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준 일진다이아몬드 지회장, “지금부터가 다시 시작이죠”
홍재준 일진다이아몬드 지회장, “지금부터가 다시 시작이죠”
  • 손광모 기자
  • 승인 2019.10.09 17:27
  • 수정 2019.10.10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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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 파업 돌입 이후 100일 훌쩍 지나 ... 최저임금 인상 대비 ‘상여금 녹이기’ 꼼수가 발단
2월부터 시작한 교섭 ... 아직도 125개 중 69개 조항은 '쟁점사항'

[인터뷰] 홍재준 일진다이아몬드 지회장

"이 돈으로 살아봐 니가 한번 살아봐/ 어떻게든 산다고 함부로 말하지마/ 사람답게 사는 건 모두 똑같은 거야/ 그 누구의 인생도 최저인생은 없어"

날이 유난히도 흐리던 10월 2일 낮 10시 일진다이아몬드 본사 앞에서는 민중가요 ‘이 돈으로 살아봐’가 울려 펴졌다. 홍재준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지회장과 조합원들은 일진다이아몬드 전면 파업 100일 문화제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개천절은 일진다이아몬드지회가 전면파업에 돌입한지 100일이 되는 날이었다.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일진다이아몬드지회(이하 지회)는 지난 6월 26일 파업에 돌입해 오늘(9일)로 파업 107일 째를 맞이하고 있다. 파업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이때, 홍재준 지회장을 만나 못다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0월 2일 일진다이아몬드 본사 앞에서 진행한 중식 선전전 현장에서 홍재준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지회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최저시급으로 살기 싫다는 거죠”

일진다이아몬드는 1988년 설립됐다. 금속을 정밀하게 다듬는 용도로 사용되는 공업 다이아몬드를 생산한다. 부채규모도 적고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노동조건은 탄탄하지 않았다. 홍재준 지회장이 2018년 12월 29일 노동조합을 설립하게 된 계기는 임금문제 때문이었다. 노조 설립 열흘 만에 일진다이아몬드 음성공장 총 280여 명의 노동자 중 270명이 가입할 정도로 열악한 임금에 대한 공감도 높았다.

“임금이 계속 동결되면서 최저시급이랑 제 시급이 비슷해졌죠. 제가 15년 차인데 최저시급이랑 500원 밖에 차이가 안 나요. 10년차는 똑같고요. 그런 걸 보면서 가만히 있다가는 모두가 최저시급으로 똑같아 지겠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어요.”

10년차 노동자가 최저임금에 준하는 시급을 받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지회는 2015년 회사 주도로 시작된 ‘상여금의 기본급화’가 문제의 발단이라고 말한다. 회사는 2015년 600%의 상여금 중 200%를 능률향상수당으로 변경했다. 이어서 2016년에는 능률향상수당을 기본급으로 산입했다. 또한 2018년 남은 상여금 400% 중 200%를 기본급으로 산입했다. 이러한 회사의 행동은 2015년부터 급격히 오르던 최저임금 인상을 무마시키기 위한 방안이라고 홍 지회장은 지적한다.

“상여금을 녹여서 기본급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꼼수를 부렸죠. 실제로 받는 임금은 같은데 상여금을 기본급화해서 최저임금 위반을 피했어요. 회사는 당시 상여금을 산입하면서 ‘상여금을 기본급화하면 잔업수당이 올라가서 총 급여가 올라갈 거다’라고 유혹을 했었죠. 그런데 주52시간이 시행되고 잔업 특근 시간이 줄면서 급여가 확 떨어졌죠. 어떻게 보면 급여가 오른 게 아니라 그만큼 잔업을 시킨 건데 그때는 잘 몰랐어요. 어느새 급여가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거죠.”

 10월 2일 낮 10시 경, 같은 날 저녁에 열린 '전면 파업 100일 투쟁 승리 문화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홍 지회장에 따르면 주52시간제가 시행되면서 연 기준으로 많게는 500만 원에서 적게는 200만 원까지 임금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회사는 2018년 6월, 이러한 주52시간제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일정정도의 임금을 보전해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9월이 되자 회사는 일방적으로 말을 바꿨다. 홍 지회장은 이때를 기점으로 회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고, 노동조합을 설립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고 말했다.

