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12시간 경찰청 검시조사관 동행 취재
기자의 12시간 경찰청 검시조사관 동행 취재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9.08.30 17:05
  • 수정 2019.09.02 14: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검시조사관과 함께 본 죽음의 풍경들

[리포트] 경찰청 검시조사관 동행 취재

귀신을 믿으세요? 취재를 마치고 기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쌩뚱맞게도 ‘귀신이야기’였다.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날 그 사람의 뻣뻣한 몸, 멈춰있는 눈동자가 좀처럼 잊혀 지지 않았다. 생전에 그를 만나본 적이 없기에 기억할 수 있는 거라고는 딱 그 순간, 그 장면뿐이었다. 어쩌면, 귀신이야기는 정작 변사 사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 튀어 나온 방어기제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8월 14일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과 과학수사대 10팀 권오영 검시조사관(41)을 함께 따라다니며 검시조사관의 하루를 그려보았다. 12년 차 베테랑 검시조사관인 그는 한 때 대학병원에서 수술 간호사로 일했다. 하지만 그는 병원 현장과 변사사건 현장에서 죽음의 모습은 크게 달랐다고 말한다. 

권오영 검시조사관이 현장 검시에 나서고 있다. 그는 과학수사 조끼가 무겁고 두꺼워서 여름에는 입기가 불편하다고 했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권오영 검시조사관이 현장 검시에 나서고 있다. 그는 과학수사대 조끼가 무겁고 두꺼워서 여름에는 입기가 불편하다고 했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8월 14일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서울지방경찰청 광역과학수사대 10팀에 도착했다. 광역과학수사대 10팀은 강북구와 노원구, 도봉구를 관할한다. 과학수사요원 19명과 검시조사관 3명이 3교대로 오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일한다. 변사사건이 경찰서 지구대나 112 지령실로 접수되면 지구대원들이 초동 출동해서 사건 현장을 보존하고, 이어 경찰서 형사팀과 과학수사대원들이 출동한다.
과학수사대원들은 현장 감식이나 검시 조사를 통해 범죄 혐의나 특이사항을 파악하면서 형사의 업무를 지원한다. 변사사건 중 타살이 의심되거나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는 국과수(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관과의 원격 자문이나 부검 의뢰가 진행된다.
권오영 검시조사관은 이미 변사사건 현장을 나간 뒤여서 자리에 없었다. 과학수사요원들이 자리를 비운 수사대는 더욱 더 한산했다. 도로를 달리는 차 소리만이 수사대 안을 쉬잉 쉬잉 파고 들려왔다.

오전 10시 30분. 권오영 검시조사관이 2건의 검시를 마치고 수사대로 돌아왔다. 그는 자리에 앉아 검시결과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현장 검시 내용을 문서로 구체화하고 기록하는 과정이다. 검시결과서는 사건 담당 형사에게 전달된다. 형사는 고인의 사망 원인을 추정할 때 한 번 더 검시결과서를 참고한다(형사는 현장에서 검시를 직접 지켜본다). 또, 검사에게 지휘서를 올릴 때 검시결과서를 첨부하기도 한다. 변사 사건은 검사의 ‘검시 필증’이 있어야 변사자의 장례가 가능하다.
권오영 검시조사관은 검시결과서에 변사자의 굳기, 눈꺼풀의 결막 상태, 사후 반점 등을 꼼꼼히 기록했다. 이러한 외적 지표는 변사자의 사망 시간과 원인을 추정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는 유서의 내용이나 널브러진 소주병 같이 최초 변사 현장의 특이사항들도 적었다.

