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핵심협약 비준이 공무원노조에 미치는 영향
ILO 핵심협약 비준이 공무원노조에 미치는 영향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9.10.03 04:59
  • 수정 2019.10.03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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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3권 중 단결권만 일부 확대
현행법보다 진일보… 노조 할 권리 체감 못 해

[리포트] ILO 핵심협약과 공무원노조

올해 노동계를 뜨겁게 달군 이슈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이다. 정부는 지난 7월 31일 ‘결사의 자유(핵심협약 87호·98호)’를 보다 확대하기 위해 노조법과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 등 관련 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입법예고는 9월 9일로 마무리됐다. 이제 정부 입법안은 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 국회로 넘어갈 예정이다. 노사 모두가 국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가운데, 공무원 노동계의 반응은 다소 미적지근하다. 공무원 노동자의 사용자는 정부다. 정부 입법안이 공무원노조에 미치는 영향을 들여다봤다.

김수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2030특별위원장이 ILO 핵심협약에 대해 조합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김수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2030특별위원장이 ILO 핵심협약에 대해 조합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공무원 노조 조직률이 높아도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공무원 노조 조직률은 68.5%다(2017년 말 기준). 민간 부문 노조 조직률의 7배를 조금 웃돈다. 일부 국민들은 법적으로 신분이 보장되고, 노후연금이 강력한 공무원이 무슨 ‘노조’냐고 반문한다. 여기서 노조는 대개 노동3권이 보장된 민간 노조를 말한다.

하지만 공무원 노동자는 민간 노동자와 다르게 노동3권을 제한한 공무원노조법의 적용을 받는다. 지난 2005년 제정된 공무원노조법은 직급과 직무에 따라 공무원의 노조 가입을 제한하고 있다(단결권). 파업권(단체행동권)도 없다. 예산이나 정책, 임용, 조직 등은 줄줄이 비교섭사항이다(단체교섭권). ‘3권’이 안 된다. 공무원노조 조직률이 높아도 소위,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유다.

노조의 역사도 노동3권을 제한한 공무원노조법을 두고 안팎으로 갈라지고, 합쳐지면서 이어져왔다. 공무원노조는 지난해 3월, 9년 만에 법안으로 들어온 전국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김주업, 이하 전국공무원노조)과 상대적으로 온건한 노조로 분류되는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위원장 이연월, 이하 공노총)으로 양분해있다. 전국공무원노조가 온전한 노동3권을 요구하면서 장외 투쟁을 벌이는 동안 공노총은 정부와의 교섭을 주도해왔다.

전국공무원노조가 공무원노조법 개정을 반대하면서 벌인 2004년 11월 15일 대규모 총파업은 공무원 노사관계의 분기점이 된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공무원 2,600여 명을 징계했다. 공무원 500여 명은 완전히 잘렸다. 이 가운데 136명은 여전히 해직 상태다. 공무원의 노동3권을 ‘원칙적으로 제한’ 한다는 정부의 원칙은 확고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3월 26일 헌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하면서 달라진 사용자의 태도를 보여줬다. 헌법 개정안은 “공무원의 노동3권을 원칙적으로 인정하면서 현역 군인 등 법률로 정한 예외적인 경우에만 노동3권을 제한 한다”고 밝혔다. 공무원의 노동3권에 대한 이전 정부의 대원칙을 전향적으로 뒤집은 셈이다.

노동3권 중 단결권만 일부 확대
양대 공무원노조, “노조 할 권리 체감 못 한다”

정부의 공무원노조법 개정안의 핵심은 단결권의 확대다. 정부는 퇴직 공무원과 소방 공무원 등으로 노조 가입 대상 범위를 늘렸다. 특히 6급 이하 공무원으로 가입을 제한했던 직급 기준을 삭제한 것이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지휘나 감독, 인사, 보수 등 직무 기준이 여전해서 5급 이상 공무원의 노조 가입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지방 공무원은 사무관(5급 공무원)이면 대개 기관장이나 부서장의 직무를 맡는다. 다만, 사무관이어도 실무를 보는 국가 공무원만 조합원이 일부 늘어날 전망이다. 국가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안정섭, 이하 국공노)은 공무원노조법 개정 이후 특허청 등에서 사무관 1,000여 명이 신규 가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공노는 국가 공무원 2만 5,000여 명이 속한 대표적인 국가 공무원 노조다.

양대 공무원노조는 정부 입법안이 ILO 핵심협약의 취지를 살리기에 부족하다고 말한다. 노동 3권 중 단결권이 일부 확대됐지만, 여전히 단체행동권과 단체교섭권이 제한돼있기 때문이다. 김주업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정부 입법안을 두고 “단결권 보장은 미미하고, 단체교섭권에 대한 언급은 없다”고 일갈했다. 이창희 공노총 사무총장은 “현행법보다 진일보했지만, 노조 할 권리를 체감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사무총장은 “공무원노조가 절실한 것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이 사무총장과 공무원노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공무원노조가 절실한 것은 타임오프제(근로시간면제제도) 도입과 교섭사항의 적극적인 해석, 부당노동행위 금지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노조 전임자 제도는 공무원이 노조 활동을 하는 데 현실적인 걸림돌이 된다. 공무원 노동자가 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려면 무급 휴직해야 한다. 민간 노동자는 공무원 노동자와 다르게 근로시간면제 한도 내에서 유급 처리가 가능하다. 노조 전임자로 있는 동안 휴직 상태도 아니다. 적지 않은 공무원노조 위원장들이 업무와 노조 활동을 병행하는 이유다.

교섭사항을 둘러싼 노사 공방도 고질적인 문제로 꼽힌다. 공무원노조법은 노동조합과 조합원의 보수, 복지 등 근무조건에 관한 사항을 교섭사항으로 규정하면서도, 예산이나 정책, 임용, 조직 등에 관한 사항은 비교섭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노사 입장이 갈린다. 노조는 ‘근로조건이니까 교섭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정부는 ‘근로조건이어도 비교섭사항이니 교섭을 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공무원의 근로조건은 공무원노조법이 명시한 비교섭사항을 피해가기 어렵다. 공무원노조들이 비교섭사항을 빼고는 사측과 교섭할 것이 없다고 잘라 말하는 이유다. 이 사무총장은 “비교섭사항이라고 해도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칠 경우에는 우선 교섭을 해야 한다고 법이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공무원노조법은 부당노동행위 금지 조항이 없어서 노사가 교섭해도 강제할 수단이 없는 상태다. 김주업 위원장은 “근로조건과 관련한 사항에 대해선 노사 모두가 교섭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발생하고, 의무가 이행되지 않을 때는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 노조는 파업권도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예외적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법도 법이지만 공무원 노사관계는 사용자가 공무원노조를 파트너로 인정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며 “전국공무원노조는 10년 동안 행정부 교섭을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교섭을 할 수 있다. 법은 바뀌지 않았다. 모범적인 사용자로서 정부의 기본적인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