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숙한 일상에 균열을' 일하는 청소년들의 노동조합
'친숙한 일상에 균열을' 일하는 청소년들의 노동조합
  • 정다솜 기자
  • 승인 2019.10.04 00:25
  • 수정 2019.10.04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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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권혁진 일하는 청소년 연대 위원장

'일하는 청소년 연대'는 청소년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고 싶은 청소년들이 만들어가는 노동조합이다. 올해 1월 만들어졌으며 조합원은 15명이다. 내년 초 정식 노동조합 설립을 목표로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활동 중이다.

일하는 청소년 연대를 처음 만난 날은 지난 8월 6일이었다. 일하는 청소년들은 서울 고용노동청 앞에서 아침부터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었다. 외교부 산하 비영리 재단법인 '양포'에 대한 특별 근로감독을 고용노동부에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일하는 청소년 연대에 따르면 부대사업으로 스테이크 함바집을 운영하는 양포는 청소년 노동자를 상대로 불법고용, 임금체불, 근로계약서 미작성뿐 아니라 원치 않는 합석까지 강요했다.  

일하는 청소년들을 처음 만난 날 궁금한 이야기가 많았다. 청소년 노동조합은 왜 만들게 된 건지, 운영 과정에 어려움은 없는지, 청소년이 느끼는 청소년 노동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양포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등을 묻고 싶었다. 권혁진(강릉문성고·19) 위원장을 따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권혁진 준비위원장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권혁진 준비위원장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 일하는 청소년 연대를 만든 계기가 궁금하다.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고양국제고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보안관님이 해직당할 위기에 처했다. 그때 사태 해결을 위해 학생 연대를 조직해서 보안관님의 해직을 막았다. 그 과정에서 민주노총에 전화를 해봐도 ‘조합원이 아니라 도울 수 없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제한되어 있다’ 이런 대답을 들었다. 투쟁이 끝난 뒤 ‘보안관님 곁에 노동조합이 있었더라면 애초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당시 모였던 사람 중 6명의 청소년이 모여 노동조합 설립을 기획하게 되었다.

- 왜 ‘청소년’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건가?
우리가 갖고 있는 세대 당사자성이 있다. 청소년 노동자라서 겪는 문제점이 많다. 청소년 노동은 소외된, 버려진, 잊혀진 노동이다. 우리와 같은 경험을 공유하면서 존재하지만 존재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부당하지만 부당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청소년 노동자를 위한 노동조합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청소년 노동이 버려졌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청소년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은 노동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인식이 사회에 깔려 있다. 노동하는 청소년은 불량 청소년이라고 생각하거나 공부할 시간에 아르바이트나 한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청소년의 존재 자체를 권리를 지닌 주체로 인식하지 않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청소년이라서 최저임금을, 연장근로수당을, 주휴수당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근로계약서를 안 쓰기도 한다. 모두 청소년이 권리를 가진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요즘 특성화고 문제가 알려지고 있긴 하지만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의 노동에 대해서는 아직 인식이 부족하다. 그런 맥락에서 버려진 노동이라고 표현한 거다.

- 조합원 모임 전에 ‘평등규약’을 같이 읽고 시작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간담회 같은 데를 가면 차별적인 말과 청소년 혐오 발언을 자주 듣는다. 어느 간담회에서 청소년 인권 관련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주제가 나왔는데 갑자기 ‘파마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고 따지는 경우도 있었다. 숏컷한 여성 조합원에게 ‘남자냐, 여자냐’고 묻거나 제가 호리호리하다 보니까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 사람도 있다. 청소년이기에 이런 대우를 겪는 부분도 있겠지만 우리사회가 혐오문화와 차별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그런 말들이 쉽게 나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끼리는 차별과 배제, 혐오 없는 공동체 속에서 생활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 평등규약을 만들었다.

- 그렇다면 청소년 노동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외에 어떤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가?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 의무화, 청소년 노동에 감수성 있는 근로감독관 배치 등 청소년 노동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는 많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제도를 만들기 위해선 정치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청소년 참정권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선거연령이 낮아지고 청소년 세대 자체가 표가 되어야 청소년 노동을 보호할 수 있는 적극적인 제도들이 갖춰질 수 있을 것 같다.

- ‘양포 사건’은 종결된 건가?
그렇다. 지난 6월에 노동상담 신고가 들어와 일하는 청소년 연대에서 처음 맡은 사건이었다.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체불임금을 받아내지도 못했다. 검찰과 고용노동부에서는 양포의 노동인권침해 관련해 무혐의 판결을 내렸다. 사건을 도와준 변호사도 항고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사건을 처음부터 수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진술서상 불리한 내용을 자술한 부분이 있어서 그게 가장 큰 장애물로 작용했다.  