“회사가 맘만 먹으면 언제든 상여금을 녹일 수 있다는 불만이 있었죠. 그리고 주 52시간제 하면서 퇴직금 중간정산을 했었거든요. 회사가 총 급여가 떨어져서 일정부분 보전해주겠다고 했어요. 90명을 대상으로 서류도 떼고 상담도 했는데 석달 후에 일방적으로 딱 못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설명회를 연 것도 아니고 이메일이나 중간관리자를 통해서 ‘이거 못 주겠다고 현장직한테 말해’ 이런 식으로 그냥 해버린 거죠.”

1년에 ‘160원’ 오르는 임금체계, 안전 보장되지 않은 작업장

일진다이아몬드 생산직 노동자의 임금체계는 정확히 고지된 바가 없다. 조합원도 잘 모른다. 사무직군은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고 매년 연봉협상에 따라 임금이 인상 돼왔다. 최근에는 복리후생비로 50만 원이 지급됐다. 하지만 현장 생산직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일 뿐이다. 홍재준 지회장은 생산직 노동자를 하대하는 조직문화가 임금체계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고 말한다.

“회사는 ‘너희들이 육체노동 하는 사람처럼 고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많은 임금을 요구하느냐’ 이런 논리를 펴거든요. 호봉 체계가 있는 것 같은데 아무도 몰라요. 80원. 1년에 4월과 10월 두 번, 시급 10원씩 일급 80원이 올라요. 시급이 8,350원이면 4월 달에 8,360원. 이렇게 총 160원이 오르기는 하는데. 어떻게 해서 이런 시급이 나왔는지에 대해서 들은 게 없죠.”

홍 지회장은 노조설립 전까지 작업장 내 안전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노조 설립 전에도 작업장 내 유해물질로 인한 악취와 미세먼지 문제를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회사는 공장이 멈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뤘다는 것이다.

“보통 미세먼지가 건강에 나쁘다고 하잖아요? 저희는 현장 내에서 미세분말을 사용하고 있어요. 또 화학물질 때문에 작업장 내 냄새가 엄청나게 심하거든요. 냄새와 먼지를 빼내는 장치를 설치 해달라고 회사에 요청하면 항상 ‘돈이 없다’ ‘사업비가 부족하다’고 말했어요. 설치 계획은 세워놓고 비용문제로 내년에 미루는 식으로요. 그러는 동안에 공장에서 생산은 계속 하고요.”

파업 이후 지회는 충주노동청에 작업장 내 안전 문제를 고발했고 7월 24일 일진다이아몬드 충북음성 공장에 부분작업중지 명령이 떨어졌다. 홍 지회장은 “노조설립 전부터 지속적으로 요구해도 안 되던 배기장치 설치가 노동청 명령 3개월 만에 설치가 다 됐다”며 다소 허탈한 심경을 밝혔다.

7월 3일 일진다이아몬드 본사 앞에서 열린 상경 집회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노조 힘 빼기’로 일관하는 일진다이아몬드

그러나 지회설립의 발단이 된 상여금의 기본급화나 임금 문제는 논의조차 들어가지 못했다. 여전히 일진다이아몬드 노사는 단체협약에서 막혀있다. 홍재준 지회장은 “2차 조정 때 사용자 측 조정위원이 ‘사용자 측에서 이렇게 하면 명백히 교섭 해태다. 임금성에 대해 논의하려면 40차까지 가야 할 것 같다’고 답답함을 토로 했었다”라고 말했다.

일진다이아몬드 노사 교섭은 지지부진했다. 노사는 지난 2월 7일 상견례와 함께 1차 교섭에 들어가고 매주 화요일 교섭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측은 노조의 요구안을 충분히 검토하기 위해 한 달 가량의 시간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3월 말까지도 부분적인 검토의견조차 제출하지 않았다. 지회는 결국 4월 5일 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지만 결렬됐다.

