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회사는 ‘노동조합’이다
내 회사는 ‘노동조합’이다
  • 강은영 기자
  • 승인 2019.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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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노조활동가들이 말한다
“2030세대 끌어들이기 위한 노조의 변화 필요”

[리포트] 젊은 노조활동가

노동조합 집회 현장에는 많은 조합원들을 볼 수 있다. 색색깔의 조끼를 입고 햇볕을 피하기 위해 모자를 쓴 이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 40대 중·후반의 이른바 중장년들이 많다. 집회 속 젊은이들의 얼굴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지난 2018년 노동계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한국의 대표적인 IT기업이자 2030세대들이 많은 네이버에 노동조합이 설립된 것이다. ‘고인 물’ 취급을 받던 노동조합에도 젊은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20대 중 ‘노동조합’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들을 만나봤다. 이들은 왜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것을 선택하게 됐을까. 또, 젊은 세대들이 ‘노동조합’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생각했던 것보다 젊은 노조활동가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또한, 실명을 원치 않아 대부분 익명 처리했다. 향후 몇 년 후에는 익명 처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더 많은 젊은 노조활동가들이 생기길 바라본다.

나의 두 번째 회사, 노동조합

직접 만난 20대 노조활동가들은 노동조합에서 일한 지 1년이 채 안 된 경우가 많았다. 또한, 이들에게 노동조합은 평균적으로 자신의 두 번째 회사였다. ‘노동조합’을 자신의 회사로 택한 사연을 들어봤다.

상급단체가 없는 노동조합에서 일하고 있는 A(28)씨의 주요 업무는 언론홍보다. 미디어 매체에서 일했던 A씨는 경력을 살려 일하고 있다. 그는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며 그들을 위해 투쟁하는 모습이 멋있다고 느꼈다”며 “노동자를 위해 노조와 함께 일해보고 싶었고, 노동조합이니 만큼 근로기준법을 잘 준수하고 정년을 보장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고 계기를 설명했다.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소속 단위사업장 노조에서 근무하고 있는 B(28)씨도 반 년 정도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노동조합에 발을 들여 언론홍보 업무를 하고 있다. 그가 회사에 들어오게 된 데에는 지인의 추천이 컸다고 한다.

B씨는 “노동이라는 분야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문제나 약자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젊은 친구들이 노동조합에 들어간 적이 없어 사전 자료나 정보가 없어서 고민이 많았고, 이 길을 굳이 가지 않아도 다른 선택지가 있었는데 포기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고백했다.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얼굴이 많이 알려진 류호정(27)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이하 화섬식품노조) 선전홍보부장은 유튜브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한 온라인 홍보와 운영 관리, 컨텐츠 기획 및 제작 업무를 하고 있다.

류 부장이 노조에 들어오게 된 사연은 조금 특별하다. 분당의 유명 게임회사에서 3년 반 넘게 근무하던 그는 2년 연속 상위 평가를 받은 인재 중 인재였다. 근로자대표로 활동하던 중 “회사가 형식적으로 행동하며 근로자대표의 의견을 제대로 청취하지 않은 채 도장만 찍으라는 식으로 말했다”며 “이런 상황 속에서 노조를 만들 생각을 갖게 되고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했는데 회사에서는 권고사직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회사의 권고사직 압박으로 퇴사한 류 부장은 한 동안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회사에는 노조가 설립되고, 회사를 떠난 후에도 화섬식품노조 상근자들과도 연락을 주고받았다. 류 부장은 자연스럽게 노동조합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주변 시선들은 어떨까. A씨는 “노동조합에서도 강한 강도로 일을 시키는 것에 놀라는 경우가 있다”며 “야근과 휴일 근무가 잦은 것에 대해 노동조합에 대해 생각이 없던 이들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것 같다”고 고된 업무를 하소연했다.

B씨는 “학생운동을 해본 이력이 없고 평범하게 살아온 지라 주위 사람들도 노동조합에 대해 잘 모른다”며 “대부분 응원해주고 가족들에게도 아직 젊으니 일해 보고 싶다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류 부장도 “학생시절에 탈정치적 성향을 보였기 때문에 노동조합에서 일하게 된다고 말하면 ‘너는 그런 애 아니었잖아’라는 반응이 많았다”면서도 “엄마는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열심히 가르쳐 서울로 대학 보내고 번듯한 직장에 보내놨더니 다 때려치우고 노동조합에서 일한다고 마음에 안 들어 하신다”고 ‘웃픈’ 사실을 고백했다.

노동조건 개선에는 귀 기울여주지만, 휴일 보장은 부족

‘입사’한 지 1년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회사로서 ‘노동조합’은 몇 점인지 평가를 부탁했다. 자신의 직장에 만족하는 이들이 많지 않은 것을 감안한다면, 회사로서의 노동조합도 다른 회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B씨는 60점 정도를 주고 싶다고 했다. “사회 현상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80~90점 정도의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면서도 “노조에서 몇 년 일한 뒤에는 다른 곳에서 근무하기가 어려운 점에서 낮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평가했다.

류 부장은 이전 회사는 60점, 화섬식품노조에는 80점을 줬다. “여름휴가가 있는 회사를 다닌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노동조합도 무조건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자신의 삶을 누릴 수 있는 휴가권이 적절하게 보장된다는 점이 좋다”고 설명했다.