- ‘양포 사건’은 위원장에게 어떤 의미였나?
청소년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을 절감했다. 양포 사건에서 체불임금은 10만 원이었다. 사실 어른들, 비청소년 입장에서 봤을 때 10만 원은 얼마 안 되는 돈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엄청나게 큰돈이고 그 돈을 받기 위해 우린 투쟁했다. 누군가는 몇 푼 안 되는 돈을 받으려고 왜 그러냐는 식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양포 사건을 우리에게 상담한 당사자는 여러 기관을 찾다가, 찾다가 온 거였다. 다른 곳에서도 똑같은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10만 원이면 그냥 하지 마라’ ‘도와줄 수 있는 부분도 없다’며 조언 아닌 조언을 하는 기관이 많았다고 한다. 청소년 노동자들은 부당한 일을 겪어도 도움 구할 수 있는 곳이 적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더 든든하고 단단한 단체가 되어서 그런 분들에게 기댈 수 있는 등나무 같은 존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 청소년 노동조합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이 있나?
입시와 청소년 노동조합 간 관계설정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아마 청소년 운동을 하는 모든 분들이 그런 고민을 할 거다. 시험기간에는 못 모인다. 수행평가 기간도 못 모인다. 입시 기간이 되면 고3인 조합원들은 모든 업무가 마비된다. 업무의 연속성을 놓치게 된다. 입시뿐 아니라 애초에 ‘세대’가 모인 것이기 때문에 졸업 등 세대를 뛰어넘으면 당사자성을 잃어버린다. 그러다 보니까 조직의 연속성에 대해서 계속 고민해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또한 청소년 노동자 같은 경우는 조직화되어 있지 않고 뭉쳐 있지 않다. 그래서 어떻게 다가가고 조직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크다.

- 일하는 청소년 연대를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청소년 노동문제가 비주류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아 기존 언론 보도에 의존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그래서 SNS에서 주력해 홍보하고 있다. 우선 포스터, 카드 뉴스 등을 ‘힙’하게 예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일러스트가 예쁜 단체가 있더라, 이런 조합이 있더라 조금씩 알려지더라.

- 기존 노동운동을 보면서 어떤 한계를 느꼈고 바꿔나가고 싶은 부분이 있는지 궁금하다.
어려운 질문이다. 노동조합 자체가 젊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운동방식이 바뀌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네이버 노조에서 노래 부르고 집회하는 거랑 기존 노조에서 하는 방식 자체는 별로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한쪽은 젊고 한쪽은 올드하다고 이야기하는가? 그건 결국 주체의 차이라고 본다. 그런 맥락에서 노조가, 지도부가 젊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당이 청년 정치인을 키우는 것처럼 노동조합에서도 청년 노동운동가를 적극적으로 양성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그러다 보면 ‘친숙함’이라는 글자가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에 새겨질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 그렇다면 어떤 청소년 노동조합을 만들어가고 싶은가?
청소년에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싶다. 청소년이 일하는 일터에 노동의 민주주의가 있으면 좋겠다. 청소년들이 일터에서 자기 목소리를 지닌 주체로서 거듭나는 과정을 함께하고 싶다. 또한 우리의 구호는 ‘친숙한 일상에 균열을’이다. 청소년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청소년 차별과 배제에 익숙해져서 그것을 친숙하게 느끼는 사람들의 일상에 균열을 내주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권혁진 위원장을 인터뷰한 뒤 일하는 청소년 연대의 다른 조합원에게도 ‘나에게 노동이란?’ ‘나에게 노동조합이란?’ 두 가지 질문을 던져봤다.

 

나에게 노동이란?

나에게 노동이란 개인과 사회와 국가가 총체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김승엽(학교 밖 청소년·18)
나에게 노동이란 모든 사회구성원이 거치는 과정이다. A(동두천외국어고·19)
나에게 노동이란 자본에 예속되어서는 안 될, 인간의 고유한 존재 방식이다. 변현준(동탄국제고·19)
나에게 노동이란 존엄성이다. 강신정(고양국제고·19)
나에게 노동이란 당당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홍지영
나에게 노동이란 책임이자 권리다. 김정인(고양국제고·19)
나에게 노동이란 신성하지만은 않은 예술이다. 노서진(18)
나에게 노동이란 당당히 외쳐보고 싶은 것이다. 이서우(고양국제고·19)
나에게 노동이란 살아가는 과정이다. 익명

 

나에게 노동조합이란?

나에게 노동조합이란 나의 권리이다. 이서우(고양국제고·19)
나에게 노동조합이란 모든 노동자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지금으로서의 최선의 수단이다. A(동두천외국어고·19)
나에게 노동조합이란 나의 고민이 나만의 고민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는 공동체다. 노서진(18)
나에게 노동조합이란 인간의 연대로써 인간적인 삶을 자본으로부터 지켜내는 방패이다. 변현준(동탄국제고·19)
나에게 노동조합이란 집이다. 강신정(고양국제고·19)
나에게 노동조합이란 날 지켜주고 내가 지켜야 하는 곳이다. 서지현(고양국제고·19)
나에게 노동조합이란 방패다. 김정인(고양국제고·19)
나에게 노동조합이란 일상이다. 권혁진(강릉문성고·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