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가 밀레니얼 세대를 품기 위해서는
일터가 밀레니얼 세대를 품기 위해서는
  • 최은혜 기자
  • 승인 2019.11.04 06:02
  • 수정 2019.11.04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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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의 조직 부적응은 제도와 구조의 문제
노동에 대한 관념 변화, 함께 문제를 해결할 동료 필요

커버스토리 ⑤ 밀레니얼 세대가 일터를 박차고 나가는 이유

일터 × 밀레니얼 세대


각 기업들은 정기적·비정기적 채용을 통해 부족한 인력을 채우고 기업의 인재를 키워낸다. 하지만, 최근 한국 사회는 큰 고민에 빠졌다. 신입사원들의 모습이 이전에 보았던 직원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하질 않나, 분위기 쇄신을 위해 회식이라도 한 번 하려고 해도 쉽지가 않다. 이뿐인가? 그 어렵다는 취업문을 뚫었음에도 사직서를 던지고 퇴사한다고 한다.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90년대 초중반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밀레니얼 세대’라고 부른다.

그런데, 정말 ‘밀레니얼 세대’는 문제가 많은 걸까? <참여와혁신>은 그 고민을 가지고 ‘밀레니얼 세대’에 접근해 봤다.

일터에서의 밀레니얼 세대를 설명할 때 주로 함께 사용되는 단어는 ‘퇴사’다. 최근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는 ‘깔끔하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퇴사 대행 서비스가 각광받고 있고 서점가에는 준비된 퇴사를 위한 책도 즐비하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어플 ‘Blind’에 퇴사를 검색하면 총 7,815건(2019년 10월 18일 11시 40분 기준)이 검색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2016년 한국경영자총협회(회장 손경식, 이하 경총)의 ‘신입사원 채용실태 조사’에 따르면 대졸 신입사원이 1년 내에 퇴사하는 비율은 27.7%로 나타났다. 경총이 10년 전 실시한 같은 조사에서 대졸 신입사원이 1년 내에 퇴사하는 비율은 20.6%였다. 경총의 조사에 따르면 신입사원의 퇴사율은 증가하는 추세다.

우리가 퇴사한 진짜 이유

경총의 조사 결과 추이를 보면 2016년 퇴사율은 2006년 퇴사율 대비 7.1%p 증가한 것에 불과하지만, 퇴사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은 “노동 상황과 경제 상황을 고려했을 때 밀레니얼 세대가 퇴사를 더 많이 선택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기형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역시 “경총 조사에서 신입사원 중 약 1/5 정도가 퇴사를 감행한다는 측면은 현재 청년 취업의 심각한 어려움을 고려할 때 명백히 주목해야 할 이슈이자 기업과 기성세대가 숙고해야 할 쟁점”이라고 평가했다.

“이직하게 된 이유는 현재 직장이 전의 직장보다 연봉이나 복지 측면에서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

-32세, 대기업 퇴사 후 이직

“전에는 스타트업에 다녔어요. 배울 수 있는 건 많았지만 신입이라 무시하는 분위기가 남아있었어요. 좀 더 이름 있는 곳에서 경력을 쌓아야 제게 기회가 주어진다고 느껴서 이직하게 됐어요.”

-27세, 스타트업 퇴사 후 이직

밀레니얼 세대는 왜 퇴사를 선택하는 걸까? 2016년 경총 조사에서 응답자의 49.1%가 조직 및 직무적응 실패를 퇴사의 이유로 꼽았다. 그다음으로 많았던 것은 급여 및 복리후생에 대한 불만으로, 응답자의 20%가 퇴사를 선택한 이유로 꼽았다.

전문가들은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관과 직장 문화 사이의 차이에 주목한다. 이기형 교수는 밀레니얼 세대가 직장 문화에 부적응을 호소하는 이유에 대해 “직장 내부의 경직된 문화와 가치, 과도한 노동의 조건과 압박, 위계화된 조직 내 소통의 측면, 급여와 보상을 포함하는 제도적 지원에 대한 실망감 등의 측면을 짚어낼 수 있다”면서도 “제대로 된 소통과 유의미한 상호 이해의 부재, 신입사원들에 대한 기성 직원들의 경직된 태도, 이들의 특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주류의 완강한 관성도 부적응을 생성하는 데 일조한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는 밀레니얼 세대 개인의 적응·부적응 차원을 넘어 제도와 구조의 문제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경춘 한국능률협회 지식연구소 교수는 밀레니얼 세대의 성장 배경과 직장 문화의 차이에 주목한다. 최경춘 교수는 “옛날에는 경쟁도 심하고 먹고살기 어려워서 어떻게든 경쟁의 사다리에 올라가서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면 밀레니얼 세대는 대다수가 유복하게 자랐다”며 “부모와의 관계도 수평적인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이어 “밀레니얼 세대의 손에 디지털 기기를 쥐어주면서 온갖 정보와 연결됐다”며 “세상의 권위가 다 무너지게 됐는데 유일하게 직장 내의 권위만 건재하다”고 지적했다.

“제가 퇴사를 결심한 이유요? 회사의 저 성장세와 복지 감소도 있지만 건강 문제가 가장 컸어요. 업무 특성상 서있는 시간이 길어서 아킬레스건에 통증이 심했거든요. 병원에서 치료하면서 회사를 다니다 결국 퇴사를 선택하게 됐어요.”

