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공연 산업, 작아지는 연극인의 삶
커지는 공연 산업, 작아지는 연극인의 삶
  • 최은혜 기자
  • 승인 2019.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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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제관계가 만들어 낸 ‘배고픈’ 연극인
가장 필요한 것은 고용보험 대상자로의 편입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8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에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예술인은 12만 8,540명이다. 이중 1만 8,499명이 연극에 종사하고 있다. 바로 직전 실태조사인 「2015 예술인 실태조사」에서 15,744명이었던 연극인은 3년 사이에 약 3,000명이 늘어났다. 전체 예술인 중 약 10.7%가 연극인이며 미술인과 대중음악인에 이어 3번째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늘어난 것은 연극인뿐만이 아니다. 「2015 공연예술실태조사」에 따르면 공연시설과 단체는 3,318개로, 매출액 규모는 7,593억 1,500만 원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2018 공연예술조사」에서 공연시설과 단체는 3,880개로, 매출액 규모 역시 8,132억 1,800만 원으로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공연 산업이 성장하는 만큼 연극인들의 삶도 성장하고 있을까?

연극인이 배고픈 이유

위의 SNS 게시글은 배우 지망생 A씨의 상황을 각색한 것이다. A씨는 몸담고 있던 아동극단을 나와 모 공연의 오퍼레이터로 일했다. 당장의 생활비가 필요한 이유도 있었지만 자신이 꿈꾸던 무대에서, 실제로 일하는 배우들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A씨는 잦은 임금 지연으로 결국 퇴사를 선택했다. A씨가 일한 기간 동안 급여가 지급일에 맞게 들어온 것은 단 한 번에 불과했다. A씨는 급여 지급일에 대해 문의했으나 공연제작사는 A씨의 연락을 피했다. 견디다 못한 A씨는 계약서를 들고 노동청을 찾았다. 공연제작사는 A씨의 신고 사실을 알고 난 후 ‘신뢰관계가 깨졌다’며 퇴사를 종용했다. A씨는 퇴사한 달의 임금을 퇴사 두 달 차에 겨우 받을 수 있었다.

이종승 공연예술인노동조합 위원장은 “원인은 희생을 강요하는 것에 있다”며 “‘나 때는 이것도 못 받았어’, ‘우리는 돈 들여가면서 공연했어’ 등의 마인드에서 못 벗어나는 제작자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공연예술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풍토가 연습 시간에 대한 보상은 물론, 공연에 대한 임금 미지급 사태가 발생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배우들 역시 워낙 지원금이 적고 사정을 뻔히 알다 보니 임금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라고 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종승 위원장은 공연을 한 번 올리면 공연 제작비의 1/3은 대관료로, 1/3은 스태프 인건비로 나간다고 설명했다. 60~70%가 고정비로 사용되고 남은 금액을 가지고 연습 기간 중 진행비와 연출, 배우, 진행 인력의 인건비를 지급하는 구조라서 진행비까지 지출하고 나면 나머지 인건비로 돌아가는 돈은 거의 없는 셈이다. 빠듯한 예산이라 배우 인건비는 가장 후 순위로 산정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오경미 문화예술노동연대 사무국장 역시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오경미 사무국장은 “대부분의 극단이 국가지원금으로 작품을 만드는데 국가지원금 파이는 크지 않다”며 “자기 출혈로 공연을 꾸려가는 상황이라면 배우들이나 공연에 참여하는 스태프 전원에 재정상황을 투명하게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연출가나 제작자들이 다 같이 만들어가는 작품이라는 생각으로 함께 방안을 찾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철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운영본부장은 도제관계를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았다. 정철 본부장은 “연극은 협업 단위 기반의 예술 활동”이라며 “협업 단위의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도제관계로 도제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내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예전에 예술인이었던 사람이 제작자나 연출가가 돼 공연을 올리고 ‘선배나 교수님이 연출한 공연이니까’라는 생각으로 임금에 대한 명확한 계약 없이 진행된다”며 “굉장히 불공정한 관행이지만 이것이 협업기반의 문화예술계의 현실이다”고 설명했다.

연극인에게 계약서란?

앞서 언급한 A씨의 사례는 공연예술계에서 흔한 사례다. 그래도 A씨는 서면 계약서가 존재했다는 점에서 나은 사례에 속한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사장 윤영달, 이하 재단)에 따르면 예술인 신문고의 운영을 시작한 2014년부터 올해까지 신고된 불공정행위 868건 중 임금을 포함한 각종 사례비, 저작권료 등을 미지급하거나 지연 지급, 혹은 일부만 지급한 사례가 650건이나 된다. 전체 불공정행위 중 약 75%에 해당한다. 이중 약 1/5에 해당하는 124건은 계약서를 작성하지도 못한 경우였다.