A씨는 50점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고용안정성이 보장된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지만 그 밖의 처우나 복지가 떨어져 회사로서 점수는 50점”이라고 밝혔다.

자신의 노동권을 보호하는 울타리로서의 ‘노동조합’이 아닌, 직장으로서 ‘노동조합’이 가진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도 들어봤다.

B씨는 “다른 회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초년생이 어느 정도 대우를 받으면서 일 할 수 있다”며 “기본적으로 평등한 조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B씨의 직책은 ‘부장’이다. 차장이 있는 총연맹 정도를 제외하면 노동조합 내에서 ‘부장’은 첫 직책이지만, 자신과 같은 직책을 가지고 있는 ‘부장’을 돌아보면 10살 이상 차이 나는 이들이 많다. 일반적인 회사 내에서 10~15살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지위를 받을 수 있는 경우가 없는 것을 보면 이는 노동조합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 하나다.

또 하나의 장점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B씨는 “사회 문제에 최전선에 있다 보니 사회 전반적인 그림을 볼 수 있다”며 “그러다보니 기자들을 만나는 건 기본이고, 고위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등 사회초년생으로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B씨가 뽑은 노동조합이 가진 단점으로는 또래 근무자의 부족과 주말이 없다는 점이었다. “바로 위로 나이가 10년 이상 차이가 나다보니 대화할 사람이 없고 우리만의 감수성을 공유하지 못해 심심함을 느낀다”며 “주말이나 공휴일에 쉬지 못하는 것이 큰 단점이다. 집회가 끝나고 뒤풀이까지 하다보면 새벽에 집에 들어가야 하는 점이 힘들다”고 강조했다.

류 부장은 “화섬식품노조 사무처에는 인원이 많지 않아 개인의 역량이 중요시되기 때문에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간소화돼있다”며 “이전 회사의 경우에는 여러 단계가 있어서 사소한 것조차도 보고를 올려야 했고, 그 과정이 곧 연말 업무평가와 직결되기 때문에 허례허식도 많고 업무 속도가 늦었다”고 푸념했다. 이전 회사가 IT기업이었던 만큼 유연근로제를 실시하고 있었지만 코어타임으로 인해 사실상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11시에 출근하고 싶어도 10시부터 코어타임이니 불가능했고, 10시에 업무를 시작해도 30분 정도 일찍 출근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류 부장은 노동조합이 가진 단점으로 “때때로 서열을 따져야 하는 등 사회생활을 요구하는 순간이 발생할 때 피로감을 느낀다”며 “주위에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30대 중반이 많기 때문에 그들과 똑같은 경험을 공유한 적이 없으니 또래가 없다는 점이 힘들다”고 밝혔다.

A씨는 “연차 사용이 자유롭고 고용안정성이 보장되는 점이 노동조합이 회사로서 가진 장점 중 하나”라며 “특히, 노동자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여 주려 노력한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조 임원들이 전문 경영인이 아니다 보니 직원들의 처우나 복지에 대해 관심이 낮고 조직운영 체계가 제대로 잡히지 않아 힘들다”며 “노조라는 특수성으로 기본적인 근무환경을 지키지 않는 점이 아쉽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노동조합을 선택하게 될 그대에게

고된 업무 속에서도 노조활동가로 일 하면서 느끼는 남다른 뿌듯함의 순간들은 존재한다. 류호정 부장은 “다른 회사는 홍보 담당자가 많은데, 여기에서는 나만 할 수 있다”며 “홍보를 하고 싶어 하는 지회를 찾아 선전홍보물을 만들어주고 SNS 채널을 통해 소식이 나가는 것이 전에는 없었던 일인데 나로 인해서 생겨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B씨는 “언론홍보를 하면서 내가 기획했던 것들이 주요 언론 매체에 전면으로 실리거나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에 소개될 때 내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이를 통해 감동을 받아 울었다거나 감사 인사를 전하는 조합원들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이지만, 노동조합과 함께 호흡하면서 자신의 업무에 뿌듯함을 느끼는 이들이지만, 젊은 세대들이 더 많이 노동조합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류 부장은 “노동조합에서 낸 채용공고문을 보면 ‘노동’이나 ‘노동조합’에 관심 있는 사람을 모집한다고 하는데 젊은 사람들에게는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며 “추상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기보다는 기존 기업들의 포스터 분위기를 따라가 보는 사람들이 편하고 익숙하게 다가가는 게 필요할 것 같다”고 제안했다.

또한 “이전에 10년 이상 근무한 지역의 조직국장에게 ‘한 회사를 10년 이상 다닌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회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며 “활동가들도 본인들이 노동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회사로서 노동조합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A씨는 “노동조합이 힘없는 노동자들이 권력을 가진 자들에 대항하기 위한 집단이며 또 다른 권력 세력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며 “경영에 대한 최소한의 교육을 통해 내부 조직 운영에 대한 방법을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B씨는 “간부 회의를 진행하다보면 똑같은 의견을 가지고 찬성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가진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노조하면 투쟁만 한다는 이미지가 강한데 섬세한 직무 소개와 비전을 제시한다면 직장으로서도 충분한 가치와 매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젊은 세대가 노동시장에 계속해서 진입하고 있는 만큼, 노동조합 내부의 세대교체도 필요하다. 더 이상 ‘노동조합’이 강한 이미지에 고착화되지 않고, 젊은 세대들도 자신의 회사로 떳떳하게 ‘노동조합’을 쓸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