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란영의 콕콕] 우리는 학교에서 '지혜'를 배운다
[김란영의 콕콕] 우리는 학교에서 '지혜'를 배운다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9.10.06 13:45
  • 수정 2019.10.0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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콕콕’은 야무지게 자꾸 찌르는 모양을 뜻하는 의태어입니다.
상식과 관행들에 물음표를 던져 콕콕 찔러보려 합니다.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권종현 교사는 지난달 23일 우신중학교에서 해임됐다. 우신중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우천학원이 지난 2009년 우신고등학교를 자사고로 전환 할 때 자사고 정책을 비판한 것이 화근이 됐다. 그 후로도 권 교사와 우천학원의 갈등은 지속됐다. 권 교사의 공익제보로 우천학원은 2011년과 2012년 특별감사를 거쳐 50여 건의 부조리가 적발됐다. 그러다 지난해 권 교사를 둘러싼 시민단체와 일부 학부모들의 1인 집회가 갈등의 불을 지폈다. 학교장은 권 교사에게 시민단체의 시위를 멈추게 할 것을 요구했다. 권 교사는 거절했고, 학교는 교장의 명령을 불복한 것으로 판단했다.

“후회가 되냐”는 물음에 권 교사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이 할 것 같다. 그래서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기자는 그가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권 교사의 말처럼 그는 부당한 것을 마주했을 때 “저항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다. 결국 권 교사는 학교 밖으로 내팽개쳐졌다. 어른들이 세상이야 그렇다고 치자. 아이들은 이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권력과 불의에 맞서는 권 교사의 삶의 방식이 결코 ‘이득’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배운 것은 아닐까.

권 교사의 이야기를 들으니 기자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떠올랐다. 우신중학교처럼 사립 고등학교였다. 역시 ‘이사장 라인’이 있었고, 뭣 모르던 시절에도 ‘선’은 구분할 수 있었다. 구분법은 간단했다. 이사장의 성씨가 고 씨였기 때문에 고 씨인 선생님을 찾으면 됐다. 고 씨 선생님 대부분이 이사장의 가깝거나 먼 친인척이었다. 그래서 유독 고 씨 선생님이 많았다. 우리는 고 씨 선생님이라면 조금은 게으름을 피우고, 때때로 사고를 쳐도 학교가 덮고 간다는 것을 배웠다. 권 교사가 지적한 것처럼 사립학교의 모든 권한은 이사장에게 집중돼있다. 선생님들의 눈과 귀도 이사장에 집중돼있다. 학생의 눈 밖에 나는 일은 사실 대수롭지 않다.

기자의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은 누가 보아도 이사장 라인이 아니었다. 일단 성 씨가 고 씨가 아니었고, 비주류 편에 서서 쓴 소리 내느라 고 씨 선생님들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선생님들이 학생들과는 가깝다. 선생님이 전교조 선생님이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선생님이 먼저 '커밍아웃'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전교조가 무엇인지도 몰랐기 때문에 물어볼 일이 없었다. 선생님이 학교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알 수 있었지만, 그 이유는 알지 못했다. 물어보지도 않았다. 알다시피, 학교는 학생들에게 전교조나 노동조합, 노동법에 대해 교육하지 않는다. '학교의 일'도 '학생의 일'이 아니다.  

권 교사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전교조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해임이 돼도, 왜 해임이 됐는지, 해임이 정당했는지 따져 물을 수 없다. 학생들은 막연히 추측할 뿐이다. 막연히 기다릴 뿐이다. 대신 '본분'인 학업의 역할만이 강조된다. 학교는 '작은 사회'이지만, 이 사회에서 학생은 시민이 아니다. 학생으로서의 책임은 주어지지만, 학생으로서의 권리는 협소하게 규정된다.  

그래서 학교 문제에 대해서 다른 주체와 함께 토론할 기회가 권리로 주어지지 않는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쉬쉬'할 뿐이다. 선생님들도 학생이 아닌 이사장 편에 선다. 학생들은 한 번 더 무력해진다. 학교도 달라지지 않는다. 때문에 아이들은 학교에서 이사장 라인, 즉 강자가 살아남는 사회의 생리를 배운다. 문제가 있어도 말하지 않는 편이 더욱 지혜롭다는 것을 배운다. 학교가 제대로 가르쳐줘서 고마운 일일까? “다시 교단에 서서 아이들에게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던 권 교사의 말이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