살인사건 현장에서 사용하는 검시 도구들. 일회용 핀셋, 손톱깎이, 면봉, 급성심근경색 키트, 증거물 봉투 등이 들어 있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살인사건 현장에서 사용하는 검시 도구들. 일회용 핀셋, 손톱깎이, 면봉, 급성심근경색 키트, 증거물 봉투 등이 들어 있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검시조사관과 함께 본 죽음의 풍경들

오전 11시. 지구대에서 변사사건이 접수됐다고 연락이 왔다. 권오영 검시조사관과 함께 강북구 미아동에 위치한 주택으로 갔다. 권오영 검시조사관은 기자에게 마스크를 건넸다.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기본 마스크였다. 변사자의 질병으로 인한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 헐거운 마스크 하나가 검시조사관의 몸을 단단히 지켜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권오영 검시조사관은 마스크 말고도 위생 장갑과 덧신, 검시에 필요한 도구를 담은 검시가방을 챙겼다.
현관문 앞에는 점박이 개 한 마리가 뒷다리에 붕대를 맨 채로 힘겹게 기고 있었다. 반기는 것인지, 슬퍼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맥아리’가 없었다. 변사자의 아내는 침침한 부엌 식탁 의자에 조용히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다지 놀란 기색이 없었다. 여든이 넘은 남편의 죽음을 덤덤히 받아들이고 있는 듯 했다.
A씨(82)는 정갈한 자세로 자신의 방에 누워 있었다. 아직 온기가 머물고 있었다. 꼬옥 감긴 눈이 편안해보였다. 생전에 아내와 가족의 손길이 지속됐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검시를 지켜보고 싶다고 했다. 권오영 검시조사관은 정중히 물리쳤다. 그는 “검시는 결코 좋은 이미지로 남지 못한다”며 “타살 혐의가 크지 않는 한 보지 않을 것을 권유한다”고 말했다.
아들이 방을 나간 뒤에는 권오영 검시조사관과 과학수사요원 2명, 담당 형사 1명이 남았다. 권오영 검시조사관은 할아버지의 옷가지를 조심스럽게 거둬내고 검시를 시작했다. 검시는 머리부터 목과 몸통, 양팔과 다리 등의 순서로 이뤄졌다. 그는 머리에 부종이나 외상이 없는지 확인한 뒤 눈꺼풀을 뒤집어 점막 상태를 확인했다. 점 출혈 등 눈꺼풀이나 구강의 점막 상태로 목 졸림 등에 따른 질식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목에 끈이나 조름 자국이 있는지, 몸통이나 갈비뼈에 골절은 없는지, 배가 볼록한지, 출혈이 있는지, 복수가 찼는지 등을 확인했다. 또 양손과 팔, 다리를 차례로 들어보고, 뒤집어보면서 공격을 막기 위해 생긴 손상이나 멍, 특이한 외상이 있는지 살폈다. 몸통을 뒤집은 뒤에는 등 뒤나 하지에 시체얼룩을 살폈다. “특이사항이 없다”는 말이 이어졌다.
중간에 줄자로 욕창의 길이를 쟀다. 마지막으로는 할아버지의 키가 155cm가 된다고도 덧붙였다.
검시가 진행되는 동안 과학수사요원 한 명은 카메라로 할아버지의 전신을 구석구석, 찰칵찰칵 찍었다. 다른 과학수사요원과 담당 형사는 권오영 검시조사관의 검시 내용을 빼먹지 않도록 신속히 그의 말을 받아 적었다. 생전에 장기기증을 약속한 할아버지는 인근 대학교 병원으로 옮겨진다고 했다.
이렇게 하루 5~6건. 많게는 13건의 죽음까지도 마주한다고 권오영 검시조사관은 담담히 말했다.

과학수사 요원이 현장 감식하는 모습.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대
과학수사 요원이 현장 감식하는 모습.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대

낮 12시. 다행히 이날은 점심시간을 피해서 신고가 들어와 주었다. 신고가 들어오면 밥을 먹다가도 현장으로 가야 한다. 그와 팀원들이 현장 조사 사이사이에 틈틈이 밥을 먹는 이유다.

