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우의 부감쇼트] 길 잃은 목자
[임동우의 부감쇼트] 길 잃은 목자
  • 임동우 기자
  • 승인 2019.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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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말로 버즈 아이 뷰 쇼트(bird’s eye view shot).
보통에서 벗어난 시각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싶습니다.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아침 일찍 나와 숨을 한껏 들이마시면 속이 선선하다. 하늘은 높고 햇살은 고즈넉하고, 어찌 자꾸 밖으로 나고 싶은 것이 역시 가을이구나 싶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라면 말이 살쪄야 하는데 내 살이 오르고 있으니, 내가 말인지 말이 나인지 호접몽을 꾸는 것만 같다. 허리 사이즈도 늘어나 옷장의 옷은 켜켜이 쌓여가고, 가득 찬 옷장을 바라보면 여러모로 풍요(?)롭다.

지친 일상을 위로하는 방법은 각기 다르다. 누군가는 일에 매몰되는 걸 즐기기도, 책을 읽기도 하고, 맛있는 먹거리를 찾아 나서거나 종교 활동에 매진하기도 한다. 나는 고궁이 어우러진 광화문 어귀를 걷는 걸 좋아하는데, 어느 주말에는 걷다가 대규모 집회를 마주쳤다. 멀리서부터 날아온 마이크 소리가 귓구멍에 콕콕 박히는 것이 ‘대체 얼마나 좋은 스피커를 쓰길래’하고 생각할 정도였는데, 마이크를 잡고 있는 사람은 목사였다.

그의 발언을 듣고 있노라면, 나는 내가 이 가을에 겪는 호접몽을 그분 또한 제대로 꾸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의심을 떨칠 수 없었다. 목사인 그가 종교인인지 정치인인지 헷갈렸다. 그는 성조기와 태극기가 어우러진 광장에서 현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격한 막말을 쏟아냈다. ‘애국과 복음은 분리될 수 없다’, ‘눈치를 본다면 조중동에 신도들 이름을 모두 공개하겠다’ 등의 협박과 같은 발언이 이어졌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며 아멘과 할렐루야를 외쳤다.

정치와 종교가 결합된 사례가 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정답은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는 기독교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CDU(기독교 민주연합)가 중도우파를 대변하는 정당으로 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럼에도 독일 정치는 이념적으로 양극화되지 않고 온건다당제의 정당 체제로 현재 민주주의의 대표모델이 되고 있는데, 이는 과거 나치정권이 민주주의 아래에 생겨났다는 걸 자성하며 ‘정치’가 결국 내전이 아닌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내는 장이 되어야 한다는 걸 분명히 선행했기에 가능했다.

광화문 광장에 모이는 신도들은 목사의 말에 따라 맹목적으로 분노의 대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예수께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다던데, 갈등을 부추기는 그에게서 이웃사랑을 찾기엔 무리가 있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그의 귀에 살이 쪄서 신의 뜻을 왜곡하여 듣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