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KEC지회가 회사의 구조고도화를 반대하는 이유
금속노조 KEC지회가 회사의 구조고도화를 반대하는 이유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9.09.09 18:50
  • 수정 2019.09.10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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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C 구조도고화 노사갈등 ➋ 이종희 금속노조 KEC지회 지회장 인터뷰

경북 구미 반도체업체 KEC 노사가 구조고도화 사업 추진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9일 KEC는 50주년 기념행사에서 구조고도화 사업계획을 발표했으나, 같은 날 금속노조 구미지부 KEC지회(이하 지회)는 구조고도화 사업을 반대하는 끝장투쟁을 선포했다.

KEC가 추진하려는 구조고도화 사업은 KEC 구미공장 유휴부지 5만여 평에 백화점, 의료 클로스터, 복합환승센터, 오피스텔 등을 건설하는 것으로, 이에 대한 노사의 주장은 첨예하게 갈린다. 회사는 구조고도화가 반도체 사업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지회는 회사가 구조고도화 사업을 빌미로 공장을 폐업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8월 30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카페에서 금속노조 구미지부 KEC지회 이종희 지회장을 만났다. 지회가 회사의 구조고도화를 반대하며 9일 끝장투쟁을 선포한다는 소식을 듣고 보다 자세한 지회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이날 인터뷰에서 이 지회장은 “구조고도화로 구미공장에 대형쇼핑몰 등 유통단지가 들어서면 제품생산은 중단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앞에서는 일자리 창출을 떠들면서 뒤에서는 구조고도화로 노동자들의 대량해고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종희 금속노조 구미지부 KEC지회 지회장.
이종희 금속노조 구미지부 KEC지회 지회장.

“구조고도화 = 폐업의 굿판”

- 지회는 KEC 창사 50주년을 맞는 9월 9일, 노조파괴 역사를 바로잡는 ‘노조파괴 장례식’을 개최하고 끝장 투쟁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이번 투쟁을 선포한 이유가 무엇인가?

KEC가 창사 50주년을 맞는 올해 또다시 구조고도화 사업을 예고하고 있다. 회사의 구조고도화는 멀쩡한 공장을 상업유통시설로 바꾸겠다는 것으로, 지회는 구조고도화 사업을 빙자해 공장 문을 닫으려는 회사와 이를 부추기는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맞서 끝장 투쟁을 벌일 계획이다.

- KEC는 이번 구조고도화를 통해 반도체 사업 영역을 확대하기 위한 투자 재원을 마련한다고 이야기하고, 한국산업단지공단은 구조고도화를 통해 제조업 경쟁력 제고와 국가경제 재도약을 이루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지회가 구조고도화를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KEC는 반도체업체다. 반도체는 먼지와 진동에 굉장히 예민한 제품이기 때문에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공장을 적합한 조건으로 유지시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지금도 멀쩡하게 가동 중인 반도체 공장 부지에 구조고도화를 이유로 대형쇼핑몰 등 유통단지가 들어서면 제품생산은 중단될 수밖에 없다. 즉, 공장은 페업할 수밖에 없다. 적자도 아닌 흑자를 내고 있는 회사가 구조고도화를 진행한다는 것에 노조는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애초 구조고도화 사업은 노후산업단지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되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묻는다. 구조고도화를 통해 제조업 경쟁력이 살아난 사업장 사례가 어디 있는가? 2010년부터 추진된 구조고도화 사업으로 대체 어떤 제조업체의 경쟁력이 높아졌는지 묻고 싶다. 제조업 경쟁력은 사라지고 유통자본의 투기장이 되었을 뿐이다. 더구나 KEC처럼 멀쩡히 가동 중인 공장에 백화점을 짓는 일은 없었다. 제조업을 생각한다면 이런 방식의 구조고도화는 진행돼서는 안 된다.

- 구조고도화와 관련해 지회에서 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

KEC가 제조업 경쟁력을 키우려면 정부로부터 따낸 전력반도체 소자개발 사업 관련 제품을 구미공장에서 생산해야 한다. 회사는 올해 4월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전력반도체 소자개발 최종사업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이 사업은 지금 구미공장에서 시제품만 진행됐을 뿐 본격적인 생산설비를 전혀 깔지 않고 있다. 외주화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구조고도화 사업까지 추진된다면 정부지원금으로 진행되는 국책사업은 외주 생산될 것이 뻔하다. 정부가 이런 기업에 국민의 혈세를 지원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일자리 창출이 정부의 최우선 정책기조라고 알고 있는데, 그런 정부가 앞에서는 일자리 창출을 떠들면서 뒤에서는 구조고도화로 노동자들의 대량해고를 부채질하고 있다. 당장 멈춰야 한다.

손배의 고통에서 벗어나다

- 지회는 손배가압류로 고통받은 대표적인 사업장 중 하나다. 지난 7월 손배가압류를 청산했다고 들었다.

지난 2016년 10월부터 3년간 30억의 돈을 변제했다. 올해 7월에 전부 청산하고 정리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 3년이라는 시간이 상당히 고통스러웠을 텐데.

지난 3년은 지회로서 고통스러운 순간들이었다. 회사가 30억이라는 돈이 없어서 손배가압류를 걸었겠나. 노조를 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손배가압류를 이용했고, 그럼에도 10년 동안 지켜온 노동조합을 버릴 수 없어서 버티자고 결의했다. 정말 피, 땀… 조합원들에게 진짜 고통이었다.

조합원들 중에 생계가 어려운 사람도 많았는데, 노조탄압 앞에 민주노조 깃발을 버리지 말자는 마음으로 조합원들이 함께 했다. 실제 퇴사를 하면 손배가압류에서 면책될 수 있었는데, 조합원들이 퇴사하지 않고 버텼다. 내가 퇴사하면 이 30억 원이라는 액수가 나머지 사람들에게 더 큰 고통으로 갈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그 짐을 남은 조합원들에게 지게 할 수 없어서. 우리가 자본 앞에 옳다는 거 보여주자고, 굴복하지 말자면서 3년을 감내해왔고 올해 7월에 청산하게 됐다.

- 손배가압류를 다 청산했을 때의 소감은 어땠나?

사실 지회에서 손배가압류 청산 자체행사도 하려고 했는데 이번 하반기 투쟁이 갑자기 잡히면서 열지 못했다. 청산된 날 조합원들에게 전체 문자를 보냈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 우리가 이겼다는 승리감도 있었지만, 반대로 우리가 이렇게 고통을 당했구나라는 느낌도 있었다. 끝없는 터널 같았던 손배가압류가 마침내 끝났다. 함께 견뎌주고 이겨내 준 우리 조합원들이 너무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또한 함께 해주신 전국의 많은 동지들이 너무 고마웠다.

- 지금도 손배가압류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회도 손배가압류를 어렵게 이겨나갔다. 이 어려운 길에 연대해주시는 분들이 큰 힘이 됐다. 우리가 기금모금도 한 번 했었는데 큰 돈이 모인 건 아니었지만 그 분들이 보내준 응원, KEC지회 대단하다는 그런 말들이 힘이 됐다. 저희가 이겨낸 것처럼 다른 손배가압류 사업장 노동자들도 당당하게 힘내서 싸우면 돌파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연대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우리도 느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