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박싱] 이 주의 인물 : 오재본
[언박싱] 이 주의 인물 : 오재본
  • 정다솜 기자
  • 승인 2019.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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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트 : #마트 #박스손잡이 #웃음 #활짝

요즘 언박싱(unboxing) 영상이 유행입니다. 언박싱은 구매한 상품의 상자를 여는 과정을 의미하는데요. 시청자들은 영상을 보면서 어떤 상품이 나올지 기대하고 상품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재미를 얻습니다.

한 주간 <참여와혁신> 기사에 등장한 여러 인물 중 기자는 누구를 가장 주목했을까요? 지금부터 이주의 인물 '1호' 언박싱 함께 보겠습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이주의 인물은 바로 마트노동자 '오재본' 씨입니다. 홈플러스 합정점에서 일하는 오재본 씨는 지난 10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박스에 손잡이를 뚫어달라고 요구했는데요. 마트노동자들은 평소 손잡이가 없는 무거운 박스를 수시로 옮기며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국마트노동조합에 따르면 박스에 손잡이만 설치돼 있어도 자세에 따라 약 10~40%까지 들기지수 경감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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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본 씨에게 주목한 이유는 사진에서 볼 수 있듯 '환한 미소' 때문입니다. 손잡이가 달린 박스를 든 오재본 씨의 밝은 표정은 박스 양옆에 구멍을 뚫어달라는 소박한 요구가 마트노동자들의 표정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줬습니다. 

'이주의 인물 1호'로 선정된 오재본 씨에게 궁금한 점을 더 들어봤습니다.

 

<참여와혁신>에서 처음 시도하는 코너 '이 주의 언박싱 인물 1호'로 선정되셨습니다. 소감은 어떠신가요?
이...주의 인물이요? 하하. 그게 어떤 건지 제가 정확하게 몰라서요.

앞으로 잘 아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실 결정적인 선정 이유는 기자회견 당시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요. 평소에도 잘 웃으시는 편인가요? 
아무래도 마트를 다니다 보니까 일단 '고객에게 밝은 표정을 지어라' 이런 말을 많이 들어요. 그래서 은연중에 나오는 표정인 것 같기도 하고요. 아니면 손잡이 달린 박스를 들고 기뻐서가 아니었을까요? 하하.

우선 마트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홈플러스 합정점에서 7년째 일하고 있어요. 지금은 가공식품 담당이에요. 신선라인에 있어서 계란, 김치, 햄, 반찬류 등을 맡고 있는데 마트 후방창고로 물류가 파렛째 들어오면 창고에 제품을 정리하고 매장에 진열해요. 유통기한도 체크하고 기한 지난 제품을 폐기하는 일도 하고요.

노동조합에는 언제 가입하셨고 가입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홈플러스 합정점에서 2013년부터 일했는데 당시 '마감미팅'이 있었어요. 오후 3시 30분부터 자정까지가 근무시간인데 미팅을 밤 11시 50분에 시작하는 거예요. 그걸 하면 자정이 지나요. 밤 12시 10분, 20분까지도 하거든요. 이후로 남은 정리까지 하면 새벽 1시 가까이 되어서 퇴근하는 날도 있었어요. 그때 이해가 안 됐던 게 제 근무시간을 체크하는 시스템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내 연장수당은 어떻게 챙겨야 하지?' 일하면서 처음 든 고민이었죠. 그러다 당시 홈플러스 노조에서 '쩜오(0.5) 시간제' 폐지 투쟁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합정점 노동자들도 술렁였어요. 우리도 홈플러스 합정지부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고요. 그때 제가 3개월 차였는데요. 유기계약직이라 노동조합 가입하면 잘릴까 봐 고민을 많이 하고 불안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저나 언니들이나 결국은 그렇게 불안하지 않기 위해서 노동조합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홈플러스 합정지부를 만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마트노동자들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통해 '박스 손잡이 설치'를 요구했습니다. 오재본 씨에게 '박스 손잡이'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솔직히 박스가 무거우면 무거운가 보다. 그냥 당연히 내가 할 일이고 박스는 원래 무거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올해 처음으로 마트노조에서 박스 손잡이를 얘기하시길래 저도 유심히 봤어요. 손잡이가 있는 박스와 없는 박스의 차이점이 너무 궁금한 거예요. 그래서 실제로 들어보니까 차이가 어마어마한 거죠. 진짜 체감 무게가 다르거든요. 그때 마음이 좀 복잡하더라고요. 처음 든 생각은 '억울하다'였어요. 왜 몰랐을까. 왜 몰랐을까. 이렇게 들기도 편한데. 신세계를 만난 기쁨도 컸고요. 그때 마트노조에게 고맙다는 마음도 들었어요.   

기자회견에 이어서 추석에는 '인증샷 릴레이'를 진행하는 등 마트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요? 
저희 점포 얘기를 드리자면 언니들이 대부분 어깨, 허리, 손목 이런 부위 관련해서는 직업병처럼 질환을 하나씩 앓고 있어요. 언니들한테 10일날 마트노조가 기자회견 했는데 박스에 손잡이가 있으면 무게도 가볍고 들기도 쉽다고 얘기했더니 정말 좋아했어요. 제가 제일 많이 받았던 질문이 뭐냐 하면 '박스에 손잡이 만드는 게 어려운 일이야?' '돈 많이 드는 일이야?' 이거였어요. 아니라고 했더니 언니들이 그렇게 쉬운 일이면 당연히 해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기뻐하더라고요. 당장 오늘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노조가 관심을 가져주고 있다는 기쁨과 손잡이가 있으면 달라질 게 상상되는 기쁨이 동시에 있는 거죠.

'박스 손잡이' 외에 마트 노동 현장에서 필요한 변화는 무엇인가요?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마트 인력감축 문제가 있어요. 회사나 점포에서 정년이나 퇴사로 인원이 빠져도 채워주지 않는 거죠. 그러면서 우리에게 '매출 대비 인원수'을 늘 이야기하는데요. 저는 개인적인 생각이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노동강도에 따른 적정 인원수' 등 우리만의 근거가 필요하다는 고민도 해요. 그 외에도 감정노동 문제, 갑질 관리자 문제 등 여러 가지가 있죠. 그런데 그런 마음은 있어요. 홈플러스 노조는 투쟁을 하면 한 번도 져본 역사가 없어요. '쩜오 시간제' 폐지도 우리가 해냈고 상여금도 다 지켜냈어요. 정규직도 이뤄냈고요. 그래서 저뿐만 아니라 제 동료들은 노조에 대한 신뢰나 믿음, 희망 이런 게 많이 있어요.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이 많지만 마트노조와 함께 하면 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