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무슨 노조냐고?
공무원이 무슨 노조냐고?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9.10.03 04:59
  • 수정 2019.10.03 04: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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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공무원노동조합이 필요한 이유

[리포트] 공무원노동조합이 필요한 이유

 

공무원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절대 곱지 않다. 더구나 공무원이 노동조합이라니? 그래서 노조는 국민들에게 존재 이유를 설득해야 했다. 공무원노조가 사회적 역할에 주목한 이유다. 대표적인 공무원노조로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김주업, 이하 전국공무원노조),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위원장 이연월, 이하 공노총)이 있다. 공무원노조 조직률은 2017년 말 기준 68.5%다.

사회적 역할은 공무원노조의 숙명

공무원 노동조합은 존재 이유를 사회적 역할에서 찾았다. 임금 인상 등 공무원의 처우 개선이 아니었다. 2002년 만들어진 전국공무원노조의 슬로건은 ‘공직 사회 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이었다. 노조 스스로 공직사회의 내부 감시자로서 국민의 편에 선 셈이다. 사실 공무원노조의 사회적 역할은 숙명적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공무원은 보수나 처우가 안정적이고 공적인 노동을 한다. 그래서 민간노조보다도 사회적 역할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높다”고 말한다.

더구나 공무원의 처우 개선은 국민적 지지와 공감 없이는 어렵다. 노광표 소장은 “국민적 지지가 없으면 공무원들은 한순간에 구조조정이 되거나 민영화될 수 있다”며 “공무원노조가 사회적 역할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존재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노중기 한신대 노동사회학 교수도 “요즘처럼 청년 실업률이 높고 비정규직이 많은 상황에서 공무원노조가 임금이나 노동조건에만 치중하면 사회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궁극적으로 공무원의 임금 조건도 향상이 안 된다”며 “공무원노조는 임금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고, 이는 곧 공무원으로서 제대로 일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다만, 노 교수는 공무원의 처우 개선은 그 자체로 사회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공무원이 월급을 제대로 못 받으면 부정부패의 제도적 기초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응답하라 2007 공무원노조

전국공무원노조는 2007년 ‘국민을 위한 행정’을 ‘민중행정’으로 규정한 뒤 ‘참공무원’이 되기 위한 ‘민중행정 10대 과제와 50대 시책’을 계획·발표했다.
이에 따라 노조는 공직사회 내 인사 비리 척결 등 부정부패 추방 운동, 자치단체장 업무추진비(옛 판공비) 공개 및 제도 개선 사업, 수의 계약 관행 해소 및 공개입찰제 정착, 명절 떡값 안 주고 안 받기 운동, 비리 단체장 퇴출 운동, 지방 의회 해외 연수 현황 분석, 주민 관련 조례 발의 현황 분석, 대국민 봉사 활동 등 다양한 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몇 가지 사업을 제외하고는 선언적인 의미에 그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공무원노조가 2011년 창립 9주년을 맞아 ‘공무원노조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주제로 연 토론회 자료를 보면 당시 홍성호 전국공무원노조 정책소장은 “중앙조합 차원의 일부 활동을 제외하고는 본부 및 지부, 조합원 차원의 실천 활동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홍 정책소장은 “‘민중행정 10대 과제와 50대 시책’은 공무원노조가 수행하기 어렵거나 심지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사업들까지 광범위하게 포괄하고 있다”며 “사업들이 당위론적으로 나열돼 있을 뿐 본부나 지부, 현장 조합원들의 참여나 실천계획은 결여돼있다”고 사업 과제와 실천 경로가 모호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홍 소장은 “법외노조 상태, 해직자 문제 등 공무원노조의 상황은 사회공공성과 관련된 사업을 여유롭게 추진할 만한 여건은 아니다. 그러나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해도 공무원노조를 건설한 지 1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조직이 어렵다는 구실을 방패 삼아 이에 대한 사업들을 당위론적인 측면에서 선언적 구호로만 나열하고 있는 것은 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공무원노조의 운동 방향성에 대해 홍 정책소장이 고백한 내용은 지금도 유효해 보인다.

