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하는 노동조합 위원장을 소개합니다
마술하는 노동조합 위원장을 소개합니다
  • 정다솜 기자
  • 승인 2019.11.03 10:53
  • 수정 2019.11.03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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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현장의 ‘긴장’을 ‘이완’으로 바꾸는 마술의 힘

[인터뷰]이도천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

마술은 순간의 예술이다. 눈 깜짝하는 사이 텅 빈 중절모에서 토끼가 튀어나오고 무대 위 마술사는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지기도 하며 검은 머플러에선 빨간 장미 한 송이가 피어나기도 한다. 짜릿한 당혹감을 느낀 관중은 이내 웃음을 터트린다. 마술에 걸리면 긴장이 풀리고 행복에 빠진다.

노동조합의 집회현장에도 긴장을 이완으로 바꿔내는 ‘마술사’가 있다. 바로 이도천 전국가전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이다. 올해 4월부터 마술을 배운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집회현장에서 마술을 선보인다. 마술복을 단정히 갖춰 입고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그가 집회현장에 등장하면 주변에 흐르던 긴장은 금세 녹는다. 집회뿐 아니라 평소에도 기자를 만나면 종종 마술을 선보이며 긍정 에너지를 퍼트리는 이도천 위원장에게 궁금한 이야기를 더 들어봤다.

이도천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이도천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 마술을 배우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여러 집회나 기자회견을 가보니 늘 같은 패턴으로 진행되더라.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지만 더 다양한 방식으로 의사전달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노동조합이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집회할 때 무대장치나 공연섭외 등에 돈이 상당히 많이 들어간다.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하다가 노동조합에 부담을 주지 않고 혼자 노력해서 집회 방식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마술’이 괜찮겠다 싶어서 배우기 시작했다.
 

- 정형화된 집회방식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점을 발견한 건가?
집회가 집안 잔치 식으로 비칠 수 있겠단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어차피 집회는 노동자들의 문제를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다. 굳이 인상 써가면서 하는 것보다 같이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하면 오히려 노동조합에 대한 접근장벽이 낮아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변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술학원에 등록한 측면도 있다.
 

- 보통 마술공연을 어떻게 준비하나?
집회 주제에 맞춰 마술종목을 선택하고 스토리를 구상한다. 초반엔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간단한 마술을 한다. 그러다 장기투쟁 사업장 같은 경우 투쟁 대상을 종이에 적어 불에 태워 없애고 그 자리에 노동자들의 요구 사항이 나타나게 하면서 중심 메시지를 마지막에 강조하는 형식으로 스토리를 짠다.


- 조합원 반응은 어떤가?
종종 보여주면 재밌어한다. 마술은 장소나 형식에 얽매이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술자리에 가면 동전을 올려둔 손바닥 위에 유리컵을 두고 동전이 갑자기 위에서 ‘쨍그랑’ 떨어지는 마술을 보여주는 거다. 그러면 어떻게 한 거냐고 궁금해하며 즐거워한다. 마술을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 반대 의견은?
물론 위원장이 조합원들 앞에서 마술 공연을 하면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런데 나는 무게 잡으려고 위원장 하는 게 아니다. 위원장이 무게 잡고 있으면 일반 회사랑 노동조합이랑 뭐가 다르겠나.


- 직접 느낀 마술의 매력은 무엇인가?
상대방을 가장 빨리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도구가 마술이 아닌가 싶다. 대화로 상대를 웃기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간단한 마술로도 서먹한 분위기가 풀어지고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나도 정말 즐겁더라. 나중엔 주말에 시간을 내서 노인정 등에 마술봉사를 해야겠단 생각도 든다.


- ‘즐거움’이 위원장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인 것 같다.
그렇다. 나는 노동조합 사무실에서도 ‘즐거움’을 강조한다. 일을 일로 보면 힘들어진다. 재미로 해야 한다. 그래서 출근시간이든 퇴근시간이든 관여하지 않는다. 될 수 있으면 낮잠도 자라고 한다. 그래야 오후에 활력이 생긴다. 아무리 옳은 일을 해도 스스로 재미없으면 그 일을 하면 안 된다고 늘 말한다. 내 신조는 그거다.


- 마지막으로 어떤 위원장으로 평가받고 싶은지 궁금하다.
‘노조 재밌겠네’, ‘노조 한번 해볼 만하네’ 이런 평가를 들을 수 있도록 지금은 다소 딱딱한 노동조합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싶다. 또한 노동조합 활동은 조합원 개개인의 소신과 의지가 중요하다. 실질적으로는 각자의 의지로 투쟁하는 것이지 간부가 투쟁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위원장이나 간부의 역할은 개개인의 힘을 한군데로 모아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거다. 그런 역할을 잘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