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 종합병원, 경남 511호 병원선 사람들
바다 위 종합병원, 경남 511호 병원선 사람들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9.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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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개 도서 47개 마을 한 달에 한 번 꼬박꼬박
방문진료섬 주민들 “반갑고, 고맙다”

[리포트] 바다 위 종합병원, 병원선 사람들

작은 섬에 사는 사람은 아파도 병원을 쉽게 찾지 못한다. 병원은커녕 약국도 없는 지역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현재 경남·인천·충남에 각 1척, 전남에는 2척 등 전국에 총 5척의 ‘바다 위 종합병원’인 병원선이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7일 통영항에서 출항을 앞둔 ‘경남 511호’에 올랐다. 경남 511호는 1973년 첫 출항한 이래 4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섬사람들의 건강을 돌봐왔다.

경남 511호 병원선
경남 511호 병원선

“고마운 거야 이루 말할 수 없다”

162톤 규모의 경남 511호엔 의료진과 선박운영팀 등 15명이 근무한다. 의료진은 필수 3과(내과·치과·한의과) 공중보건의 4명과 간호사 2명, 간호조무사 1명, 배의 운항을 책임지는 선박운영팀은 선장과 기관장, 항해사, 기관사, 통신사로 구성된다. 여기에 병원선 순회 진료와 승무원들의 생활과 안전을 책임지는 총괄 담당이 있다. 경남 511호는 한 달을 주기로 39개 도서의 47개 마을 주민들을 만난다.

2019년 10월 7일, 통영항을 출발한 병원선은 대도로 향했다. 오늘은 하동군 금남면 대도, 사천시 동서동 마도·저도·신도, 이렇게 4개 지역을 진료한다. 대도의 주민 수는 144명이다. 진료대상 섬 중에서 세 번째로 많다. 간호사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이날은 병원선 의료진들이 마을을 직접 방문해서 진료하는 ‘마을회관 진료’의 날이다. 간호사들은 배에서 내리기 전에 주민들에게 필요한 약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송현정 간호사(38)는 “주민들이 무슨 약을 찾으실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약을 조금씩 다 준비해서 간다. 약이 부족하면 다시 배로 돌아와서 챙기는 번거로움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함이다”라고 설명했다.

병원선 진료는 여건에 따라 선내와 마을회관, 방문 진료 등으로 나뉜다. 배의 접안이 어렵거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많은 도서지역은 마을회관에서 진료를 하지만 그 외는 섬 주민이 직접 병원선을 내원해 진료를 받는다. 진료를 위한 내과 · 치과 · 한의과 진료실과 약제실, 진료 대기실로 이뤄져 있다. 주민들은 진료 대기실에서 접수 후, 진료를 기다리며 혈압을 체크하고 테이블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물살을 가르고 3시간여를 달려 대도 인근에 도착했다. 섬에 직접 배를 댈 수 없어 마을이 잘 보이는 곳에 닻을 내린 후, 보조정에 올랐다. 의료진이 맨 배낭과 26인치 캐리어엔 진료에 필요한 의약품이 든든하게 채워졌다.

배에서 내린 의료진들이 대도 복지회관으로 향하고 있다. ⓒ 옥둘이 경남 511호 병원선 담당자
배에서 내린 의료진들이 대도 복지회관으로 향하고 있다. ⓒ 옥둘이 경남 511호 병원선 담당자

의료진은 선착장에 도착한 뒤 바로 앞에 있는 복지회관으로 들어가 익숙한 듯 줄지어 앉았다. “성함을 말씀해주세요.” 조촐하긴 해도 접수를 받고, 고혈압 및 당뇨 환자는 혈압과 혈당을 체크하고 진료를 한 뒤 약이나 주사를 처방하는 것이 일반 병원 진료 절차와 같다.

의료진과 주민들은 친숙하게 안부를 주고받았다. 가장 많이 환자가 몰리는 건 내과였다. 이정민 공중보건의(34)는 “이름만 내과이지 사실상 감기나 외상, 피부질환 등 한의과, 치과 빼고는 모든 진료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정민 공보의는 주민들의 진료 기록을 꼼꼼히 살피면서 증세를 묻고 필요한 약을 처방했다. 이날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감기약을 찾는 주민들이 많았다. 감기약 처방과 환자의 필요에 따라 파스 등의 상비약을 제공했다.

이날 약 60여 명의 주민이 진료를 받았다. 김문연 할머니(82)는 “무릎이 아프고 다리가 시큰거려서 진통제를 받으러 왔다. 걷기도 힘들고, 배 시간 맞추기 어려워 병원에 쉽게 못 가는데, 병원선이 와서 이렇게 진료를 해주니, 고마운 거야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이차임 할머니(62)도 “아파도 죽을 때까지 버텨야지, 반가운 거야 말할 거 없다. 조업 하러 가면 못 만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많이 아쉽다”고 했다.

외국인의 모습도 보였다. 스리랑카에서 온 나노스끄(26)는 “3년 동안 가두리 양식장에서 일을 했다. 어깨가 아파서 한 달에 한 번은 꼭 온다. 반갑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정민 공보의는 “저희야 매일 섬 주민들을 보지만 섬 주민 분들은 저희를 한 달에 한 번 보신다. 큰 도움이 못 되는데도 항상 도움이 된다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 외에도 병원선에는 양치 교육 및 간단한 치과 진료를 실시하고 스케일링이나 발치 등을 한다. 특히,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많은 한의과에서는 팔, 다리, 어깨 등에 한방 침 치료와 한방약을 처방한다.