오후 4시 30분. 수사대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노원구 공릉동으로 향했다.
권오영 검시조사관은 현관문을 살폈다. 그는 현관문을 보면 ‘촉’이 온다고 했다. 집이 깨끗한지, 사람이 들락거리는 집인지, 가족이랑 사는지, 혼자 사는지 등을 보면 검시를 할 때 무엇을 중점적으로 볼지 가늠이 된다고 했다.
B씨(53)는 50대 초반이었지만, 제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 보였다.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몸과 거친 피부 때문이었다. B씨는 유독 하얀 매트리스 침대 위에서 두 팔을 뒤로 젖혀 걸터앉은 자세로 멈춰 있었다. 그의 눈과 입은 크고 동그랗게 열려 있었다. 권오영 검시조사관은 알코올성 합병증에 따른 내인성 급사로 추정된다고 했다. 접이식 식탁 위에는 640㎖짜리 빈 소주 페트병 9개가 널브러져 있었다. 안줏거리는 없었다. 에어컨은 계속해서 찬바람을 날려 주었다. 에어컨 때문에 더운 날씨에도 부패는 더디게 진행됐다. 권오영 검시조사관은 보다 정확한 사망 시간 추정을 위해 행적 추적 수사가 추가로 이뤄질 거라고 했다.
B씨는 방 하나에 부엌과 화장실이 딸린 8평 남짓한 집에서 혼자 지내온 듯했다. 그의 500ℓ 냉장고는 아무런 먹을거리도 없이 텅텅 비어 있었다. B씨가 생전에 얼려 놓은 얼음만이 단출히 냉동실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화장실 변기에는 그가 갈기어 놓은 오줌 자국들이 눌러 붙어 누렇게 말라 있었고, 주변에는 미처 빨지 못한 속옷들이 여기 저기 내팽겨져 있었다. 그런데도 살림살이가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어서 집안 전체적으로는 깨끗한 인상을 주었다. 권오영 검시조사관의 말처럼 변사자의 생활환경이 그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집 밖에선 B씨의 누나로 보이는 사람이 담벼락을 짚고 울다가, 그쳤다가, 다시 눈물 쏟기를 반복했다. 슬리퍼 차림의 남매는 자꾸 아버지로부터 저만치 멀어져 가면서 한 방울 한 방울 조용하게 눈물을 떨구었다. 민간 운구차는 뒷문을 연 채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뒤로는 동네 주민들이 하나 둘 모여 “무슨 일이냐”며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운구 업체 직원이 “별일 아니다”라고 말을 아끼자 주민 한 사람은 “어째서 알려주지 않는 것이냐”면서 짜증을 부렸다.

권오영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대 10팀 검시조사관.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대
권오영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대 10팀 검시조사관.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대

오후 5시 40분. 수사대로 복귀하던 중 신고가 또 들어왔다. 두 번째 현장으로 바로 이동했다. 사건들은 과학수사대 모바일 채팅방에서 수시로 공유됐다. 이번에는 아기자기한 정원이 딸린 가정집이었다. 아흔의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C씨(90)는 방 안에 쓰러져 있었다. 오른손은 마른 변으로 까매져 있었다. 혼자서 자신의 것을 치우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할머니의 방은 온갖 살림살이로 빼곡하고, 퀴퀴했다. 붙박이 장롱과 텔레비전, 이불가지와 접이식 식탁 등등… 꽤 오랜 시간 동안 이 방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거의 대부분의 생활을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반면, 바로 옆에 딸린 부엌은 전혀 다른 사람의 집처럼 접시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가스레인지는 신문지로 덮여 있었다.
오랫동안 부엌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 옆방엔 냉장고와 가구 몇이 듬성듬성 놓여 있었다. 할머니의 방과는 대조적으로 햇빛이 가득 들어왔다. 이 방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다.
C씨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강원도 춘천시에서 왔다고 밝힌 지인이었다. 그는 “너무 무서웠다”면서 “장례식에서나 다시 봐야겠다”며 집을 나갔다. 어느새 현장으로 온 C씨의 며느리는 “모기가 물어서 먼저 집에 가 있겠다”고 말했고, 남은 아들만이 문 앞에 서서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권오영 검시조사관은 변사사건 현장에서의 ‘슬픔’이 변사자와 유족, 지인 간의 관계가 어느 정도인지를 드러내준다고 했다. 그는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자기 역할이 줄어든다. 그러면서 점점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잊혀간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죽음을 마주할 때 자신의 미래도 그려본다고 했다.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데 특히, 성범죄나 천재지변 같은 사고로 숨진 여성이나 어린아이, 고독이나 질병으로 목숨을 끊은 노인 분들을 볼 때면 죽음에 관한 생각이 더욱 더 이어진다고 했다.

