은 저항의 흔적이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노량진 구시장을 가로막은 트럭 에 누군가가 ‘수협은 도둑놈’이라고 적어두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노량진 구시장이 건재했음을 쓸쓸히 알리는 표지판. ‘365일 정상영업 합니다’라는 말은 거짓말이 돼버렸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이야기를 나누는 노량진 구시장의 상인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