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기본권은 ‘국민의 봉사자’ 되기 위해서 필요하다”
“노동기본권은 ‘국민의 봉사자’ 되기 위해서 필요하다”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9.10.03 04:59
  • 수정 2019.10.03 04: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 법안, 노조할 권리 확대 체감 못해
[인터뷰] 김주업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정부가 해직 공무원과 소방 공무원, 가입 제한 직급 기준을 삭제한 공무원노조법 개정안을 10월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노동3권을 요구해온 공무원노조 입장에선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는 평가다.
9월 2일 김주업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을 만나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이 왜 필요한지 다시 물었다. 노동기본권이 보장되면 공무원노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물었다.

Q. 정부의 공무원노조법 개정안, 어떻게 보나?

단결권이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확대되지 못했다. 해직 공무원의 가입을 허용한 것은 현행법보다 진일보 했다. 직급 제한도 삭제했지만 사실상 영향이 거의 없다. 직무 기준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Q. 가입 대상 직무 기준이 문제가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일반노조법에서도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해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는 ‘사용자’로 보고 있지 않나?

공무원 노사관계는 민간 부문과 다르게 노와 사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다. 대다수 공무원들은 직접 정책을 결정하거나 지휘하지 않는다. 그럴 권한도 없다. 인사, 정책 등의 업무를 본다고 하더라도 정무직 공무원 등 상부에서 결정한 정책을 명령에 따라 집행할 뿐이다. 노동자성이 존재한다. 정무직을 뺀 나머지 공무원들은 직무와 관계 없이 가입 대상이 돼야 한다고 보는 이유다.

Q. 또 무엇이 부족했나?

단체교섭권에 대해선 전혀 언급이 없다. 노동조합의 대표적인 기능은 사측과의 임금 교섭이다. 공무원의 임금은 국가의 예산과 연결 된다. 그런데 예산과 조직, 인사, 감사, 정책 등에 관한 사항은 비교섭 대상이거나 교섭을 체결해도 효력이 생기지 않는다. 비교섭 대상을 제외하고선 노조가 교섭할 내용이 없다. 게다가 사측은 노조와 교섭을 체결한 뒤에 지키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공무원노조법에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조합원의 노동 조건과 관련된 사항은 노사가 지켜야 하는 의무가 발생하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는 법적인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Q.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기본권은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사회적 상황이나 특수성이 존재할 경우 당사자 협의 등을 통해 예외적으로 제한될 수 있다. 그런데 현행법은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노동3권은 어느 하나를 떼고서 이야기할 수 없다. 노동 3권 중 한 가지 권리가 빠지면 나머지 두 가지 권리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공무원도 공무원이기 전에 노동자이기 때문에 노동기본권을 똑같이 보장받아야한다. 공무원 노동자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도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은 보장돼야 한다.

Q. 공무원 노동자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가?

공무원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이유는 공무원이 ‘국민의 봉사자’라는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봉사는 국민에 대한 ‘무한 봉사’, ‘열정 페이’를 의미하지 않는다. 진정한 봉사란 국가가 만든 법과 제도들이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아닌지를 감시하고,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본다. 현장에서 정책을 집행하는 공무원들은 정부의 정책이 탁상 행정인지 아닌지를 가장 잘 안다.

Q. 공무원의 노동기본권과 사회적 역할이 무슨 상관인가?

그동안 잘못된 정책에 대해 반항하거나 비판의 목소리를 낸 공무원들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공직에서 배제되는 등 불이익이 따랐다.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를 거부했다가 공직에서 쫓겨난 노태강 문화체육부 소속 공무원이 가까운 사례다. 공무원의 사회적 역할은 공무원 개인이 아니라 노조라는 단체가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현장의 공무원들의 목소리를 정책 수립 단계나 집행 과정에서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전혀 없다. 국가의 법과 제도에 대해서 모니터링 하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수정을 요구하거나 싸워야 하지만 그럴 권한이 없다. 그러면 다 불법이다. 그런데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이 보장되면 교섭력이 커진다. 정부에 정책 등에 대해 합법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대화 기구 등의 창구를 요구할 수 있다.

