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순의 얼글] 원색 양말에 말 걸기
[박완순의 얼글] 원색 양말에 말 걸기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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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순의 얼글] 얼굴이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사람의 얼굴을 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양말 색이 심상치 않다. 그는 왜 그렇게 원색 양말을 잘 신는 것일까. 어두운 색 양말을, 별로 튀지 않는 색의 양말을 신는 사람으로서 궁금했다. 원색 양말을 잘 신는 그인 내 동료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냥 이유만 물어보려 했지만 인터뷰 같이 돼 버렸다. 다음은 동료와 일문일답.

오늘 신은 양말은?
어제보단 밝은 노란색. 굳이 표현자면 머스타드 색. SPAO에서 산 것 같다. 2,800원 정도? (갑작스런 TMI, 그는 양말 이야기를 좋아했고 잘했다.) 가을을 좋아한다. 양말을 신을 수 있어서.

그럼 봄, 여름, 겨울에는 맨발인가?
아니다. 여름에는 목 짧은 양말을 신어서 신발에 양말이 가려진다. 겨울에는 바지가 길어져서 양말을 뽐내기 어렵다. 봄에는 스타킹을 자주 신는다.

가을 전어 느낌이다.
그렇다. 양말은 가을이 제철이다. 적당한 길이의 바지 밑단 사이로 보이는 긴 원색 양말을 뽐낼 수 있다.

양말을 사는 걸 왜 좋아하게 됐나?
정확히 말하자면 원색, 쨍한 색 양말 사는 것을 좋아한다. 색이 주는 기쁨을 양말로 승화해서 스스로 표현하는 것이다. 색의 기쁨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기분도 좋다. 옷으로도 표현할 수 있지만, 나이가 들다보니 옷으로 원색을 소화하긴 힘들 것 같다. 옷이 원색이면 사람들이 너무 주목한다. 어찌 보면 소심한 관종이랄까.

기분이 좋다라...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과는 다른 의미인가? 같은 의미인가?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다. 학창시절에는 모의고사 끝날 때마다(일종의 보상으로) 머리끈과 머리핀을 샀다. 원색이었다. 스무 살 때까지 했는데, 지금은 유아틱해서 좀 그렇고 양말로 갈아탄 것이다.

당신에게 양말이란?
기분 좋아지게 하는 것, 그리고 나의 작은 일탈이기도 하다. 규범과 규율이 있는 삶 안에서 반항하고 싶은.

그런 일탈이라는 반항으로 주체성을 확보하는 것?
그럴 수도 있다.

우리는 삶을 산다. 가끔은 나의 삶을 사는 건지 우리라고 불리는 가상 인물의 삶을 사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럴 때 마다 자신을 확인해봐야 한다. 스스로가 스스로의 맥박이 뛰는지 맥을 짚어봐야 한다. 그것이 스스로를 기분 좋게 해 감각적으로 나를 확인하는 것일 수 있고, 세상 아래 비슷한 사람은 있어도 같은 사람은 없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남들과 다른 점을 찾는 것일 수 있다. 내 동료는 원색 양말이라는 상징으로 자신이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고 확인했다.

그런데, 항상 인터뷰보다 인터뷰가 끝난 뒤 사담이 재밌듯 동료와 일문일답이 끝나고 동료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원색이 왜 자신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지 고민해봐야겠다.” 사실 그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내 삶을 살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기 위한 양말 같은 상징들을 계속 모으는 것도 의미 있지만 ‘왜 그런 메커니즘에 내가 반응하는가’라는 이유를 고민하는 것. 그 고민을 지속하다보면 점점 알지 못했던 자신을 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가끔은 나의 삶을 사는 건지 우리라고 불리는 가상 인물의 삶을 사는 건지 헷갈리는 게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러니 하루는 날을 잡고 원색 양말과 대화를 나눠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