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모의 노동일기] 예비군 훈련과 복지 사회의 가능성
[손광모의 노동일기] 예비군 훈련과 복지 사회의 가능성
  • 손광모 기자
  • 승인 2019.10.15 17:56
  • 수정 2019.10.16 0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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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동을 글로 적습니다. 노동이 글이 되는 순간 노동자의 삶은 충만해진다고 믿습니다. 당신의 노동도 글로 담고 싶습니다. 우리 함께, 살고 싶습니다.

어떠한 사람도 수동적으로 만드는 장소가 있다. 여기에서는 아무리 활동적인 사람도 꼼짝없이 앉아 있고, 명석한 사람도 입을 다물고 지시대로만 행동한다. 바로 예비군 훈련장이다.

예비군 훈련장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계층이나 살아온 경험이 다르다. 하지만 훈련장에만 오면 신기하게도 하나같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예비군 훈련이 병역의 의무라고는 하나 도무지 쓸모 있거나 유용하다고 생각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테다. 훈련을 받아 본 모든 사람이 여기에 공감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지난주 월요일에 예비군 훈련장을 찾았을 때도 어김없이 모두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러던 중 훈련을 지도하는 예비역 간부의 말이 잠을 확 깨웠다.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자면 이렇다.

“여러분들이 ‘훈련을 왜 하나?’ 생각하는 것도 이해합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총가지고 전쟁을 합니까? 드론이나 무인기로 하지. 그래도 이건 최소한 기본이에요. 여러분은 교육이 듣기 싫을 테지만 저는 교육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합니다. 여러분에게 교육하라고 월급도 받고 있어요. 그러니 조금만 집중해주세요.”

이 말은 내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예비군 훈련을 누구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기 때문이다. 명목상 나라를 지키기 위한 훈련이라고는 하지만 그저 허울일 뿐이다. 예비군의 전술적 가치는 그다지 높지 않다. 국가 안보가 걱정된다면 훈련비를 아껴 최신형 무기를 구입하거나 파일럿 훈련비에 보태는 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지도하는 사람도 그저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맹목적인 행위가 예비군 훈련의 본질이다.

이러한 예비군 훈련은 ‘비효율적’이다. 비용보다 편익이 훨씬 적다. 심각한 사회적 낭비이며 단적으로 ‘국고 낭비’다. 하지만 이러한 시선은 무엇보다 자본주의적 논리에 기초해있다. 예비군 훈련의 ‘가치’라고 말할 것이 있다면, 자본주의의 논리로는 파악할 수 없는 일종의 ‘공동체 의식’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물론 예비군 훈련을 통해 형성하는 공동체 의식의 내용이 적절하냐는 문제는 있다. 다만 예비군 훈련 제도 또한 자본주의 논리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을 묶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일종의 ‘복지’가 예비군 훈련 제도에서 작동한다.

10년 이상 복무한 예비역 간부들은 원치 않은 퇴역을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승진 인원이 한정돼있기 때문이다. 모아둔 군인연금은 충분치 않고, 10년 이상 전투기술만 궁리해온 사람이 다른 직업을 생각하기도 어렵다. 예비군 훈련장은 이들에게 안정적인 사회적응을 돕는 장이 된다.

요컨대 예비군 훈련을 국고낭비가 아닌 오갈 데 없는 예비역 간부를 위한 복지차원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비단 예비역 간부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은 모든 이에게 비용을 따지지 않는 ‘예비군 훈련’과 같은 제도는 필요하다. 더 절실하다.

최소한 공공기관에서 법으로 규정한 장애인 의무 고용 비율을 벌금을 내가며 어겨서는 안 된다. ‘생산성’이라는 자본주의적인 단어와는 조응하지 않는 장애인이나 거리의 부랑자, 노인들을 위한 제도를 우리는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다. 비록 그 제도가 ‘예비군 훈련’과 같이 경제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제도일지라도 말이다. 비효율의 끝판왕, 예비군도 버젓이 운용되는 마당에 무엇이 대수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