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혜의 온기] 82년생 김지영과 사회적 가치의 관계
[최은혜의 온기] 82년생 김지영과 사회적 가치의 관계
  • 최은혜 기자
  • 승인 2019.11.04 11:21
  • 수정 2019.11.0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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溫記 따뜻한 글. 언제나 따뜻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참여와혁신 최은혜기자 ehchoi@labor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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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최근 한 토론회를 취재했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역할과 위상을 고민하는 토론회였는데, 그날 기자는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감정을 느꼈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역할과 위상을 토론하는 자리에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감정을 느낄 일이 무에 있겠느냐만 단순히 발제와 토론의 내용이 아니라 어느 토론자의 발언이 그런 감정을 느끼게 했다.

해당 토론자는 “사회적 가치가 추상적이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토론회의 발제자와 토론자로 참여한 사람들의 나이와 성별을 지적했고 참석자와 청중의 자리 위에 놓인 생수병과 종이컵을 지적했다. 당시 토론회의 발제자와 토론자는 모두 남성이었고 흔히 기성세대로 분류할 수 있는 연령대였다.

그제야 기자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토론회의 관행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대부분 남성으로 구성된 발제자와 토론자, 또 30대 정도로만 보여도 ‘이런 자리에 나와서 얘기하긴 어리지 않나?’라고 여기던 기자의 생각, 자리 위에, 혹은 들어오는 입구에 당연하게 비치된 작은 생수.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기자가 추구한다고 생각해온 가치와 정반대의 것이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은 관행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종종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고 한다면, 책 「82년생 김지영」을 처음 읽던 접했던 순간을 꼽을 수 있다. 기자가 살아온 시간 중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남동생은 부엌 출입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명절에 여성이 음식 장만을 하는 것 등)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은 관행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얼마 전, 기자는 「82년생 김지영」을 영화로 다시 봤다. 어린아이가 보채다가 커피를 쏟은 김지영은 얼른 쏟아진 커피를 치운다. 그러나 바로 뒤에 줄 서 있던 한 무리의 사람들은 김지영이 들으라는 듯 ‘맘충’이라고 비아냥댄다. 자신을 아느냐고, 왜 들리게 상처 주는 말을 하느냐고 그들에게 항의하던 김지영의 모습은 영화 초반, 아이를 데리고 나와 커피를 마시다가 ‘부럽다, 나도 시집이나 가야겠다’ 등의 소리를 듣고 급히 자리를 빠져나오는 김지영의 모습과 대비됐다.

최근 여당의 청년대변인이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논평을 냈다. 그러나 이는 여러 논란을 야기하다 ‘당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점이 있어’ 철회됐다. 「82년생 김지영」은 기자가 최근 취재한 토론회에서 토론자가 지적했던 것처럼 추상적이고 거창한 얘기가 아니다. 누군가를 공격하고자 하는 얘기도 아니고 그런 삶도 존재한다고,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얘기한다.

사회적 가치가 거시적인 담론이 아니라면 기자는 또 어딘가에서 뒤통수가 얼얼한 경험을 할 것이다. 당연한 것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은 관행이라는 파열음이 어디서 어떻게 들려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