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혜의 온기] 명절 밥상 앞, '걱정은 셀프'입니다
[최은혜의 온기] 명절 밥상 앞, '걱정은 셀프'입니다
  • 최은혜 기자
  • 승인 201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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溫記 따뜻한 글. 언제나 따뜻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참여와혁신 최은혜기자 ehchoi@laborplus.co.kr
참여와혁신 최은혜기자 ehchoi@laborplus.co.kr

매년 2번, 날짜를 바꿔가면서도 성실하게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바로 명절이다. 이번 가을도 어김없이, 조금은 이르게 추석이 찾아온다. 추석을 앞둔 대형마트는 명절 선물을 판매하고 TV광고 역시 명절 선물을 줄지어 광고하며 명절의 설렘을 주입하고 있지만 기자의 개인적인 입장에서 매년 찾아오는 명절은 썩 달갑지만은 않다.

지난 2017년,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아르바이트포털 알바몬에서 직장인 및 취업준비생 2,892명을 대상으로 ‘추석 스트레스’를 주제로 설문조사를 했다. 직장인 74.6%와 취업준비생 80.2%가 추석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당시 설문조사에 의하면, 미혼 직장인이 가장 듣기 싫은 말로 꼽은 것은 바로 “결혼은 언제 하니?”라고 한다. 뒤이어 꼽은 것은 “연봉은 얼마나 받니?”였다. 취업준비생은 당연히 “취업은 언제 하니?”가 1위였고 이어 “살 좀 빼렴”을 꼽았다. 기자 역시 추석 때 들을 집안 어른들의 걱정 어린 말(이라 쓰고 잔소리라 읽는다)들을 들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명치가 답답한 기분이다.

이렇게 단정적인 예견을 하는 건 지난 5월에 본가를 방문했을 때 이미 한 번 겪은 일이기 때문이다. 갓 취업에 성공한 기자에게 집안 어른들은 “힘들게 대학 졸업시켜놨더니 남들이 알아주는 회사에 들어가야지”라든지, “연애는 안 하니? 취업했으니 이제 결혼 준비도 해야지” 등의 잔소리를 늘어놨다. 집안 어른들을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에 분위기를 깰 수 없었기에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삭여야만 했다.

집안 어른들은 으레 “내가 걱정이 돼서 그래”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기자는 속으로 ‘내 걱정은 내가 제일 많이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실 어른들이 어떤 마음으로 걱정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정말로 걱정해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봤는데 할 말이 없으니 그냥 하는 말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 스트레스를 주려는 의도인지 알 수 없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굳이 그들의 의도를 알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당사자가 열심히 걱정하고 있으니 굳이 말로 보태지 않으셔도 됩니다’라는 것.

지난 1월, 한 뉴스 프로그램에서는 ‘명절 잔소리 메뉴판’을 소개했다. 이 메뉴판에 따르면 미혼 직장인이 가장 듣기 싫은 말로 꼽았던 “결혼은 언제 하니?”의 가격은 30만 원, 그 다음으로 꼽았던 “연봉은 얼마나 받니?”는 20만 원으로 책정됐다. 메뉴판을 공유한 글에는 “물은 셀프이듯 걱정도 셀프로 할 테니 남의 걱정까지 주문 안 해주셔도 됩니다”는 말이 덧붙여 있다.

각자가 가진 속도가 있고 인생에서의 지향점은 모두가 다르다. ‘걱정’이라는 말로 타인의 속도와 지향점을 강요받고 싶지는 않다. 내 삶에는 나만의 속도가 있고 지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에는 “올해 걱정은 셀프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길, 나만의 속도와 지향점을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