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사회적 대화하기 “어렵다 어려워”
지역에서 사회적 대화하기 “어렵다 어려워”
  • 이동희 기자, 정다솜 기자
  • 승인 2019.10.02 00:06
  • 수정 2021.07.0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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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확대 목소리 속 “예산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 아니야”
조급함은 금물… 역량 강화엔 ‘절대적 시간’ 필요해

커버스토리 ③ 지역노사민정협의회 어려움

 

지역노사민정협의회의 행방


지역에도 사회적 대화가 있다. 지역의 사회적 대화는 지역 노사민정이 한자리에 모여 지역의 경제 및 노동 현안을 논의하는 기구인 ‘지역노사민정협의회’에서 이루어진다.

대화는 갈등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꺼내는 해결 수단이지만 그 과정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그간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지역은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다. 대화를 통해 지역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지역민이 웃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밑에서 위로 끌어올리는 대화, 지역의 사회적 대화는 낯설지만 우리 가까이에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지역마다 지역노사민정협의회 발전 수준에 차이를 보이면서 지역 간 사회적 대화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이 시점에서 지역 당사자들이 지역노사민정협의회를 운영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짚어보았다.

지난 2017년 있었던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 본회의 ⓒ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
지난 2017년 있었던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 본회의 ⓒ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

줄어드는 예산에 지역은 ‘한숨’

지역노사민정협의회(이하 협의회) 당사자들이 첫 번째로 꼽는 어려움은 예산이다. 지자체에서 받을 수 있는 예산이 충분하지 않으면 운영과 활성화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지역에서 협의회를 활성화하겠다는 지자체장의 의지가 확실한 경우 협의회 사업을 위한 지자체 예산을 적극 투입하기도 하지만, 지자체장이 의지가 없다면 해당 협의회는 중앙의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중앙의 예산도 한정돼 있어 모든 지역 사업에 예산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는 80개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지역노사민정 협력활성화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나, 매년 관련 예산이 동결 내지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지원사업에 쓴 예산은 16억 3,000만 원으로, 2008년 32억 원까지 늘었던 예산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 상태다. 여기에 매년 협의회 설치 지역이 늘어나고 있어 각 지역에 돌아가는 예산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조오현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과 과장은 “매년 지역에서 지원을 받기 위한 사업들이 중앙으로 올라오는데 100% 다 지원을 할 수는 없다”며 “지원 대상에 채택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예산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예산이 줄어들면서 지자체에서 협의회를 바라보는 눈이 곱지 않다. 정우시 노사발전재단 노사협력팀 선임전문위원은 “협의회 인건비가 3,000~4,000만 원이 드는 상황에서 중앙에서 가져오는 사업비가 1,000만 원이면 ‘인건비 이렇게 주고 운영할 필요가 있냐’는 시의회의 질타를 받게 된다”며 “지자체가 협의회 필요성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잘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예산을 확대해 협의회를 활성화시킨다는 게 기본적인 방침이지만 국회와 기획재정부에서 지원사업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예산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오현 과장은 “중앙의 지원 예산을 점차 줄여나가면서 지자체가 스스로 협의회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며 “고용노동부에서는 지자체 재정 자립도가 한계가 있고, 활성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산 확대를 요구하고 있지만 지원사업 필요성에 대한 인식 차이로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역에 충분한 예산이 확보되기만 하면 협의회 운영이 활성화될 수 있을까? 대다수 전문가 및 관계자들은 협의회 운영 활성화에 있어 예산은 일이 잘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가장 중요한 건 지역 주체들의 ‘문제의식’이라는 지적이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협의회에서는 지역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사업을 만들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게 중요한데, 예산만 많이 준다고 아이디어나 관계 같은 자원이 공급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세종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전문위원 역시 “정부의 지원 역할은 마중물에서 그쳐야 한다”며 “실제로 펌프질을 하고 지하수를 뽑아내는 건 지역에서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사민정’ 주체의 관심과 역량 부족

