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우의 부감쇼트] 쿨-하지 못해 미안해?
[임동우의 부감쇼트] 쿨-하지 못해 미안해?
  • 임동우 기자
  • 승인 201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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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말로 버즈 아이 뷰 쇼트(bird’s eye view shot).
보통에서 벗어난 시각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싶습니다.
임동우 기자dwlim@laborplus.co.kr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인간은 가장 피폐한 순간에 겨우 딛는 한 걸음으로 성장한다. 빛과 어둠이 공존할 수밖에 없고, 삶과 죽음이 운명의 실타래처럼 이어져 있듯이, 황금기를 위해 암흑기를 거쳐야 하는 건 어쩌면 반드시 필요한 관문과도 같다.

<1984>와 <동물농장>으로 유명한 조지 오웰에게도 암흑기가 있었을까? 정답은 ‘YES’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를 읽다보면, ‘코끼리를 쏘다’라는 작은 제목의 이야기가 나온다. 빅브라더를 경계하라는 그의 소설과는 다르게, 그가 대영제국을 위한 식민지 경찰 간부이었다면 믿겨지는가. 풍문에 의하면 오웰은 식민지에서 느낀 죄책감을 속죄하고자 거리 인생을 자청했다고 한다.

‘코끼리를 쏘다’의 이야기는 이렇다. 발정이 난 코끼리가 난동을 부려 당시 식민지의 원주민이었던 버마인 몇 명을 죽인다. 코끼리는 종횡무진하고, 원주민들은 경찰 간부였던 오웰을 찾아와 상황을 정리해주길 바란다. 오웰은 케케묵은 소총을 챙기고 말에 올라탔는데, 사실 코끼리를 쏠 생각은 없었고 겁이나 주고자 하는 마음에 챙겼더란다. 코끼리의 난동이 반복되자, 케케묵은 소총은 어느 순간 코끼리용 소총으로 바뀌었고, 소총이 커다란 총으로 바뀌자 오웰을 따라오는 원주민들의 행렬이 점차 늘어났다. 그리고 마침내 오웰이 코끼리를 마주했을 때, 코끼리는 그저 자연의 섭리대로 얌전해져 있었고, 오웰의 뒤에는 막대한 인파가 몰려 있었다고 한다. 오웰은 당시를 이렇게 쓴다.

“그때 나는 내가 결국엔 코끼리를 쏴야 한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사람들이 내가 그러리라 기대하고 있었으니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나는 2,000명의 의지가 나를 거역할 수 없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선택하여 행동한 것일까, 행동하여 선택한 것일까. 오웰은 이 경험에 대해 ‘제국주의의 본질을 이전보다 더 잘 간파할 수 있게 해준 일이었다’고 표현한다. 제국주의란 자국의 지배권을 다른 국가와 민족으로 확장시켜나가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 달리 표현한다면 ‘자신의 권력으로 타인의 울타리 너머의 것들까지 지배하려는 욕심’으로 고쳐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행동 이후의 선택’과 같이 행동의 명분을 찾기 위한 자신의 정당화로 이어진다.

존재의 본질과 역할을 찾기 위해 필요한 건, 삼문(의문·반문·자문)이다. 어떤 집단이든 자신에 대한 의문, 자신의 선택에 대한 반문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자문 없이는 괴물이 되고 만다. 괴물은 타인의 울타리를 넘으려는 욕심으로 타인을 파괴하고 종국에는 자멸의 길을 걷는다.

기사와 수사, 두 단어가 닮아있는 것처럼 두 집단은 반성을 모르고 코끼리처럼 종횡무진 해왔다. 시원하게 잘못했다고 말하는 게 그리도 겁나는가.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게 쿨-한 거 아닌가. 오웰을 오웰다운 삶으로 인도한 것은 앞서 말했던 ‘버마 시절’이었다. 황금기를 맞이하고 싶다면, 폐허 같은 자신을 딛고 일어날 수 있는 반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어느덧 역사 속에서 절망이 되어버린 두 집단이 반성하는 걸 언제쯤이면 볼 수 있으려나.
김수영 시인의 시 구절이 유난히 입가에 맴돈다.

‘구원은 예기치 않는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