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중형조선산업, 구조조정 아닌 투자 필요할 때"
"위기의 중형조선산업, 구조조정 아닌 투자 필요할 때"
  • 손광모 기자
  • 승인 2019.11.01 09:39
  • 수정 2019.11.01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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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 노동자 보호하지 않는 인력감축은 경기 회복기 '부메랑' 우려
전 세계 조선 물동량 중 30% 처리하는 수준으로 유지 필요 … “구조조정만이 답 아냐”
10월 31일 오후 2시 국회에서 열린 '중형조선 회생 대책 마련을 위한 국회토론회'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10월 31일 오후 2시 국회에서 열린 '중형조선 회생 대책 마련을 위한 국회토론회'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키코(KIKO) 사태 이후 쓰러졌던 중형조선소들이 최근 세계 조선업 경기 회복으로 재기의 기회를 맞았다. 하지만 중형조선산업에 대한 정부의 장기적인 비전이 없어 적기를 놓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위원장 김호규, 이하 금속노조)과 조선업종노조연대는 10월 31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에서 ‘중형조선 회생 대책 마련을 위한 국회토론회’를 진행했다.

구조조정 아닌 육성 필요한 조선산업

박종식 창원대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은 키코 사태 이후 쇠퇴하는 중소조선소를 방치하는 일은 국가적 손실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중형조선산업을 사양사업으로 보고 설비와 인력을 감축할 것이 아니라 세계 조선산업 경기 순환을 고려하여 평균 발주물량을 처리할 수 있을 수준으로 중형조선산업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전임연구원은 “전 세계 평균 선박 발주량과 한국 조선산업이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하면 한국의 연평균 적정 수주 규모가 도출될 수 있고 이를 기준으로 한국 조선산업의 역량을 유지 및 확보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전 세계 연평균 선박 발주물량에서 1/3 정도 수주하는 것을 목표로 하면 한국 조선산업은 연 평균 1,200만CGT 수주 및 생산을 전제로 한국 전체 조선 산업의 설비 및 인력 운영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4년 해양플랜트 수주 악화를 통해 드러난 조선 산업 과잉 투자는 2016~2017년 진행된 설비축소 및 인력 감축을 통해 상당부분 해결됐다. 조선업 전체 고용 규모는 2015년 직고용 66,151명, 사내하청 130,516명으로 정점을 찍고 2017년 직고용 48,436명, 사내하청 61,465명으로 1/3 가량 감축됐다.

박 전임연구원은 “현재 한국 조선산업의 연평균 적정 수주량(목표)은 현실적으로 연간 1,200만 CGT 정도로 추정한다. 다만 직영 고용규모가 48,000명대로 줄어 연간 1,200만CGT 정도의 생산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면서,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현재 한국의 대형 3사와 중형 5개사는 정상가동 돼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조선업 경기 회복에 따른 발주량 증가로 오히려 과한 구조조정이 된 격이라는 박 전임연구원의 지적이다. 특히 숙련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 인력 감축이 경기 회복기에 건조능력 상실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박 전임연구원은 “조선산업의 특성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사양 산업론’은 전혀 생산적이지 못하다”면서, “현 상황에서 향후 추가적인 설비축소 그리고 인력축소는 한국 조선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이웃 중국과 일본 조선산업에 도움을 주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정부, 중형조선산업 회생시킬 마음 있나?

하지만 정부의 중형조선산업 회생 의지는 엿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실상 ‘방기’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지난해 4월부터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성동조선은 마땅한 인수자를 찾지 못해 ‘기업 청산’까지 점쳐지고 있다.

성동조선은 지난 2008년 키코(KIKO) 사태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후 2010년부터 자율협약을 통해 약 2조 원의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등 회생을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2018년 10월부터 매각절차에 들어갔지만 3차례 모두 적당한 인수자를 찾지 못했다. 오는 11월 13일 예정된 4차 매각까지 실패한다면 기업 청산 가능성이 농후하다.

강기성 금속노조 성동조선지회 지회장은 “수출입은행이 성동조선의 청산만 바라는 것 아니냐”면서, 국책은행이 인수 시 RG보증을 보장하거나 금융지원을 약속하는 등 매각 성사를 위한 노력은커녕 분할 매각을 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더욱이 성동조선 매각 실패 시 정부의 방안은 아직도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다.

또한, STX조선은 키코 사태에서 회생절차를 통해 살아남았지만 ‘현금 유동성’에 묶여 최근 조선업 경기 호전을 제대로 뒤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국책은행의 지원이 긴요한 순간에는 정부가 번번이 중소조선소를 외면한다는 지적이다.

윤종우 금속노조 STX조선지회 조사통계부장은 “현재 STX조선은 추가적인 공적 자금 투입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다. 최우선 과제는 활발한 영업을 통한 안정적인 물량 확보다. 그런데 현금 유동성 확보가 어려워 수주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국책은행이 책임감 있게 RG발급과 제작금융 지원을 보증하여 조선소가 다시 정상화의 길로 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은 “노사정 대표자 시절에 오히려 자동차보다도 어렵던 조선업종협의회를 경사노위, 지금의 노사정협의체에서 책임 있게 다루자고 했다. 하지만 다른 위원회는 검토가 다 되도 조선산업에는 정부가 아예 의지가 없다”며, “그 결과가 성동조선이나 STX나 현대중공업이나 대우조선이다. 아직도 거리에서 빨간 머리띠 메고 투쟁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정부 스스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