“공무원노조는 설립 초기에 비합법의 한계를 극복하고 민주노조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전투적 조합주의를 견지하였고, 이를 통해 민주성, 자주성 및 연대성 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조직화에도 성공하였다. 공무원노조법이 시행되고 법내로 진입한 이후에는 일정 부문 경제적·실리적 조합주의로 흐르는 경향도 나타나기도 하였다. 다시 법외노조 상태가 된 작금에는 표면적으로는 전투적(조합주의) 경향을 유지하는 듯하나, 내적으로는 조합원의 요구와, 다른 공무원노조와의 조직경쟁이라는 미명 하에 경제적 이익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더 문제인 것은 그때그때 상황 변화에 따라 기조가 즉자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지 의심스럽다는 점이다.”

노광표 소장도 “공무원노조가 지난해 합법화된 뒤로는 거꾸로 노조의 기본 활동에만 집중하는 것 같다. 법외노조 시절에는 민중행정과 한국 사회 개혁 과제를 얘기했다. 지금은 공무원노조의 본질적인 역할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한편, 노조가 추진했던 민중행정 사업의 흔적은 2019년 충북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전국공무원노조 충북지역본부는 지난 2012년부터 매년 한 회씩 ‘참행정 실천대회’를 열어왔다. 참행정 실천대회는 충북도내 시군 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주민참여예산 제도의 발전 방향’이나 ‘조기 집행이 지방 재정에 미치는 영향’, ‘지역 축제의 허와 실’ 등 지자체 정책의 한계를 비판하고 대안을 토론하는 자리다. 노정섭 전 충북지역본부장은 “이런 사업을 하면서도 도청 회의실을 한 번 사용하지 못했다. 도청에서 해야 할 일인데도 매년 쫓겨 다니면서 했다. 좋은 의제들이 많이 나왔지만, 현장에 접목은 못 했다. 공무원노조가 법외노조로 있다 보니 좋은 의제가 나와도 기관장들이 채택을 안 했다”고 회고했다.

노광표 소장은 최근 10년간 노조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체감하기가 어렵다”고 비판했다. 다만, 노 소장은 노조가 당면한 한계를 인정했다. 노 소장은 “공무원노조는 지난 13년 동안 단체교섭을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엔 공무원노조법만 있지 공무원 노사관계가 작동하지 않았다. 지난 10년 동안 공무원노조는 공무원노조를 법으로 인정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다퉜다. 당장 조직이나 경제적 이익도 지키지 못하는데 무슨 다른 걸(사회적 역할) 하냐는 조합원의 요구가 있는 것이다. 공무원노조가 합법화된 지 1년밖에 안 됐다. 이제부터 평가대에 올라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중기 교수도 이에 공감했다. 노 교수는 “지난 10년 동안 공무원노조가 사회적 역할을 잘하지 못한 것은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노 교수는 “변화된 조건 속에서 새로운 운동을 시도하는 게 필요하고 시기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현오 전국공무원노조 사무처장은 “전국공무원노조는 지난 10년 동안 법외노조로 있다 보니 사회적 역할보다는 노동조합을 지키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작년 3월 설립 신고가 나서부터는 2008 대정부 교섭과 정책협의회, 보수위원회 등 조합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지금은 이런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앞으로는 사회적 역할을 실천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공무원노조, 무엇을 할 수 있나?