-27세, 중소기업 퇴사준비생

“건강 문제가 정말 심각했어요. 생리불순이 너무 심해서 산부인과에 가서 주사를 맞아야만 겨우 서너 달에 한 번 생리를 할 정도였으니까요. 더 심각했던 건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이 ‘너 요즘 이상해’라며 제 피폐해진 정신 건강을 염려했다는 점이에요.”

-25세, 중소기업 퇴사 후 아르바이트

반면 천주희 문화연구자는 “올해 발표된 경제활동인구조사 중 청년층 부가조사를 보면 첫 직장을 그만둔 이유로 근로여건의 불만족을 뽑은 응답자가 49.7%로 가장 높았고 개인의 건강, 계약만료 등이 그 뒤를 이었다”며 “일하는 것에 비해 적절하게 보상을 못 받고 저임금, 과로, 계약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밀레니얼 세대가 첫 직장을 예전보다 빨리 그만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원하던 일터는…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를 봤나요? 거기에 나오는 기업 ‘바로’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직장 아닐까요? 개인마다 잘 하는 업무영역이 다른데 이것이 극복할 대상이 아니라 서로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하고 젊은 세대의 아이디어와 재치를 받아들이는 센스를 가진 관리자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25세, 중소기업 퇴사 후 아르바이트

Blind와 중앙일보는 Blind를 사용하는 7,129개 기업 6만 7,462명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관계 만족도를 조사했다. 이 조사에서 내 의견을 회사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고 느끼는 정도인 표현의 자유는 평균 55점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입사 2년 미만의 밀레니얼 세대는 평균 52점으로 나타나 표현의 자유가 전체 평균보다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밀레니얼 세대와 전문가가 함께 주목한 것은 ‘수평적인 직장 문화’다. 최경춘 교수는 “기성세대는 자신이 권력이나 권한을 가지고 베푼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밀레니얼 세대는 내가 받아야 될 것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며 “밀레니얼 세대가 요구하는 것은 나를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 수평적인 마인드이고 기성세대의 기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기형 교수 역시 “경영진이나 상급자가 변화에 호의적이거나 필요를 제대로 수용하려는 의지가 적을 때, 소수의 주체들이 가진 선의나 의견 개진만으로는 유의미한 변화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며 “경영진의 태도 변화가 필수적이다”고 지적했다.

천주희 문화연구자는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사람을 가르치거나 명령하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라는 인식이다”고 지적했다. 다양한 연령이 일하는 조직에 만연한 수직적 위계구조로 인해 민주적인 의사소통이 어려우며 이러한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반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견에 대해 김선기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은 우려를 표했다. 김선기 연구원은 “퇴사율이 높아지니까 직장 민주주의를 개선해 퇴사율을 낮추자는 것은 조직 내에 권한을 가진 사람이 양보하고 있다는 논리로 번질 수 있다”며 “직장 민주주의는 퇴사율을 낮추는 방안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어야 한다”고 우려했다.

일터를 바꾸기 위해 노동조합은 뭘 할 수 있을까?

“노조가 무조건 밀레니얼 세대 편에 서라는 것은 아니지만 밀레니얼 세대가 회사에 요구하는 것이 있다면, 노조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조가 왜 존재하는지를 생각하면서 밀레니얼 세대를 대변한다면 밀레니얼 세대가 가진 노조에 대한 불편함을 조금은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요?”

-25세, 중소기업 퇴사 후 아르바이트

“사실 노조가 있는 회사가 아니라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노조가 밀레니얼 세대를 대변해준다고 해도 퇴사를 선택했을 것 같은데…. 만약 노조가 생긴다면 전 직원이 사장 눈치만 보는 상황을 피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네요.”

-27세, 중소기업 퇴사준비생

전문가들은 노조의 분위기 쇄신과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천주희 문화연구자는 한편으로는 “일하는 사람들이 노동, 일에 대한 관념이 바뀌었기 때문에 자신을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노조에 대한 거부감, 거리감이 있다”며 “그런 간극이 단순히 노조 형태의 변화로 좁혀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어 “밀레니얼 세대가 말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신이 일하다가 문제가 생겼을 때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찾을 동료가 없다는 것’”이라며 “같이 일하는 동료가 아픈 상태에 있다는 것을 포착하고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몇 가지 장치를 통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경춘 교수는 “노조도 수직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노조 간부가 완장을 차고 상대를 통제하고 부리려고 할수록 밀레니얼 세대는 노조에서 간부가 되고 싶지 않아 한다”고 지적했고 이기형 교수는 “개별 민원이나 문제제기를 넘어 사측과 노조가 사내에 구현된 특정한 문화나 가치체계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개선·혁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의견 수렴 채널을 노사 간의 협의를 통해 만들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회사에 진입한 밀레니얼 세대가 느끼는 부담이나 부적응의 단면을 직시하고 해결책을 도모하는 일이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조직의 구성과 원활한 작동을 위한 핵심적인 요건이라는 점을 대승적으로 각인할 필요가 있다”며 “변화를 방관하는 조직의 생리와 경직성에 밀레니얼 세대가 제공할 수 있는 유·무형의 기여와 고심할 자원이 있다는 측면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