저녁 7시 15분. 긴 여름의 해도 뉘엿뉘엿 져갔다. 권오영 검시조사관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앞으로 근무는 14시간이나 더 남았다.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이 시간부터는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이들이 변사자를 발견하고 신고를 한다고 했다. 수사대로 복귀한 그는 다시 검시결과서 작성에 몰두했다. 형사는 수시로 전화를 걸어서 권오영 검시조사관에게 결과서의 내용을 묻고, 확인하고, 또 설명을 들었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대 10팀 내부 벽면에는 과학수사요원이 그린 팀원들의 모습이 걸려 있다. 그는 범인의 몽타주를 그리는 수사요원이라고 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대 10팀 내부 벽면에는 과학수사요원이 그린 팀원들의 모습이 걸려 있다. 그는 범인의 몽타주를 그리는 수사요원이라고 했다. © 참여와혁신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저녁 9시. 여전히 그는 검시결과서 작성에 여념이 없었다. 언제, 또 신고가 들어올지 모르니, 그 틈에 최대한 작성을 마쳐 놓으려는 듯했다.
그는 검시조사관의 일을 크게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했다. 하지만 온 몸에 개미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끔찍한 두드러기가 몇 년 전에 갑자기 찾아와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이날 기자에게는 말로 다 하지 않는, 검시조사관이란 직업으로 살아가며 감내해야 하는 고충이 만만치 않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래도 그는 자꾸 “이제는 일상이 돼서 괜찮다”며 “시간이 날 때마다 배드민턴을 치면서 현장에서 본 것들을 잊는다. 과학수사요원들 저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 활동이나 운동을 많이 한다”고 도리어 기자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시신이 심하게 훼손되거나 변사자의 안타깝고, 공감되는 사연들은 어쩔 도리 없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물론 모든 변사사건이 조금씩은 다 뇌리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삶이 검시조사관이 되기 전과 후로 크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검시조사관이 된 지 7~8년이 됐을 때 ‘모든 욕심을 버리게 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떻게든 돈을 더 벌고, 진급을 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이제는 돈이고 뭐고 필요 없다. 건강이 최고다, 건강한 게 제일 행복한 것이다, 이렇게 신조가 바뀌었다. 현장에서 갑자기 죽은 사람들,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많이 보다 보니 지금은 건강하고 아무 일 없이 사는 것에 감사하다.”

권오영 검시조사관은 “미제 사건을 푸는데 검시가 단서가 돼서 범인이 잡혔을 때 가장 뿌듯하다”며 “소수이지만 가장 필요한 곳에서 일한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검시조사관이 현장에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9년 7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검시조사관은 모두 150여 명이다. 이 가운데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검시조사관은 18명에 불과하다. 18명의 검시조사관들은 서울 지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사사건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매해 3,500여 건의 검시를 맡고 있으며 검시조사관 1인당 연간 검시 횟수는 250건 정도다. 다른 팀 검시조사관이 휴가를 가거나 부재할 때는 그 팀이 관할하는 지역의 변사사건도 맡아야 한다.

기자가 수사대를 나설 때쯤 신고가 하나 더 들어왔다. 어떤 죽음이 또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권오영 검시조사관의 말처럼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하지만 그는 변사자의 몸과 현장을 통해서 변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렇게 검시조사관들은 오늘 죽은 이들의 말 없는 목소리를 통해, 살아 있었던 그의 어제를 복원했다. 그리고 혹여라도 살아있었어야 할 내일은 아니었는지를 추적했다. 그렇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살아가고 있었다.

과학수사요원들이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 먹는 방식 역시 ‘과학적’이었다. 이들은 평소 일이 만만치 않은 만큼 일터에서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과학수사요원들이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 먹는 방식 역시 ‘과학적’이었다. 이들은 평소 일이 만만치 않은 만큼 일터에서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 참여와혁신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