실제로 예술 활동 관련 계약체결 경험을 묻는 2015 예술인 실태조사에서 30.7%가 계약 체결의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서면 계약서가 25.5%, 구두계약이 5.2%였다. 예술인의 1/3이 계약서가 없이 일한 것이다. 그나마 연극계의 경우 49.2%의 연극인이 계약 체결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절반도 못 미치는 수치지만 영화, 만화 분야에 이어 3번째로 계약 체결 경험이 높았다.

같은 질문에 대해 2018 예술인 실태조사에서는 42.1%의 예술인이 계약 체결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연극계는 71.5%로 계약 체결 경험이 급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연극계는 구두계약으로 계약 체결을 한 경험이 7.7%로 두 번째로 높았다.

연극인의 계약 체결 경험 비율이 예술계에서는 높은 편이지만 아직도 30% 가량의 연극인은 계약 체결 경험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노무를 제공할 때 당연하게 작성해야 할 계약서의 작성 비율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오경미 사무국장은 “애초에 계약관계가 대등하지 않다”며 “‘너 말고도 할 사람 많다’고 말하며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갑에게 계약서를 내밀 수 있는 을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지적했다. 또한 “이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권고 수준에 불과한 표준계약서는 만능키가 될 수 없다”며 “대등한 계약관계를 만드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술인 복지법 제4조의3은 대등한 입장에서의 공정한 계약 체결 및 이행을, 제5조는 표준계약서의 보급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양우, 이하 문체부)는 표준계약서 개발을, 재단은 보급과 홍보를 담당하고 있다. 현재 문체부 소관 표준계약서는 10개 분야 61종으로 공연예술 분야의 표준계약서는 창작, 출연, 기술지원(용역, 근로)의 총 4종이 개발·보급됐다.

이종승 위원장은 표준계약서에 대해 “개개인이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는 계약서이기 때문에 표준계약서를 만드는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면서도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주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표준계약서라는 게 바로 보고 적용할 수 있는, 간단한 내용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상대적으로 약자인 배우와 스태프를 보호하기 위해서 넣은 항목들이지만 계약서를 꼼꼼하게 읽지도 않고 사용자 측에서도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먼저 계약서를 내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의견에 대해 정철 본부장은 “표준계약서가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경우에는 서로 알아듣기 좋은 말로 고치면 된다”면서 수정·보완을 통해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종승 위원장은 “표준계약서는 관에서 고시한 것이기 때문에 법적 효력이 있는 문서”라며 “고쳐서 쓰게 하기보다는 처음 만들 때 현장에 맞게끔 만들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현장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 알아듣기 어려운 표준계약서가 거리감을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종승 위원장은 상해보험이 상호 조율로 된 점 등 개선할 점이 많다며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수정을 요구할 것이라 밝혔다. 공연예술인노조의 지적에 대해 재단은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표준계약서를 개발하는 문체부가 현장의 소리를 다양하게 들을 필요가 있다”고 수긍했다.

수정·보완이 필요한 표준계약서이지만, 표준계약서 사용에 대한 전망은 밝다. 「2018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면계약을 경험한 연극인 중 61.8%가 표준계약서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정철 본부장은 “표준계약서 등 계약문화가 아직 공연예술계에 거의 없다는 문제가 있지만 앞으로 표준계약서가 많이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정철 본부장이 밝은 전망을 내놓은 이유는 바로 국회에 발의된 「고용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제16373호)과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징수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제16361호), 「예술인 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제17201호) 때문이다. 이 세 법안은 예술인에 고용보험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고용보험을 가입하기 위해서는 계약서 작성이 필수이기 때문에 정철 본부장은 표준계약서의 확산을 자신하고 있다.

연극으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는...

「2015 예술인 실태조사」에서 밝힌 예술인 평균 예술 활동 수입은 1,255만 원. 3년이 지난 「2018 예술인 실태조사」에서는 1,281만 원으로 겨우 26만 원이 오른 것으로 확인됐다. 연극인은 예술인 중에서는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다. 연극인의 연극 활동 수입은 「2015 예술인 실태조사」에서 1,285만 원이었으나 「2018 예술인 실태조사」에서는 1,891만 원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들이 한 달에 평균적으로 손에 쥐는 돈은 160만 원이 채 안 된다. 연극 활동을 통해 일 년 동안 1,000만 원 미만의 돈을 버는 연극인 역시 60%으로 과반수다. 연극인은 어떻게 해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