지회의 요구는 크게 △노조인정 △단체협약체결 △안전일터확보 △기본급에 산입된 상여급 회복으로 나뉜다. 현재 상황은 단체협약 125개 조항 중 의견접근 28개, 문구 수정 시 의견접근 가능 28개이며 나머지 69개 항목은 쟁점사항으로 노사의견이 좁혀졌다. 8월 15일 이후 노사 실무진의 집중교섭으로 이뤄낸 결과다. 하지만 9월로 접어들자 교섭은 다시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홍 지회장은 회사가 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봤다. 일진그룹 내에서 일진다이아몬드가 ‘시드머니’를 창출하는 중요 계열사인 점과 일진다이아몬드의 교섭 결과가 그룹 내 다른 계열사에게 미칠 영향을 경계한다는 것이다.

“일진그룹은 주로 일진다이아몬드에서 번 돈으로 다른 계열사를 키웠어요. 처음 입사했을 때 일진디스플레이가 그렇고 지금은 일진복합소재에 투자를 하고 있죠. 회사는 노조가 있으면 일진다이아몬드의 자금을 출자하거나 빼낼 때 어려움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아요. 또 일진머터리얼즈라는 계열사가 전북에 있어요. 거기는 상여금 600%가 아직 남아있죠. 일진다이아몬드의 상여금도 원 상태가 되면 전체 계열사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교섭위원들도 일진그룹 전체가 이번 교섭을 크게 관심을 두는 것 같다고 말하고요.”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죠”

홍재준 지회장은 언제쯤 교섭이 마무리 될 수 있을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멋쩍은 웃음과 함께 “저도 그걸 알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홍 지회장은 추석이 지나면서 조합원들의 의지가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저희는 지금부터가 다시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추석 전까지만 해도 빨리 타결을 보고 싶었어요. 추석에 집에서 쉬고, 다시 돌아가 일도 하고요. 그런데 추석 이후에는 오히려 조합원 분들이 ‘안 되겠다. 이제는 확실히 이겨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시더라고요. 신분보장기금이라고 금속노조에서 나오는 게 있어요. 이번 달부터 받았는데, 때문에 오히려 투쟁력은 좋아졌죠. 저희도 마음은 굴뚝같아요. 현재 교섭은 공장장이 대표이사의 위임을 받아서 하고 있거든요. 확실하게 책임질 수 있는 사람들이 나와서 해결을 보자 하는 게 저희 입장이죠.”

또한, 홍재준 지회장은 장기파업에 들어가면서 생계를 이유로 이직하는 조합원이 발생해 조합원 수가 약간 줄었지만, 신입사원들이 곧바로 노동조합에 가입하면서 큰 변동은 없다고 말했다. 현재 지회는 230여 명의 조합원을 유지하고 있다.

“파업 석달이 지나도 신입사원들이 노조에 가입하고 있어요. 회사가 인원을 뽑고 3개월 후 정직원이 되면 노조에 가입하는 거죠. 신입사원은 무조건 최저시급부터 시작해요. 노동조합이 없고 그대로 지낸다고 하면 신입직원은 계속 최저시급으로 밖에 살 수 없죠. 지금 현재 10년차 근속이 최저 시급이니까. 그렇게 살기 싫다는 거죠.”

8월 28일 '재벌의 탐욕을 멈춰라!' 금속노조 상경집회 현장에 참가한 홍재준 일진다이아몬드 지회장.
8월 28일 '재벌의 탐욕을 멈춰라!' 금속노조 상경집회 현장에 참가한 홍재준 일진다이아몬드 지회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마지막으로 홍 지회장은 조합원들 모두가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회사에 대한 애착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지난 몇 년간 상여금을 녹여가며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에게 부당한 대우를 했던 것이 회사의 가장 큰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잘못이 고쳐지기까지 일진다이아몬드지회의 파업은 계속 될 것이라고 홍 지회장은 말한다.

“여기 모든 분들이 자기의 일에 대해서 애착심이 있어요.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나만의 스킬, 나만의 방법 이런 거요. 여태껏 회사가 어렵다고 하니까 믿었죠. 정말 토시나 앞치마 빨아서 재활용해서 쓰면서 요구하는 대로 했거든요. 회사가 잘 돼야 나도 잘 된다는 마음은 있어요. 그런데 회사는 그런 마음을 이용해서 부당하게 대우하고 당연한 듯 하대하고 그것도 모자라 임금도 깎고 노동조건을 계속 열악하게 만들었어요. 문제가 있는 거죠. 저는 이게 회사의 가장 큰 잘못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