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솜의 다솜] 해녀가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는 이유
[정다솜의 다솜] 해녀가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는 이유
  • 정다솜 기자
  • 승인 2019.11.11 13:59
  • 수정 2019.11.11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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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사랑의 옛말. 자꾸 떠오르고 생각나는 사랑 같은 글을 쓰겠습니다.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지난달 제주에 여행 갔을 때의 일입니다. 여행 대부분을 바다 근처에 앉아 있다 보니 무리 지어 물질하러 오는 제주 해녀들을 종종 만났습니다. 까만 잠수복에 물안경을 쓴 그들은 바닷속에서 들어가 30초~1분 정도 작업하다가 물 위로 뜨곤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에 최대 7시간 정도 물질을 한다고 합니다. 필요한 경우 수심 20m까지 들어가며 2~3분까지 숨을 참을 수도 있고요. 해녀 대부분이 고령인 점을 감안했을 때 반복되는 숨참기와 끊임없는 물질은 놀랍기만 했습니다.

제주 해녀들은 어떻게 숨을 오래 참고 바다 깊이 들어갈 수 있게 됐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매일 물질을 했기 때문일 겁니다. 해녀들은 날마다 조금씩 숨을 더 참고 서서히 더 깊이 들어갔을 겁니다. 그런 조금이 쌓여 어느새 혁신적으로 성장한 모습을 알아챘겠지요. 조금이 혁신을 만든 셈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조금은 사소하지 않습니다.

일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소하지 않은 '조금'을 노동자들은 말합니다. 지금 마트 노동자들은 박스 양옆에 손잡이 구멍을 뚫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평소 손잡이 없는 무거운 박스를 수시로 옮기며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트 노동자들은 보통 손잡이가 없는 박스 바닥에 손을 끼워 넣어서 가슴으로 상자를 안습니다. 상자 옆면만 잡고 옮기다가 손이 쉽게 미끄러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몸에 무리가 가는 방식으로 하루 평균 300번 이상 박스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겁니다. 

백화점 판매서비스 노동자들의 경우 고객은 없지만 노동자가 있는 시간에도 백화점이 냉난방을 틀어주길 원합니다. 얼마 전 만난 김연우 한국시세이도노조 위원장은 “오전 10시 30분, 백화점 오픈 시간에 맞춰 에어컨이 나온다”며 “노동자들은 한 시간 전부터 출근해 지하와 외부 창고를 왔다 갔다 하며 제품을 준비하면 땀에 흠뻑 젖는다. 한여름에는 유니폼이 젖을까 봐 작업복을 입은 채로 일하는데 속옷까지 갈아입어야 할 정도로 땀을 흘려도 백화점은 고객이 오기 전까진 에어컨을 안 틀어준다”고 지적했습니다. 고객이 없는 일터에서 노동자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셈입니다. 

양옆에 구멍이 뚫린 상자, 오픈 한 시간 전부터 가동되는 냉난방은 사소하지 않습니다. 노동생산성과 직결된 요소들입니다. 노조에 따르면 박스에 손잡이만 설치되어 있어도 자세에 따라 약 10~40%까지 들기지수 경감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온몸이 땀으로 젖지 않아도 되는 쾌적한 노동환경 또한 노동생산성을 높일 겁니다. 이 같은 노동자를 위한 조금이 쌓여야 일터에도 혁신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노동자가 일하고 싶은 일터를 만들어 노동생산성도 높이는 일, 일터혁신의 시작은 노동자를 위한 조금에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