Q. 그동안 공무원노조는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국민적 체감도는 그리 높지 않다. 노조 출범 이후 지난 18년 여 동안 사회적 역할과 관련해서 노조를 돌아본다면? 무엇이 잘 됐고, 무엇이 부족했다고 보나?

건축물 인허가 급행료 등 공직 사회 내부의 여러 부정부패나 불합리한 관행들을 감시하고 비판하면서 없앴다. 지방 의원이나 상사의 갑질 등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직장 민주화에도 기여했다. 하지만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 비판이나 제도 개선은 하지 못했다.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그럴 만한 제도가 없었다. 노조의 정책 역량도 아직 부족하다. 그동안 노조는 조직을 지키는데 집중해야 했다. 정책 역량을 더욱 강화해서 정책 비판이나 제안 등도 목표로 삼겠다.

Q. 공무원노조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조합원의 공감 수준은 어떤가?

아주 높은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노조가 사회적 역할을 제안했을 때 거부하기보다는 다수가 공감한다.

Q. 노조가 정부의 정책에 대해 비판을 하거나 제안을 하는 것이 월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권이 국민을 위한 정권이라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승만, 박정희 등 역대 정권들은 국민을 위한 정권이 못 됐다. 그러다보니 공무원노조도 이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Q. 공무원노조가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무원이 국민의 봉사자로서 제대로 역할하지 못하고 경제적 이익만 추구했을 때 노조는 결코 지속할 수 없다. 모든 노조가 마찬가지다. 경제적 이익보다는 본연의 역할을 잘 하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

Q. 공무원은 민간과 다르게 신분이 두텁게 보장된다. 여기에 노동3권 모두가 보장되는 것은 이중적인 혜택이라는 지적도 있다.

신분이 보장되면 노동기본권을 제한해야 한다 또는 제한해도 된다 식의 논리는 맞지 않다. 대기업 노동자는 월급이 많다고 노동기본권이 제한되지 않는다. 기본권은 기본적으로 보장돼야 하는 권리다.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도 시간이 지나면서 전향적으로 바뀔 것이다.

Q. 공무원의 처우 개선은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그동안 정부는 공무원의 노동 강도를 높여서 양질의 서비스를 짜냈다. 그런데 공무원들의 처우나 근무 조건이 낮으면 결코 양질의 서비스가 나올 수 없다. 사회 복지 공무원을 예로 들어보자. 사회 복지 공무원이 복지 서비스를 잘 하기 위해선 현장에 나가서 실태도 파악하고, 문제점도 들어야 한다. 그런데 서류 작업을 하는데 만 날을 셀 판이다. 사회 복지 공무원 한 사람이 담당하는 민원인의 수가 수백 명이 됐기 때문이다. 노조는 사회 복지 공무원을 대폭 늘리고, 양질의 복지 서비스를 제고할 수 있는 근무 조건과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예산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물론 행정은 예산이 많이 투입된다고 꼭 양질의 서비스가 나오는 구조는 아니다. 하지만 예산을 적게 투입한다고 행정의 효율성이 높다고도 말하기 어렵다. 공무원의 처우는 최소한 공무원이 직업에 대해 만족할 수 있고, 양질의 서비스를 위한 기본 조건은 충족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Q. 공무원 노사관계에서 국민은 사용자인가 소비자인가?

국민은 행정 서비스의 소비자다. 사용자는 아니다. 국민이 공무원을 고용한 것이 아니다. 일반 기업도 노사가 있고 소비자가 있다. 기업을 운영하는 돈은 모두 소비자로부터 나온다. 공무원들은 국민들에게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민들은 그 대가로 세금을 낸다.

Q. 바람직한 공무원 노사 관계를 위해서 노사와 국민은 각각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노동조합, 노동운동에 대해 우편향돼 있다. 노조의 요구에 대해서 불온하게 생각하고 어떻게든 안 해주려고 한다. 사측은 노동에 대한 관점부터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사 갈등으로 인한 불필요한 사회적 낭비가 계속 될 수 있다. 노조는 경제적 지위에 천착해선 안 된다. 물론 중요하지만, 사회가 부여한 역할을 잘 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권이 들어설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노조의 역할이다. 국민은 노조를 지지하고 지켜보면서 비도적적이거나 불법적일 때는 비판을 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