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혜의 온기] 골든아워
[최은혜의 온기] 골든아워
  • 최은혜 기자
  • 승인 2019.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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溫記 따뜻한 글. 언제나 따뜻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참여와혁신 최은혜기자 ehchoi@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최은혜기자 ehchoi@laborplus.co.kr

기자가 가장 최근 읽은 책은 이국종 아주대학교병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 센터장이 쓴 에세이, 「골든아워」다. 골든아워는 외상을 입었을 때, 내·외과 치료를 받아 죽음에 이르는 것을 방지할 가능성이 가장 큰 시간대를 의미한다. 심각한 사고를 당한 직후에 조금이라도 치료를 받는다면 환자들의 생존 가능성이 늘어날 수 있는 시간인 골든아워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고 발생 현장에 최초 5분 이내에 도착해야 한다.

이국종 센터장의 에세이를 읽고 있으면 많은 생각이 교차하는데,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역시나 노동에 관한 생각이다. 「골든아워」의 첫 장은 “봄이 싫었다. 추위가 누그러지면 노동 현장에는 활기가 돌고 활기는 사고를 불러, 떨어지고 부딪혀 찢어지고 으깨진 몸들이 병원으로 실려 왔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첫 줄부터 ‘노동’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다니. 노동계 인사가 아닌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노동’이라는 단어는 ‘근로’나 ‘작업’, ‘일’ 등의 단어로 대체되는 편인데 이국종 센터장이 ‘노동’이라는 단어를 직접 본인의 에세이에 적은 것이 놀라웠다.

이국종 센터장은 ‘노동’이라는 단어를 본인의 책에서 많이 사용했다. 처음 ‘노동’이라는 단어가 나온 페이지에서 10페이지를 넘기니 또 다시 ‘노동’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노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부분 중 가장 와 닿은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노조 사무실 벽에 머리띠를 동여 맨 사내 위로 ‘절규하는 노동자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십시오’라고 쓰인 인쇄물이 붙었다. 나는 그것을 얻어다 내 연구실 문 위 유리창에 붙여두었다. 이상하게도 편안했다. 문구가 마음에 들었고 디자인 배열도 좋았으며 유리창 가림막으로 쓰기에 좋았다. 나도 현장 노동자와 다름없었다. 노동자로서 노동하다 다쳐 실려 온 다른 노동자들의 몸뚱이를 칼로 가르고 실로 꿰매 붙이는 노동의 대가로 먹고살았다. 생계유지를 위해 일상을 버티고 있다는 것은 어느 노동자나 다르지 않은 현실일 것이다.

-이국종, 「골든아워」 p.100

「골든아워」에서 ‘노동’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눈에 띈 이유는 책을 읽기 며칠 전, 기사 작성을 위해 들어갔던 의안정보시스템 홈페이지 때문이다. 의안정보시스템에서 기사 작성에 필요한 법안을 검색하고 있던 기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오른쪽에 위치한 인기검색어였다. 인기검색어에는 “근로를 노동으로”라는 검색어가 올라와 있었다.

지난 2017년 8월,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동’은 동등한 위치에서의 능동적인 행위를 말하지만, ‘근로’는 부지런하다는 뜻을 강조함으로써 수동적이고 사용자에게 종속되는 개념”이라며 ‘근로’라는 용어를 ‘노동’으로 일원화하기 위해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관련법 12개의 수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발의 2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 법들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노동에도 골든아워가 필요하다. 단지 명칭을 ‘근로’에서 ‘노동’으로 바꾸기 위한 법안도 2년 넘게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데, 노동 현장을 바꾸기 위한 법안은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곤 한다. 예를 하나 들자면, 지난 7월 16일부터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19대 국회의 회기이던 지난 2013년 발의됐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된 적이 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지난 2016년 10월에 다시 발의돼 2018년 12월 27일,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으로 수정돼 의결됐다.

시시각각 변하고 있고 변하는 노동환경에서 노동자를 지킬 수 있는 관련법은 뒤늦게 제정되곤 한다. 이마저도 사각지대가 존재해 노동자들은 노동현장에서 고통을 받곤 한다. 외상을 입은 우리의 노동이 사각지대 없이 치료받기 위해 필요한 골든아워는 어느 정도일까? 우리 사회가 노동의 골든아워를 지킬 수 있을 때는 언제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