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의 노크노크] 2019년의 김용균들
[이동희의 노크노크] 2019년의 김용균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9.10.31 11:38
  • 수정 2019.10.31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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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의 노크노크] 기자의 일은 두드리는 일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일터에서 죽음이 반복되는 이유는 [           ]다.”

지난 29일 여의도 국회 제5간담회실에서 열린 ‘중대재해 사업장 노동자 국회 증언대회’에 참석한 다섯 명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일터에서 몸소 느낀 이유를 빈칸에 채워 넣었다.

- 돈이다.
- 공공기관을 시장 논리로 민영화하고 이를 통해 민간업체가 수행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착복과 안전을 나 몰라라 하였기 때문이다.
- 안전보건 활동에 노동자의 참여가 보장이 안 되기 때문이다.
- 실천보단 보여주기식 말뿐인 안전 개선이기 때문이다.
- 이주 노동자가 자신이 사용하는 기계와 업무에 대해 사전 설명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지역, 서로 다른 일터에서 서로 다른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이들은 비정규직·사내하청 노동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날 증언대회에 참석한 ‘2019년의 김용균들’은 “고(故) 김용균 노동자 사망 이후에도 현장은 바뀌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우조선해양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박광수 씨는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며 자신은 전문가가 아닌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는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할 말을 적어 봤다며 손글씨로 가득한 종이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제가 조선소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가 2008년입니다. 하청업체 소속이지만 굴지의 대기업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입사했습니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정말 위험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두 달 사이 저보다 어린 친구 두 명의 손가락 절단 사고를 보면서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그런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조선소에서는 으레 당연히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반복했습니다.”

이날 다섯 노동자의 증언에는 각자의 일터에서 죽음이 반복되는 이유가 담겨 있었다. 각기 다른 목소리에서 나온 이유는 하나였다. 처음 들어보는 말도 아니었다. 늘 그렇듯 ‘생명보다 이익을 우선시했기 때문’이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산재 예방 투자보다 처벌이 훨씬 싼 구조’ 때문이기도 했다. 이날 증언대회에 참석한 노동자와 전문가들은 “사업주 처벌 강화로 죽음을 막아야 한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한 목소리를 냈다. 다섯 노동자의 증언이 증언으로만 끝나지 않도록. 매년 또 다른 김용균들이 나오지 않도록.

앞서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호소하고 또 호소했다. 내 아들은 죽었지만, 당신들 아들들은 죽게 놔두지 않겠다고. 김미숙 씨의 그때 그 울림은 어디로 간 것일까.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 박광수 씨가 미처 종이 안에 담지 못한 아픔과 죽음은 또 무엇이 있을까.

“2017년 5월 1일 노동자의 날, 남들 다 쉬는 날에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출근해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크레인 사고를 당한 삼성중공업 하청 노동자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집니다. 고통을 겪고 계시는 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큰 사고가 있었음에도 우리의 현장은 그때와 다르지 않습니다. 사고가 일어나도 원청의 무책임 속에 지금도 산업재해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안전만 생각하고 일할 수 있는 날이 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