지역 노사민정 주체는 정작 지역단위 사회적 대화에 관심이 별로 없다. 실제 지역 주민 10명 중 1명만 협의회의 존재를 알고 있다. ‘지역노사민정협력 체감도 조사’(고용노동부, 2017)에 따르면 협의회의 인지도는 10.3%에 불과하다. 노동계 인지도는 이보다 낮은 7.2%, 사업체는 13.3%다. 박명준 연구위원은 “협의회는 지금 주변화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라며 “그 원인 중 하나는 노사민정 참여 주체들이 사회적 대화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사민정은 관심뿐 아니라 사회적 대화에 필요한 역량도 부족하다. 채준호 전북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지역단위 사회적 대화가 안 되는 핵심적인 문제는 지역이 준비가 안 돼 있다는 것”이라며 “네 주체의 역량이 모두 부족한 상황에서 대화는 삐걱댈 수밖에 없으며 이는 아주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노사민정의 역량 부족은 지역현안 맞춤형 의제발굴로 이어지지 못해 지역 노사민정 대화가 형식적 수준에서 그치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① 노 = 대표성 부족

지역 노동조합은 지역단위 사회적 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하지만 대표성을 가질만한 능력이 부족하다. 20%대 조직률을 보이는 서울, 울산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지역에서 노동조합 조직률은 10% 미만이다. 게다가 대부분이 사업체 수준으로 조직화되어 있어 대표성이 취약하다. 민주노총도 대부분 불참하고 있다.

채준호 교수는 “협의회에 들어오는 한국노총은 지역에서 정책역량이 부족한 편이다. 그나마 민주노총이 좀 낫긴 한데 민주노총은 협의회에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며 “한국노총이든 민주노총이든 ‘노’는 사실상 지역 노사민정 대화에 대해서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현주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 사무국장은 “노동조합이 정책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학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만 자체적으로 하기 어렵다”며 “지역 노동조합은 돈이 없다. 한국노총 부천지역지부만 해도 조직률이 2~3%인데 거기서 무슨 돈이 나오겠느냐”고 노동조합의 정책역량 부재 원인을 짚었다.

② 사 = 소극적 참여

노사분쟁과 일자리 창출 등 지역의 노동·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역단위 사회적 대화에는 사측이 참여해야 협의 실효성이 높아진다. 때문에 사측은 적극적 참여가 요구되는 주체지만 협의회 참여에 소극적이다. 사측 입장에선 지역 단위 사회적 대화 테이블에 앉을 메리트가 적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협의회에서는 ‘돈’이 돌아가지 않는다. 김주일 한국과학기술대학교 교수(충남 노동정책협의회 위원장)는 “사측은 돈이 돌아가는 데를 들어온다”며 “충남의 경우 협의회 예산이 다 합쳐도 1년 예산이 4억 원 정도다. 대부분 인건비로 나가고 사측이 들어와서 가져갈 예산이 없다”고 말했다.

사용자 단체의 조직 기반도 약하다. ‘지역노사민정 협력활성화 추진실적 평가 및 협의회 개선방안 연구’(고용노동부, 2015)에 따르면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의 지역별 조직률은 회원사를 기준으로 대구(36.6%), 울산(35.7%), 인천(18.3%) 등을 제외하면 15% 미만이다. 노동조합과 마찬가지로 지역 경총이나 대한상공회의소는 노동이나 고용 관련 정책역량을 갖춘 전임기구나 인력이 부족한 실정인 것이다.

③ 민 = 찾기 어려움

‘민’은 대표성과 전문성을 갖춘 주체로 각각 나뉜다. 「노사관계 발전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보면 ‘민’은 ‘주민을 대표하거나 노사관계·고용·경제·사회문제에 관하여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가리킨다. 정작 지역에선 대학교수, 노무사, 변호사 등 전문가에 비해 시민단체, 주민대표 등은 찾기 어렵다. 그래서 보통 ‘민’은 대표성보다 전문성을 갖춘 인물 위주로 구성된다. 채준호 교수는 “지역 노동이나 일자리에 관심 있는 시민단체가 거의 없다”며 “환경, 여성 등 여러 주제가 있지만 노동·일자리 문제에 대해서 발언하거나 토론할 만한 시민단체가 있는 지역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말했다.

④ 정 = 관심 없음

지방자치단체는 재정 자립도가 낮아 중앙 정부의 도움 없이 지역고용 관련 정책 및 사업을 수립하고 개발하기 어렵다. 일부를 제외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자립도는 60% 이하다. 그러다 보니 협의회의 위원장인 지자체장의 의지가 협의회의 활성화 여부를 결정짓는 경우가 잦다. 노동계가 주체가 되어 아래서부터 성장해온 부천 같은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고는 협의회가 성장하기 어렵다.