그렇다면, 양대 공무원노조가 모두 법 안으로 들어온 이 시기에 공무원노조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최현오 사무처장은 공무원노조의 공직사회 내부 비판과 감시로 국민의 편에선 행정을 할 수 있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최 사무처장은 “노조가 더 강했더라면 박근혜 국정농단은 불가능했다”며 “공무원노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지방의회의 부패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인기 영합적이거나 불합리한 정책들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지금으로선 조직적 역량의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한편, 이창의 공노총 사무총장은 “공무원노조가 정책을 비판할 수 있지만 선도적으로 하기는 굉장히 어렵다”고 털어놨다. 이 사무총장은 “문제를 제기한 노동자나 노동조합이 내부 정보 유출 등으로 징계를 받거나 해직 될 수 있다”며 “행정 절차에 따른 처벌이기 때문에 공무원노조가 보호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래서 노조는 항상 사후 비판을 통해서 사회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며 “공무원의 정치기본권이나 노동기본권이 확보되지 않는 한 내부 비판을 선도적으로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진단했다.

그의 말처럼 공무원노조가 불합리한 정부 정책이나 행정을 비판하거나 제안할 수 있는 합법적인 창구는 부재한 상황이다. 공무원노조법은 정책 등에 관한 사항을 비교섭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노조는 단체행동권이 없어서 교섭력도 낮은 수준이다. 이에 대해 노중기 교수는 “공무원노조가 교섭할 수 있는 사안은 아주 협소한 의미에서 임금 인상과 복리 후생 등의 노동조건들이다. 이를 조금이라도 넘어서는 공무원의 조직 혁신, 공직 사회 내부의 제도 개혁 등 정책적 내용들은 교섭 사안이 아니다. 그래서 공무원노조 특별법 속에서는 공무원노조가 임금 조건만 챙기는 노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공무원노조 특별법의 한계를 극복하지 않고 공무원노조가 합법화되는 것은 노조가 노조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노 교수는 “이는 결국 공무원의 임금 조건은 물론 국민들의 피해로 돌아온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부 노조들의 ‘투쟁’은 계속 되고 있다. 지난 2017년 우정사업본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무원노조는 우본이 추진하려던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 우표 발행’에 강하게 제동을 걸었다. 우표 발행 심의위원회는 2016년 구미시의 요청으로 박정희 기념 우표 발행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이듬해 9월 우표가 발행 될 예정이었지만 노조는 ‘우표류 발행 업무 처리 세칙’에 따른 발행기준(정치적·종교적·학술적 논쟁의 소지가 있는 소재)을 들어 즉각적인 철회를 요구했다.

노조는 시민단체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광화문 광장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등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발행을 고수하던 우본은 한 달 만에 입장을 철회했다. 이철수 우본 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처음에는 될까 싶었다. 그런데 노조가 목소리를 내면서 이슈가 됐다. 우표 발행이 취소 된 뒤 독립유공자 세 분으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았다. 노조가 공익적인 활동을 하는데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우표 발행 심의위원회가 결정된 우표 발행을 철회했던 전례는 없다. 이철수 위원장은 “물론 한계는 있지만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이 제한돼있다고 해서 공무원노조가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노조가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도 지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이후 ‘노동법원’ 설치에 대한 의제를 다시금 꺼내들었다. 조석제 법원본부장은 올해 3월 노사 단체협약에 ‘노동법원 설치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조석제 법원본부장은 사법농단의 최대 피해자를 노동자 국민으로 봤다. 노동법원 설치는 비교섭대상에 해당되지만 노조는 끝까지 법원행정처를 설득해냈다.

노광표 소장은 “노동기본권이 보장되지 않아서 사회적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말은 핑계”라고 지적했다. 노 소장은 “물론 합법노조와 법외노조는 다르지만 결정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는 “국민들은 공무원노조가 있는지도 모른다. 관심도 없다. 하지만 앞으로 다를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실업률이 높아졌다. 국민들은 물을 것이다. 공무원노조가 시민 사회의 요구나 물음에 대해서 답하지 못하면 고립된 섬이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노조관계자는 “정부의 탄압도 탄압이지만, 의지가 부족했던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본다”며 “맨날 손가락질 당하는 공무원이 돼선 안 된다. 개인의 직업적 만족도나 노조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라도 사회적 역할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