짧지만 따듯한 인사 “들어가이”

의료진들이 복지회관에서 진료를 하는 사이 김강우 공보의(28)는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집을 찾았다. “어르신!, 어르신!” 대문 너머로 이도암 할아버지(82)를 불렀지만,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김 공보의는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고, 할아버지는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텔레비전 소리가 굉장히 컸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 몸은 좀 어떠세요?” 김 공보의는 그간의 안부를 물었다. 그는 평소보다 목소리를 높였다.

할아버지가 허리가 아프다고 하니 김 공보의는 “여기랑 여기, 덜 아프게 하는 진통제 주사를 놔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병원선에서는 CT나 MRI 등의 검사가 어려워 어르신들 건강상태에 따라 정밀진단을 위해 병원진료를 권유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김 공보의의 언어는 짧고 쉬웠다. 그는 할아버지께 아픈 증상을 묻고, 감기약 등 필요한 약을 처방해주었다. “다음 달에 올게요”라며 집을 나서는 김 공보의에게 할아버지는 불편한 거동에도 방문 앞까지 마중을 나와 “들어가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김 공보의는 “이미 연세도 많으셔서 조금이라도 덜 아프시도록 진통제나 주사를 놔 드린다. 이달에 뵈었는데, 다음 달 방문 시 요양병원으로 가시거나 돌아가셔서 못 뵙게 되면 굉장히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방문 진료는 두 곳에서 더 이어졌다. 김 공보의는 섬 지리를 모두 꿰고 있었다.

방문 진료를 마친 뒤 마을회관으로 돌아오니 어느 정도 진료가 끝나 있었다. 하지만 의료진은 바로 자리를 떠나지 않고 늦게라도 찾아올 주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20여 분이 지나고, 아무도 오지 않는 것을 확인 한 후 보조정에 올랐다.

경남 511호는 다음 진료지인 사천시 동서동 마도로 향했다. 오후가 되자 비가 쏟아졌다. 파도로 인해 보조정을 타고 내릴 때 힘이 들었다. 약 배낭과 캐리어는 더욱 무거워보였다. 의료진은 섬 주민에게 전달될 약품이 비에 젖을까 노심초사했다. 궂은 날씨 속에서도 마도에 이어 신도와 저도 일정을 마무리했다.

김은년 간호조무사가 주민들의 이름을 호명하고 있다. 병원선 의료진들은 차례로 줄을 지어서 앉았다.
김은년 간호조무사가 주민들의 이름을 호명하고 있다. 병원선 의료진들은 차례로 줄을 지어서 앉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섬으로 향하는 병원선의 숙명

김성호 선장(56)은 “다른 관공선은 날씨가 좋지 않으면 운항을 하지 않지만 병원선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웬만하면 바다로 출항을 해야 한다. 폭풍주의보 등 기상악화 시에는 운항 일정을 바꿔서라도 출항한다. 한 달에 15일 이상은 출항한다. 섬 주민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병원선의 숙명이다”라고 말했다. 병원선의 진료 일정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다. 금요일을 비워 둔 이유는 선박의 안전점검 및 기상 악화 등으로 출항하지 못한 날의 대체를 위해서다. 병원선 운항일정은 섬 주민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정해진 진료 일정을 채운다. 그렇지 않으면 만성질환자(고혈압, 당뇨 등)의 약을 제때 제공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박운영팀에게 태풍은 가장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태풍주의보가 발효되면 선박운영팀 전원은 피항(避港)을 가야 한다. 보통 3~4일 피항 기간 동안 선내에서 잠을 자고 식사를 한다. 태풍이 잦았던 지난달은 잦은 피항으로 선박운영팀과 의료진 모두 고된 일정을 소화했다. 무엇보다도 병원선 근무의 가장 큰 어려움은 지상근무보다 피로도가 높다는 점이다. 조현진 간호사(31)는 “멀미도 멀미지만 배의 진동 때문에 기본적으로 신체적 피로도가 높다.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간 뒤에는 곧바로 쓰려져 잠든다. 병원선에서 근무하면 시간이 빨리 가는 이유”라고 말했다. 송현정 간호사는 “퇴근 후에도 마트에서 장을 보면 (육지멀미 때문에) 물건들이 위 아래로 흔들린다”고 했다.

해가 짧아지는 동절기에는 1박 2일 정박근무가 시작된다. 3개월 동안 의료진과 선박운영팀 전원은 출렁이는 파도 위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진료를 봐야 한다. 선박이 밀폐되어 있고 기압이 낮아 선내 취침은 그다지 개운하지 못하다. 샤워실이 하나밖에 없는 탓에 15명이 돌아가면서 씻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그래도 이들이 버틸 수 있는 것은 병원선을 반갑게 맞는 섬 주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병원선은 풍족한 의료시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 주민들은 이마저도 ‘고마운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오늘도 경남 511호는 섬 주민의 건강을 위해 통영항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