지난 2011년, 시나리오 작가인 고(故) 최고은 작가의 사망으로 제정된 예술인 복지법. 이 법의 목적은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고, 예술인 복지 지원을 통하여 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을 증진하고 예술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예술인 복지사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예술인 복지법의 목적에 부합하는 갖가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현재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사업은 ▲창작역량 강화 ▲불공정 관행 개선 ▲직업역량 강화 ▲사회안전망 구축 ▲예술 활동증명 및 기반 조성 등의 5가지 영역, 15개의 사업이다. 정철 본부장은 “창작 활동 증진을 위한 문화예술진흥법이 있지만 창작 활동 이전과 이후 단계에서 생활에 보탬이 되는 차원의 사업을 재단에서 담당한다”고 밝히며 “예술선진국이 되려면 활동 지원보다도 예술 활동을 못하는 실업상태일 때 보호해줄 수 있는 제도가 잘 돼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가장 반응이 좋았던 사업은 바로 예술인 생활 안정자금 융자사업이다. 예술인의 창작 환경 개선과 생활기반 마련에 도움을 주기 위해 실시된 이 사업은 시범 사업으로 자금 규모가 80억 원가량이었다. 이종승 위원장은 “이번에 시범사업이 잘 돼서 내년에 예산이 늘어나 많은 예술인이 도움을 받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라며 “정말 급하게 필요한, 신용불량 상태의 예술인 등은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없어서 아쉽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철 본부장은 “서민금융보다 대상이 넓다”며 “시중 은행이나 서민금융에서의 대출 대상이 안 되는 8등급까지 신청 대상에 포함했다”고 밝혔다. 정철 본부장은 이러한 낮은 기준으로 국회와 정부에서 회수가 안 될 시의 대책을 종용하는 압박이 심하다고 말했다. 이어 “간단한 금융교육을 하면서 잘 쓰고 잘 갚아야 이후에 동료나 선·후배들이 또다시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재단은 예술인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여러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지난 4월 근로복지공단과 체결한 업무협약이다. 재단은 “근로복지공단과 예술인 사회안전망 강화와 복지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는데 이미 재단이 설립되던 시기부터 개별적으로 산재보험에 가입할 것을 독려했다. 이종승 위원장은 “재단에서 독려했지만 많은 동료들이 산재보험을 가입하지는 않았다”며 “이번 업무협약이 개별적으로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예술인을 구제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되지 않을까한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가장 최근에는 성북구노동권익센터와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체불임금 문제 등 예술 활동의 어려움에 처한 예술인에게 전문적인 상담 및 법률 지원을 통한 실효적 구제 조치를 마련하기로 했다. 재단은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예술인들이 복잡한 체당금 신청 과정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정철 본부장은 “지난 2014년부터 누적된 임금 미지급 관련 예술인 신문고 제보가 650건, 금액은 32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근로자성이 인정될 경우 근로복지공단의 체당금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데 예술인은 근로자성이 입증되지 않아 체불된 임금을 받아내지 못하는 것을 구제하기 위한 업무협약이라는 것이라고 정철 본부장은 설명했다.

그러나 연극인이 연극으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노동자성의 입증’이다. 예술계는 이를 위해 “예술인 역시 고용보험에 당연 가입이 돼야한다”고 강조한다. 정철 본부장은 “고용보험 관련 법안 만드는 데만 2년이 걸렸다”며 “2017년에 재단 운영본부장에 부임해서 만들기 시작해 겨우 법안이 발의됐는데 국회가 파행이라 통과가 안 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오경미 사무국장은 “예술인 복지법이 발의될 때 산재보험과 함께 고용보험 가입을 보장할 것이 담겨 있었는데 빠졌다”며 “고용보험 대상으로의 편입은 예술 활동을 임금을 받고 노무를 제공하는 활동으로 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종승 위원장 역시 “고용보험은 당연히 누렸어야 할 권리”라며 “고용보험 대상으로 편입돼야 안심하고 작업을 더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예술인들은 “예술 활동으로만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바란다. 이종승 위원장은 “예술은 기본적으로 지원 없이 하기에는 열악하고 힘든 분야”라며 “‘너희들이 좋아서 하는 일인데 감수하라’는 사회적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예술계는 분야와 특성이 다채롭기 때문에 분야별 전담인력을 갖춰 현장의 소리를 좀 더 경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술인 복지정책을 만들어가는 정철 본부장 역시 “현장 예술인의 소리를 듣기 위해 복지위원회 내에 현장소통소위원회를 만들었다”며 “현장의 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노력을 다할 것이고 앞으로 정책 기조를 보편적 지원의 방향으로 확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