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솜의 다솜] 무시가 무시로 필요한 까닭
[정다솜의 다솜] 무시가 무시로 필요한 까닭
  • 정다솜 기자
  • 승인 2019.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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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사랑의 옛말. 자꾸 떠오르고 생각나는 사랑 같은 글을 쓰겠습니다.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마음이 흔들릴 땐 <장자>가 좋습니다. 삶은 계속 팍팍하고 주변은 늘 어지럽지만 그대로 두라, 세상의 잣대를 내려놓으라, 절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도인 같은 장자의 말을 읽어내다 보면 저절로 마음에 질서가 잡히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특히 좋아하는 부분은 장자 <내편> 마지막 장인 '혼돈' 이야기입니다. 혼돈은 코끼리의 몸에 얼굴이 없는 중앙의 임금입니다. 어느 날, 남해의 임금 '숙'과 북해의 임금 '홀'은 혼돈을 만납니다. 혼돈은 둘을 정성스레 대접합니다. 감동한 숙과 홀은 은혜를 보답할 방법을 궁리합니다. 둘은 눈, 코, 입 7개의 구멍이 없는 혼돈이 답답할 거라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하루에 하나씩 혼돈에게 7개의 구멍을 뚫어주기로 결정합니다. 7번째 날, 마지막 구멍이 뚫린 혼돈은 죽습니다. 숙과 홀이 좋고 옳다고 생각한 자신들의 질서를 혼돈에게 강제한 결과입니다.

우리도 일상에서 숙과 홀을 자주 마주합니다. 나와 다르면 이상하다고 판단하는 시선들이 그렇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느릿하게 버스에 오르는 장애인을, 남의 팔뚝 위 타투를, 여성의 숏컷을, 속옷을 입지 않은 가슴을, 남성의 화장을 빤히 쳐다보는 시선들이 대표적입니다. 그 시선들이 혼돈처럼 타인을 뚫어낸다고 상상하면 아찔해집니다.

타인을 뚫어내는 시선들을 목격한 순간 가끔 같은 눈빛을 보내봅니다. 똑같이 빤한 눈을 마주한 그들은 의문이 담긴 표정을 짓습니다. 타인을 뚫는 자신의 시선을 자각하기 전에 '난 이상한 사람이 아닌데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느냐'는 인식이 먼저인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저 또한 모르는 사이 일상의 혼돈들에게 구멍을 뚫고 있을 것임을 압니다.

우리는 각자 살아온 삶에 대해 서로 모르는 '이방인'입니다. 서로를 모르는 건 당연하고 무한한 스펙트럼을 가진 서로가 서로를 판단하고 구분 짓기는 틀릴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럼에도 이방인이 자꾸 혼돈으로 보일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혼돈을 적극적으로 무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학 용어인 '예의바른 무관심'(civic inattention)이 요구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상대의 존재를 부정하자는 게 아닙니다. 예의바른 무관심은 각자의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언어와 행동을 절제하고 조심하자는 적극적인 행동 양식입니다. 좀 이상한 것 같더라도 쳐다보고 관심 두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애써 무시하는 '의례적' 행위는 곧 적극적 배려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혼돈에도 나름의 세계가 있다는 걸요. 과학자들은 혼돈(chaos)에서 질서를 발견해 학문으로 발전시키기도 했고요. 외려 혼돈의 질서에 인위적인 힘을 가하는 순간 '나비효과'라는 역풍을 맞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타인이 '혼돈'이라고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는 일, '혼돈' 같더라도 적극적으로 무시해보는 일, 무관심의 미덕은 우리 사이의 관계를 유유히 흘러가게 하는 윤활제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