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과 경쟁력, 두 마리 토끼 잡을까
고용과 경쟁력, 두 마리 토끼 잡을까
  • 박석모 기자
  • 승인 2008.09.0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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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현장
금호타이어 노사의 선택
총파업 진통 속 생산성 협약 체결…문제는 실천

ⓒ 금호타이어

지난 7월 28일, 금호타이어 노사는 2008년 임단협 조인식을 체결했다.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총파업까지 가는 진통을 겪은 올해 임단협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2008년 임단협에서 회사측은 임금 동결과 431명 구조조정안을 제시했고, 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는 431명 구조조정안에 반발해 7월 8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파국으로 치닫는가 싶던 노사는 전면 파업 나흘 만에 잠정합의를 이뤄냈다.

이번 임단협에서 노사는 기본급 3%와 상여금 50% 인상, 휴가비 5만 원 지급에 합의했다. 하지만 정작 눈에 띄는 것은 ‘광주·곡성공장 발전을 위한 실천 합의서’라는 별도합의서였다. 이 합의서의 핵심은 회사는 국내 공장에 설비투자를 하고, 구조조정 계획을 철회하는 대신 노동조합은 생산성을 향상시키겠다는 내용이다.

즉 투자와 고용, 그리고 생산성 간에 빅딜이 성사된 것이다. 어떤 내막이 있었던 것일까.


국내 공장 경쟁력에 대한 노사 견해차

사실 금호타이어가 당면하고 있는 환경은 좋은 편만은 아니다. 2006년 이후 금호타이어의 영업이익률은 급격히 낮아졌다. 특히 국내 공장의 경쟁력은 해외 공장에 비해 확연히 낮게 나타나고 있다.

자료 : 금호타이어

국내 공장 경쟁력 하락에 대해 금호타이어 HR기획팀 박창민 부장은 “메이저 업체들이 시장 확대를 추구하면서 중위권 업체를 압박하고 있다”며 “후발업체들도 추격속도에 가속이 붙어 가격경쟁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금호타이어의 경우 “같은 등급의 타이어라면 원료 가격은 경쟁업체와 비슷한데, 노무비 비중이 높아 제조원가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 회사측의 주장이다.

회사가 ‘글로벌화 전략’을 선택한 것도 글로벌 시장 개척과 가격경쟁력을 확보해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이에 따라 금호타이어는 광주, 곡성, 평택 등 국내 3개 공장 외에 중국에 톈진, 난징, 창춘 등 3개 공장과 베트남공장 등 해외 공장 4개를 운영하고 있다. 또 미국에도 공장을 짓고 있는 중이다. 박 부장은 “중국 공장과 국내 공장을 비교하면 국내 공장에 투자·유지를 할 당위성 자체가 약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노동조합의 생각은 다르다. 금호타이어지회 박종원 사무국장은 “회사는 해외 공장 위주로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며 “해외 공장은 계속 늘리면서 국내 공장에는 투자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투자를 하지 않으면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국내 공장을 축소하겠다고 한다”는 것이 노조의 반박이다.

노사 입장차 못 좁히고 총파업까지 이어져

국내 공장 경쟁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노사 모두 인정했지만, 그 원인에 대해선 노사가 생각하는 게 달랐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 임단협이 시작됐다.

회사의 생각은 임단협에 들어가기 전 경쟁력 확보 방안을 노사가 합의해 선순환구조로 갔으면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007년 임협 후 구성된 노사공동발전위원회에서도 합의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국내 공장의 생존 경쟁력이 낮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회사의 생각이었고, 이는 임금동결과 431명에 대한 구조조정안 제시로 나타났다.

당연히 노동조합은 강하게 반발했다. 노조는 “해외 공장은 늘어나지만 국내 공장은 축소돼 고용이 불안해지고 있다. 해외 공장 건설을 단위노조만의 싸움으로 저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제시한 인적 구조조정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고 말한다.

결국 노사는 서로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고, 노동조합은 “구조조정 등을 돌파하기 위해 총파업을 선택”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금호타이어 노사는 전면파업 나흘 만에 잠정합의안을 도출해냈다. 쟁점이 됐던 구조조정과 설비투자 문제는 별도합의서를 통해 “설비투자 및 생산성 향상을 위해 2011년까지 4천억 원 이상을 투자”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이는 지난 2007년 임금협상 당시 합의했던 ‘고용보장, 경쟁력향상, 노사공동발전을 위한 특별합의서’ 내용을 다시 확인하고 세부사항을 확정한 것이다.

