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순의 얼글] 피땀 흘린 뒤에 식사하면 밥맛이 어때요?
[박완순의 얼글] 피땀 흘린 뒤에 식사하면 밥맛이 어때요?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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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순의 얼글] 얼굴이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사람의 얼굴을 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땀 흘린 뒤에 식사하면 밥맛이 어때요?”라는 말에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쳐다보며 “땀을 많이 흘리면 밥맛이 없습니다”라고 답하는 영상 캡쳐 사진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오래 전부터 유행했다. EBS 극한직업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다. 용광로 용해작업을 하는 노동자가 방송에 나왔고, 경력 20년의 용해반장에게 PD가 그렇게 물었다가 들은 답이다.

그렇다. 땀을 흘린 뒤에는 밥맛이 없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달린 댓글 대부분도 비슷하다. 나도 그렇다 / 땀을 많이 흘리면 밥이 안 넘어간다 / 고등학교 때 축구 4시간 하면 밥 안 들어가지 않았음? / 땀도 적당히 흘려야 밥이 넘어가지 그것도 용광로 작업이면 / 꿀맛입니다라는 답을 원했던 건가? / 안 쓰러지려고 먹는 거지

‘땀 흘리며 일한 뒤 먹는 밥은 맛있다’라는 말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온 국민이 밥 한 끼 먹는 것도 감사해야 할 시기에나 가능했던 말이고, 그 때 만들어진 말 아닐까라고 추측해본다. 실제로 밥이 없었고 땀 흘려 일하면 밥을 먹을 수 있고 자신이 먹는 밥을 가족들도 먹을 수 있었으니까. 일종의 보람이다. 그리고 이 보람을 국가적으로 강조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밥 중요하다. 밥 한 끼 가격은 너무 올랐고, 밥값에 비해 저임금에 시달리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하고, 일자리 찾기가 어려워 일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땀 흘린 뒤 식사하면 밥맛이 어때요라고 묻는 시대는 아니다. 고된 노동에 몸을 갈아넣어야만 밥맛을 느낄 자격이 생기는 시대는 아니다. 편하고, 안전하고, 쾌적하게, 효율은 높이며 충분히 일 할 수 있는 기술이 가능한 시대다.

그러면 왜 그런 말이 아직 남았을까.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노동에 대한 존중이, 노동을 하는 인간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을 시도하지 않는다. 얼마 전 마트노동자들이 근골격계 질환에 취약한 마트노동자들을 위해 박스에 손잡이 구멍을 뚫어달라고 요구했다. 입는 로봇팔이 등장해 무거운 물건을 손 쉽게 들 수 있는 시기가 곧 온다는 21세기에 고작 종이박스에 구멍을 내달라는 요구다. 노동에 대한 존중이 애초부터 있었다면 대형마트가 등장한 시점부터 실현됐어야 할 거리들이다.

이런 말이 우리 사회에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서 유령처럼 떠돌아다닌다면 피땀 흘리며 일한 뒤 먹는 밥은 맛있는 세계가 찾아올 수 있다. 그런데 이미 그런 사회인가 싶어 무섭다. 일하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죽는다. 발전소와 스크린도어에서 협착 사고로, 건설 현장에서 추락 사고로, 우체국에서 과로로, 직장에서 괴롭힘으로. 사람이 죽었는데 이것도 일종의 보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