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사회적 대화 “험난해도 가야 한다”
지역의 사회적 대화 “험난해도 가야 한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9.10.02 00:05
  • 수정 2019.10.07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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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가 노사정 대화를 시작한 이유
탄탄한 지역 거버넌스는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가?

커버스토리 ② 지역노사민정협의회의 필요성

지역노사민정협의회의 행방


지역에도 사회적 대화가 있다. 지역의 사회적 대화는 지역 노사민정이 한자리에 모여 지역의 경제 및 노동 현안을 논의하는 기구인 ‘지역노사민정협의회’에서 이루어진다.

대화는 갈등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꺼내는 해결 수단이지만 그 과정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그간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지역은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다. 대화를 통해 지역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지역민이 웃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밑에서 위로 끌어올리는 대화, 지역의 사회적 대화는 낯설지만 우리 가까이에 있다.

지역단위 사회적 대화도 중앙단위 사회적 대화만큼이나 녹록지 않다. 1999년 지역단위 사회적 대화기구를 설치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마련되고 정부의 예산 지원이 뒤따르면서 지역노사민정협의회 설치 지역이 매년 늘어나고 있지만, 실제로 지역노사민정협의회 운영이 활성화된 지역은 전국에서 손에 꼽을 정도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아무리 지역노사민정협의회와 지역단위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해도 ‘그걸 우리가 왜 해야 하는데?’라는 질문이 되돌아온다.

지난 3월 26일 부천시청에서 열린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 본회의. ⓒ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
지난 3월 26일 부천시청에서 열린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 본회의. ⓒ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

지역노사민정협의회, “아직 갈 길 멀다”
잘되는 곳은 잘되고, 안 되는 곳은 안 되고…

지역노사정협의회(이하 협의회) 설치 근거가 마련되고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협의회는 어떤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왔을까? 안타깝게도 전문가 및 관계자들에게 긍정적인 답변만 듣기는 어려웠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노사정위원회 설치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역노사정협의회(이후 민(民)을 추가해 지역노사민정협의회로 개편) 설치 근거가 만들어진 해는 1999년이다. 이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예산 지원 근거를 정비했고, 고용노동부로 지원 사업이 이관되는 과정을 거쳤다.<표1>

자료 : 국회입법조사처 '지역노사민정협의회의 운영실태와 개선방안'
자료 : 국회입법조사처 '지역노사민정협의회의 운영실태와 개선방안'

지방 분권과 지역 균형발전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기대도 협의회 확산에 힘을 실었다. 이 결과, 협의회 설치 지역은 매년 꾸준히 증가했고, 올해 7월말 기준으로 지방자치단체 243개소 중 155개소(63.7%, 광역 17개, 기초 138개)가 지역노사민정협의회를 설치했다.<표2>

현재 협의회는 해당 지역의 노·사·민·정 주체들이 모여 지역에서 발생한 경제·사회·노동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역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과정에 놓여있지만, 문제는 지역마다 거버넌스 구축 편차가 크다는 데 있다. 지역 거버넌스가 탄탄히 구축된 지역은 주체들이 지역의 현안을 함께 고민하고 그에 맞는 사업을 진행해 성과를 내고 있으며, 성과는 협의회의 필요성을 체감하는 선순환을 가져오고 있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지역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형식적인 운영을 반복하다가 협의회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지역 간 격차가 더욱 커지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부천, 지역 사회적 대화가 태동하다

경기도 부천은 지역 사회적 대화가 태동한 지역으로 불린다. 협의회가 전국으로 확산될 때 다른 지역에서 벤치마킹할 정도로 지역 단위 사회적 대화의 모범사례가 된 지역이기도 하다.

부천은 1997년 IMF 이후 지역에 닥친 경제 및 고용 위기에 노사가 공감하면서 사회적 대화를 시작했다. 기업의 지방이전, 휴·폐업, 상시적 인력 구조조정 등 중·대형 사업장에서부터 시작된 상시적인 구조조정은 일반 중소영세사업장까지 확대됐으며, 부천은 약 7,000개~1만여 개 일자리가 사라지는 위기를 겪게 됐다. 기업들의 연이은 부도와 도산으로 노동조합 수뿐만 아니라 조합원 수까지 감소하자 한국노총 부천지역지부(이하 부천노총)는 지역 각 주체들에게 고용불안 확산 방지를 위한 지역노사정협의체 구성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마침 제2대 전국 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던 시기였기에 부천노총은 지역사회에 지역노사정협의회 구성을 쟁점화시킬 수 있었다. 부천시노사정위원회(현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 구성에 동의한 원혜영 부천시장 후보에 대한 당선운동을 결의했으며, 선거 결과 원혜영 후보가 부천시장으로 당선됐다.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전 한국노총 경기지역본부 부위원장)은 “지역사회 차원에서 노동 복지를 확충하고 노사 간 극단적인 충돌을 일정 정도 줄여보자는 게 제안 이유였다”며 “원혜영 시장도 지역 사회적 대화에 상당한 관심이 있었고 상공회의소에서도 노동조합과 똑같이 이러다가 부천에 있는 기업들 다 사라지는 거 아니냐는 위기의식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1998년 8월 27일 부천노총은 ‘부천시노사정위원회 구성 및 운영(안)’을 노사정 주체들에게 제안했고, 같은 해 9월 16일 원혜영 시장이 주재한 노사정간담회에서 부천지역 노사정협의체 추진 실무협의회 구성(한국노총 부천지역지부, 민주노총 부천시흥지구협의회<이후 민주노총 부천시흥지구협의회는 민주노총이 중앙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한 상황에서 지역조직이 더 이상 지역노사정협의체에 참여하는 건 조직의 결정을 거스르는 것이라며 불참을 선언>, 부천상공회의소, 부천지방노동사무소, 부천시 등 참가 5주체)에 합의했다.