더불어 회사가 제시했던 “431명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을 철회하고, 대신 광주공장과 곡성공장의 생산량을 각각 10% 및 3% 이상 늘린다”는 내용도 별도합의서에 포함됐다. 이를 통해 2012년 이후 광주·곡성공장의 영업이익률 9%를 달성해 안정적 기반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잠정합의안은 7월 20일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광주·평택 61.86%, 곡성 56.12%, 전체 59.27%의 찬성률로 통과했다.

 

ⓒ 금호타이어


노사, 고민 속에서 ‘제3의 선택’

합의안을 도출하기까지 노사 양측의 고민은 컸다. HR기획팀 박창민 부장은 “서로 신뢰하지 않았다면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회사는 노사 회의체를 통해 제반 경영상황을 지속적으로 공개하고 문제점을 개선하자고 설득해왔다. 그간의 반복적 논의과정에서 경영상황에 대한 이해와 상호 인식의 전환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박 부장은 “실무자 입장에서 오히려 회사 내부를 설득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내부를 설득하기 위해선 “회사가 이런 선택을 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 구체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제시해줘야 하는데 방대한 자료를 통해 2012년까지 영업이익률 9% 달성이 가능하다는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했다. 미래의 비전을 제시한 것이 주효했다”고 전했다.

노동조합 또한 고민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박종원 사무국장은 “떠나려는 자본을 총파업을 한다고 해서 주저앉힐 수는 없었다”며, 생산량을 늘린다는 합의를 하기까지 노동조합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털어놨다. 이번 합의는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라는 것이다. 박 사무국장은 “이제는 자본이 낙후된 공장을 개선해 이익이 나게 할 방법을 내놔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합의안에 도달하기까지의 고민만큼 합의안에 대한 평가도 노사가 서로 다르다. 박 부장은 “선언적인 말로 상생이나 윈-윈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금까지 상생이라고 하면 노동조합이 협조를 선언하고 노력하는 수사로 인식된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번 임단협은 노동조합과 회사가 서로 해야 할 역할을 구체적으로 정립했다. 노사상생과 윈-윈의 실질적이고 실천적인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 이번 임단협의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또 “노동조합은 어려운 환경이지만 조합원의 고용과 삶의 질을 유지하고 향상시킬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회사도 노동조합의 참여와 신뢰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남겼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노동조합이 용기 있는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반면 박 사무국장은 “해외 공장 위주로 영업활동을 하는 자본이 국내 공장의 가치를 인정하도록 했다”고 평가했다. “국내 공장은 해외 공장의 능력을 조정하고 보완하는 글로벌 허브기능을 담당하는 거점이 될 것이다. 이번 합의는 타이어 200만 본을 생산할 수 있는 2000억 원 규모의 공장을 새로 지은 것과 같다”는 설명이다.

노동조합은 “고용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투자 내용을 가져오도록 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또 “3년 무쟁의를 깨고 부분파업 6일, 총파업 4일을 하는 동안 한 명의 이탈자도 없었다. 3년 동안 쟁의가 없었지만 노동조합의 조직력이 살아있음을 확인한 것이 또 다른 성과”라고 덧붙였다.

현장은 생산량 합의 놓고 노동강도 강화 우려 제기

하지만 이번 합의서를 두고 현장의 반응이 곱지만은 않다. 잠정합의안 찬반투표 결과 찬성률이 60%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도 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사무국장은 “총파업 등 투쟁을 강하게 배치해 조합원들의 기대심리가 높아진 점을 감안한다면 찬성률이 낮은 것이 아니”라면서 “임금을 만족할 만큼 따내지 못해 기대심리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민주노총 광주전남지역본부장을 지낸 조삼수 금호타이어노조 전 위원장은 “현장 조합원들은 생산량 합의에 대해 선례가 될 수 있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며 “금호타이어 내에는 회사에 착취당한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남아 있어 회사가 변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구성원들이 아직 이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조 전 위원장은 아울러 “(현장에서도) 생산물량을 확보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면서 “이번 합의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10%의 생산량을 더 확보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그렇지만 현장의 거부감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합원은 “회사가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정리해고를 할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는 없었다”면서 “결국 이번 임단협에서 회사는 노동강도 강화를 통해 영업외 손실을 전가하고 이윤을 보존하려는 목적을 달성했다”고 비판했다. “매년 고임금자가 100여 명씩 정년퇴임을 하는 상황에서 굳이 이번에 431명을 정리해고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안 잘리는 것을 다행으로 알고 일이나 열심히 하는 게 미래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투자·생산량 증가 ‘합의’로만 끝나선 안 돼

