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모의 노동일기] 사랑이 사라진 신세계
[손광모의 노동일기] 사랑이 사라진 신세계
  • 손광모 기자
  • 승인 2019.11.12 16:00
  • 수정 2019.11.12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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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동을 글로 적습니다. 노동이 글이 되는 순간 노동자의 삶은 충만해진다고 믿습니다. 당신의 노동도 글로 담고 싶습니다. 우리 함께, 살고 싶습니다.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어떤 선택을 해도 파국을 맞이하는 경우가 있다. 혹자는 이 상황을 거창하게 '운명'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다. '윤 일병 사건'이 세간의 입에 오르내렸을 때 유명해진 말이 있다.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 자살이냐 혹은 타살이냐의 선택. 자유라고는 파국을 받아들이는 방식의 차이만 있는 상황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최소한 운명보다는 '폭력'이 적절하지 않을까.

군대같이 비일상적인 곳에서만 폭력이 일어나는 게 아니다. 여성들에게 생활의 터전, 일상적인 사회는 냉혹한 폭력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출산은 그중에서도 가장 비정한 폭력의 양태다. 낳아서 현모양처가 되거나 낳기를 거부해서 손가락질을 받거나. 두 경우 모두 ‘개인의 삶’은 흐려진다.

일찍이 우리 사회는 떨어져 가는 출산율의 원인을 여성에게 돌렸다. 간단했다. '여자들이 애를 낳지 않아서 문제'라는 것이다.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들은 ‘사회문제’로 취급돼 비난받는다. 생명을 죽였다는 도덕적, 윤리적 비난뿐만 아니라 국가경쟁력 차원의 손실도 언급된다. 자녀가 셋이든 넷이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경제력이 있든 없든, 산모의 나이가 많든 적든 생기면 낳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2021년 1월 1일까지 낙태죄는 잔존한다.

그러나 낙태 대신 출산을 선택해도 들을 욕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능력도 없는데, 일단 낳고 봤다’는 비난은 점잖은 축에 속한다. 대다수 미혼모들은 '애비 없는 자식'을 키우는 죄를 안고 살아간다. 그녀들은 한 평생을 '어린 날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참회하며 아이를 키워야지만 사회는 속죄의 압박을 거둔다.

출산은 '결혼제도'의 자리 안에서만 신성하다. 정상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출산은 삶의 궤적이 보이지 않는 통계, 숫자에서만 긍정될 뿐이다. 그렇다고 울타리 안쪽에 있는 여성이 편안한 삶을 누리는 것도 아니다. 여성이 어머니가 되는 순간, 그녀가 사는 이유는 '아이'로 좁혀진다. 자아실현은 오직 '아들의 성공'으로 간접적으로 성취될 뿐이다. 대다수의 워킹맘은 마음 한 켠에 아이를 잘 보살피지 못한 죄책감을 가지며 일한다. 아빠들은 쉽게 하지 않을 고민이다.

낳아도, 낳지 않아도 파국은 온다.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사랑하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매년 결혼 건수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비혼주의자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더욱이 남녀를 불문하고 요즘 청년에게 ‘결혼’ 정도야 기꺼이 포기하는 가치가 됐다. 정확한 사랑을 위한 용기 있는 실험 대신 자기애적인 간편한 사랑이 주를 이룬다. 안타깝게도 여기에는 국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재생산’에 대한 고려는 없다.

그 사이 출산율은 1명 선이 무너져 0.98명이 됐다. 세계에서 전례 없는 수치라고도 한다. 너무 감성적인 말일지는 몰라도 우리가 ‘사랑하는 능력’을 잃어버렸음을 반증하는 지표일지도 모른다. ‘저출산 문제’를 다루는 국가는 진지하게 사랑에 대해 성찰을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파국이 가까이 왔다. 사랑이 사라진 신세계에 인간은 없다. 국가 또한 있을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