이후 지역사회 내 제도화된 사회적 협의기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조례로서 그 존립 근거를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에 따라 1999년 ‘부천지역 노사정위원회 구성 및 운영조례’가 만들어졌으며, 1999년 5월 31일 ‘부천지역 노사정위원회<이후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로 명칭 변경> 발족 및 제1차 본위원회’를 개최했다.

부천지역노사정민협의회 구성 및 운영 조례

제 2 조 기능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이하 “협의회”라 한다)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을 협의ㆍ의결한다.[개정 2015.08.03.]

1. 지역경제 정책 및 노동시장 정책에 관한 사항

2. 고용안정 및 인적자원개발에 관한 사항

3. 각 경제주체가 담당해야 할 역할과 사명 등 사회적 협약에 관한 사항

4. 협의회 및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한 사항의 이행방안

5. 그 밖에 경제위기 극복 및 고용관련 주요시책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협의회가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항 [개정 2019.3.27.]

[전문개정 2009.08.03]

부천이 지역 사회적 대화를 태동하면서 남긴 의미는 지역 주체인 노동조합이 위기에 맞서 자발적으로 대화기구를 제안했다는 것과 위기 돌파를 위해 지역 주체들이 직접 참여하는 협의·의결기구를 만들었다는 데 있다. 의제는 단순히 노사관계, 노사 갈등에 그치지 않고 ‘지역경제 정책 및 노동시장 정책’, ‘고용안정 및 인적자원개발에 관한 사항’ 등 지역의 고용과 경제에 미치는 의제라면 ‘무엇이든’ 가져왔다. 2004년에는 일자리 만들기 노사정 협약을 체결하고 노사협력 의제로 고용 및 인적자원개발을 설정하였으며, 2005년 본회의에서 지역 노사정협력에 기초한 고용 및 인적자원개발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데 합의했다. 이를 위한 실행 사업은 일자리창출과 취업지원, 재직자향상훈련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 진행됐으며, 2009년에는 실행 사업의 성과로 고용 및 인적자원개발에 관한 노사정 협약을 체결했다.

부천이 전국 최초로 실시한 생활임금 도입도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의 성과다. 부천은 2012년 4월부터 ‘부천시 생활임금 조례 제정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했으며, 2013년 12월 12일 국내 최초로 생활임금 조례가 제정됐다. 당시 생활임금 사업 추진을 의결하고 논의를 이어간 테이블이 바로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다.

지역 주체들이 고민해야 할 때

협의회 전문가 및 관계자들은 지역 사회적 대화가 활성화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지역의 위기는 지역 주체들이 고민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답한다. 어쩌면 식상하고 당연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이 ‘식상하고 당연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오늘날 부천이 모범사례로 꼽히는 이유는 이 지난한 과정을 20년 동안 지속해왔기 때문이다. 김준영 전 부천노총 의장(현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은 “부천이 잘 된 이유는 끊임없이 ‘우리가 왜 지역 노사정 대화를 하고 있지?’라는 고민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지역마다 협의회에 대한 공감대가 같을 수는 없겠지만 큰 틀에서 지향점과 방향성을 함께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고현주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 사무국장은 “위기의식을 느낀 노사가 우리 뭔가 해보자라고 출발을 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라며 당면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지역 주체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한다.

협의회에서 위기 돌파가 가능한 이유는 의제를 지역의 경제와 노동으로까지 확대했기 때문이다. 이세종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전문위원은 “지금처럼 고용위기, 산업위기 등 지역 문제가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지역 주체들이 고민할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또한, 지역의 주체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지역에서 정책이 실행됐을 때 저항이 덜하다는 장점도 있다. 김경협 의원은 “중앙단위에서 일자리, 고용 문제를 비롯해 지역의 사정을 현장감 있게 파악하고 바로바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협의회가 제대로 운영된다면 지방자치를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고용·일자리 문제 해결에 힘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