그렇기 때문에 합의는 했지만 앞으로 남겨져 있는 과제도 많다. 박 부장은 “일부에서는 합의가 지켜질 것인지 의심의 눈초리로 보기도 했지만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고 낙관했다. 실제로 임단협 조인식이 있었던 지난 7월 28일 이후 합의사항에 따라 생산량을 늘려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회사에서도 약속한 설비투자를 진행해 구성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해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노사는 기존에 있던 고용안정위원회와 노사공동발전위원회를 묶어 ‘고용안정노사공동발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과거의 고용안정위원회는 회사가 어떤 상태이든 고용을 지킨다는 수세적인 위원회였다면, 새로운 위원회는 능동적인 성격으로 경쟁력 향상과 고용안정을 동시에 추구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노동조합 박 사무국장은 “어쩔 수 없이 생산량을 늘린다고 합의했지만, 생산량 늘리는 것은 곧 노동강도가 강화된다는 의미”라고 정의했다. 때문에 “향후 노동강도 완화에 초점을 맞춰서 활동하는 것이 노동조합의 과제”라는 것이다. 나아가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삶의 질을 높이며 고용을 창출하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장조직에서 일부 비판의 목소리에 대해 노동조합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전 집행부도 설비투자와 함께 15% 생산성 향상에 합의했지만 실천하지 않았던 선례가 있었다면서, 현 집행부는 조인식 직후 바로 합의안대로 생산량을 늘리는 등 실천을 강조했다. 박 사무국장은 “일부 조합원들의 오해와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조합에서는 첫날부터 시행했다. 이제는 회사에서 실행하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국노동혁신연구소 이문호 소장은 이번 합의안에 대해 “노사가 서로 진정성을 가지고 합의했다는 것을 전제로, 임단협에서 생산성 협약을 했다는 것은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임단협의 선진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자본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제조업이 위기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산업공동화 문제를 생산성 향상으로 풀었다는 점에서 하이로드전략을 선택한 것은 큰 성과”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지키는 것이다. 노사가 공동으로 노력해 한 번 지켜지면 신뢰를 바탕으로 더 발전할 것이나, 지켜지지 않는다면 또 다른 불신을 불러올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번 합의안에 대한 서로 다른 평가에서 나타나듯 여전히 노동조합 내부에 이견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것은 노동조합이 차기 집행부 선거에서 하나의 쟁점으로 표출되고 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이 문제가 여전히 내분에서 충분하게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현장의 다양한 의견들이 주류 의견과 다르다는 이유로 묻히지 않고 소통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이것 또한 금호타이어 노사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 중의 하나다.

박석모 기자 smpark@laborplus.co.kr

주식시장의 반응은 ‘일단 관망’
합의보다는 실제 실행 여부가 관건

노사 양측의 최대 관심사였던 별도합의서에 대한 주식시장의 반응은 일단 지켜보자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생산량을 공장별로 10%, 3% 이상씩 늘리기로 했지만 실제로 실현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또 노사가 합의한 대로 생산량이 늘어나더라도 시장에서 판매된다는 보장을 할 수는 없다. 이런 이유로 이번 합의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부정적 의견을 밝혔다.

반면 한화증권의 용대인 애널리스트는 “관심 지표 중의 하나가 원가대비 생산성인데 그것을 개선하는 방법이 고용조정을 하는 것이든 생산라인의 효율적 운영을 통해서 1인당 또는 1시간당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든 어느 것이 좋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면서 “현실적으로 기업이 고용을 창출한다고 봤을 때 이번 금호타이어의 노사합의가 고용을 유지하면서 생산성을 높이기로 했다는 점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용 애널리스트는 또 “향후 분석의 초점은 노사가 합의한 대로 지켜지느냐 여부”라면서 “현재로서는 긍정이나 부정 어느 한 쪽 방향으로 예단할 수 없다. 노사가 합의는 했지만 실제로 실행이 되지 않는다면 향후 목표주가와 투자의견을 하향조정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