염태영 시장의 의지가 협의회 활성화의 주된 동력이었다고 평가받는 수원지역노사민정협의회의 김명욱 사무국장은 “수원시장이 바뀔 경우 예산과 지원 규모가 바뀌어서 사업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수원시는 상당 부분 노사민정 체계가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축소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 내에서 협의회를 담당하는 공무원의 ‘순환보직’도 문제다. 노동과 일자리 정책의 행정적 측면에서 전문성, 일관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서다. 특히나 사회적 대화는 ‘정’과 ‘노사민’의 네트워크 구축이 필수인데 이를 위해서는 담당 공무원이 오랜 시간 담당을 맡아야 한다.

김주일 교수는 “다른 지방자치단체를 보면 협의회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매번 바뀐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기존 사업을 엎어버리는 경우가 잦다”며 “제일 심한 경우 1년에 6명의 공무원이 바뀐 사례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잦은 순환보직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노사민정협의회에 관심이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부족한 역량에 단기적 평가는 악순환으로

지역의 특성을 살린 사업을 이끌어나갈 역량이 부족한 가운데 고용노동부의 지원사업 평가에 신경을 쏟다 보니 지방자치단체의 자체 역량 강화는 속도를 내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있다. ‘우리 지역은 어떤 사업을 하지?’라는 고민보다 ‘지원금이나 상을 받으려면 어떤 사업을 하는 게 유리하지?’라는 고민을 먼저하게 된다.

고용노동부는 ‘노사민정협력활성화 지원사업’을 통해 일 년 단위로 지역노사민정협의회를 평가해 예산을 지원한다. 법적 근거는 「노사관계발전법」 제3조 및 「동법 시행령」 제3조다. 보조금의 한도액은 광역 최대 8,000만 원, 기초 최대 4,000만 원이며 보조율은 광역 평균 50%, 기초 평균 80%다. 협의회 운영에서 보조금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지방자치단체는 지원사업 평가기준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일례로 2018년에는 고용노동부의 중점 사업 중 하나였던 ‘지역 노사민정 성과 콘텐츠 제작 지원’을 받기 위해 빠듯한 사업비에도 불구하고 콘텐츠를 보여주기 식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고현주 사무국장은 “중점 지원사업 중 콘텐츠 제작 홍보 사업 등은 돈만 들어가는 사업”이라며 “그래도 고용노동부가 하라고 하면 지역은 해야 한다. 행정적 입장에서는 돈을 따와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가 됐든 대응 투자가 있어야 시의회에서 예산을 받기 편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종의 가이드라인인 고용노동부의 ‘중점 지원사업’을 외면하기 어려운 이유다.

조오현 과장은 “지금까지는 지역 간 격차가 크다 보니 일 년 단위로 평가하며 지역노사민정협의회 활성화와 전체적 규모 확대 차원에서 사업을 진행한 측면이 있다”며 “그러다 보니 중장기적 방향성을 담는 고민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그런 고민들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역량 강화 위해선 경험 축적과 절대적 시간 필요

현장에선 역량 강화를 위해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화는 과정이기에 낮은 수준의 지역 노사민정 스킨십부터 높은 수준의 숙의에 이르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과 축적된 시간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고현주 사무국장은 “부천시는 사실 기어가는 것부터 걸음마까지 하나씩 하면서 성장해왔다. 그런데 지금 중앙에서 요구하는 내용에는 그 과정이 빠져있다”며 “지금 막 협의회가 태어난 지역은 기어가는 단계부터 시작해야 하고 주체들이 만나 얼굴 먼저 봐야 의제발굴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김주일 교수도 “충남에서는 노사민정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서 365일 2주에 한 번씩 만남을 가졌다”며 “지역단위 사회적 대화는 눈에 잘 안 보인다. 그래서 선수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협의회 초반엔 실무협의회를 구성하는 선수 간 팀워크 구축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노사민정 주체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언급한 전문가도 있었다. 채준호 교수는 “요즘 기회가 될 때마다 지역 주체들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교육프로그램 등을 운영하자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며 “예를 들어 광역자치단체 거점 대학에 예산을 줘서 지역일자리 전문가 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협의회마다 축적한 역사가 1년부터 20년까지 다양하고, 지금까지 협의회가 양적 성장을 중심으로 확산된 가운데 이제는 지역 특성에 맞는 ‘질적’ 성장을 도모해야 할 때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