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순의 얼글] 언박싱을 시작하며
[박완순의 얼글] 언박싱을 시작하며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09.25 20:12
  • 수정 2019.09.2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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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순의 얼글] 얼굴이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사람의 얼굴을 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한 주 전 '언박싱 시리즈'를 시작했다. 시리즈는 키워드 편과 인물 편으로 이뤄졌다. 한 주 동안 <참여와혁신> 기자들이 작성한 기사들이 어떤 키워드로 묶일 수 있을까라는 고민과 한 주 동안 <참여와혁신> 기자들이 취재하면서 만난 사람들 중 기억에 남는 인물을 깊게 보고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동료 기자와 함께 시작했다.

왜 언박싱(Unboxing)이냐는 기사 꼭지 이름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처음에 그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설명이 좀 부실하긴 했다. 언박싱에 대한 대중적 정의만 써놨다. 고백하건대 동료 기자와 기사 꼭지명을 정할 때 언박싱이라는 단어의 이미지가 식상하지 않고 재밌을 것 같았다. 그래서 대중적인 정의만 써놓아도 다들 그러려니 할 줄 알았다. 오판이었다.

언박싱은 요즘 유행하는 영상 콘텐츠 중 하나다. 구매한 상품의 상자를 여는 과정을 보여주며 시청자의 기대감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여기서 상품이라는 단어 때문에 왜 언박싱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키워드와 인물을 상품화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맞는 지적이다. 꼭지 이름을 처음 정할 때는 이 인물이 누구지라는 호기심과 이 키워드가 왜 여러 기사들을 관통하지라는 궁금증을 독자들과 함께 풀어간다는 것만 보였다.

우리가 현장에서 만난 이야기들은 구매한 상품이 아니다. 우리가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구매한 상품이 아니다. 오히려 상품이 되길 거부하는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품은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기사는 자신의 노동에 상품이 아닌 인간의 이름표를 붙이려는 행동과 그것을 하려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방해하는 사람들 혹은 구조들과 겪는 갈등들, 그리고 노동에 인간의 이름표를 붙이려 한 단계씩 합의해 나가는 과정들에 관한 서사를 담으려고 한다. 거창하게 써놨지만 그 서사가 크든 작든 우리에게는 모두 소중하다.

그래서 더 언박싱이라는 이름을 붙여야겠다. 시청자들은 언박싱 영상을 보면서 어떤 상품이 나올지 기대하고 상품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재미를 얻는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언박싱 기사를 읽었더니 그 안은 상품이 아니었다는 자극을 느꼈으면 한다. 물론 자극을 잘 전달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겠다.

언박싱 1호 인물은 마트노동자 오재본 씨였고, 1호 키워드는 여성노동자였다. 여성노동자이자 마트노동자인 오재본 씨의 말이 우리가 부여한 언박싱의 의미와 가깝게 닿아있다.

“올해 처음으로 마트노조에서 박스 손잡이를 얘기하시길래 저도 유심히 봤어요. 손잡이가 있는 박스와 없는 박스의 차이점이 너무 궁금한 거예요. 그래서 실제로 들어보니까 차이가 어마어마한 거죠. 진짜 체감 무게가 다르거든요. 그때 마음이 좀 복잡하더라고요. 처음 든 생각은 '억울하다'였어요. 왜 몰랐을까. 왜 몰랐을까. 이렇게 들기도 편한데.”

이렇게 오늘도 누군가는 자신의 노동에 인간의 이름표를 붙였을 것이고 우리는 그 누군가와 누군가의 이야기를 만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